"오락문화의 최고봉이다. 그것은 또한 병서요, 산 수학이요, 산 처세훈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오락 이상의 귀중한 학문적 가치마저 지녔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정말 명기(名棋)는 인격을 동반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도덕과도 통하고, 새 법칙의 발견이 기사(棋士)의 최고의 명예일진대 그것은 또 과학과도 일맥이 닿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사람으로 하여금 사뭇 반하지 않고는 못배기게 하는 희한한 재미를 지녔으니, 이런 고마울 데가 어디 있겠는가." 시인 김동명이 '삼락론'에 쓴 바둑 예찬이다.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를 치려고 할 때 백제 임금 개로왕이 바둑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도림이란 중을 간첩으로 백제에 보내 그 나라 내정을 살피는 동시에 백제 왕을 설득해 토목공사를 크게 일으키게 함으로써 국가경제 파탄과 백성의 원망을 사게 했다. 도림이 고구려로 도망, 장수왕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자 왕은 3만 군대를 거느리고 백제를 쳐서 한성을 함락하고 도망가던 개로왕을 잡아 죽였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다.

어제 폐막한 세계수학자대회(ICM)에서 재미 있는 모습이 펼쳐졌다. 지난 19일 서울서 우리나라 바둑 명인들이 수학자들과 다면기(多面棋) 대결을 펼친 것이다. 다면기는 바둑 행사장의 흔한 이벤트지만 프로기사와 수학자의 대결이란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서봉수 유창혁 이창호 김효정 박지은 등 바둑 대가들이 1인당 6명씩 수학 전공 학자를 맡아 대국을 펼쳤다. 최종 성적은 21승 1무 3패, 프로 기사의 압승으로 끝났다. 다양한 경우의 수를 이용하는 바둑에 도전한 수학자들이 확률과 통계 같은 수학적 기법을 이용해 프로기사를 상대로 소중한 3승을 챙겼다는 것이 놀랍다. 수학자들은 체스와 달리 바둑은 수가 거의 무한해 슈퍼컴퓨터라고 해도 승리가 쉽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퍼지이론 등 새로운 수학적 기법으로 바둑의 수를 분석한다면 40~50년 뒤에는 바둑 최고수를 이기는 슈퍼컴퓨터도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때마침 같은 날 이세돌 9단이 1년 9개월 만에 한국에 세계대회 개인전 우승 타이틀을 안겼다. 이 9단은 중국 베이징 창안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제26회 TV바둑아시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일본의 고노 린 9단에게 200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두며 정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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