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불가능한 인생살 때, 선함과 사랑으로 무장해야 시련 닥칠 때 중심 잡을 수 있어

김종한 수필가

망망대해의 바다를 항해하는 배를 연상 하면 파란만장한 굴곡의 인생여정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곧 잘 비유를 한다. 배를 건조하는 과정을 보면 선체 바닥 앞부분에 주둥이처럼 뚝 튀어 나온 것을 용골이라고 한다. 거대한 쇠뭉치로 중심을 잡아주는 배의 끝 선미(船尾)에서 앞까지 선수(船首)를 연결 되는 골격으로 사람으로 비유하면 몸 중심을 잡아주는 등뼈와 같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에 안타까운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었듯이 거센 파도와 풍랑을 만날 때 넘어 지는 것을 막는 중요한 복원력 장치 이기도하다. 그렇지만 쇠 덩어리가 배의 속력을 높이려면 가볍게 해야 하는데 무거운 쇠뭉치를 달고 있으니 아이러니 하다. 자연에는 이렇듯 상식에 맞지 않고 모순을 뛰어 넘는 진리도 가끔 있다.

우리 인생여정의 삶도 바다처럼 파도를 넘고 풍랑을 만난다. 한 두 번은 물론, 여러 번 시련과 생사에 막다른 길목은 중심을 잡아주는 그 무엇인가 있어야 한다. 넘어 지도 일어나는 오뚝이 같은 장치 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 인간 속세의 상식을 초월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붙들고 의지 하려는 본능이 있기에 기도에 매달리고도 보고 하다가 결국 신앙을 찾아 가는 것이다.

꼬이고 안 풀리고 불안하여 다급하면 미신이나 우상에도 관심을 가지고 우선 붙잡아 보자는 심리가 작용 한다. 그러기에 부적을 지니고 점을 보고 심지어 굿하는 경우도 그런 이유이다

궁지에 몰리면 남의 탓은 당연하며 심지어 부모도 원망하며 조상 탓을 하고 선조 묘가 재앙의 원인 제공했다며 멀쩡한 묘도 이장하기도 한다. 터가 좋으면 복이 굴러들어오고 터가 나쁘면 재앙이 생긴다는 속설도 광활한 우주 공간에 인간이 미천하고 나약하기에 맹목적으로 따르고 신봉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미래는 타고난 각본운명도 인정한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만드는 맞춤운명도 믿기에 통계에 세계인구의 85% 이상이 나름대로 희망과 소망을 구원하는 기도생활을 하고 종교를 가진 신앙인들이다. 세계 3대 종교인 천주(기독)교, 마호메트교, 불교신자가 가장 많고 그 외 원시 신앙과 토속종교를 신봉하지만 모든 종교의 사상은 공통적으로 착할 선(善)과 사랑(愛)으로 기도와 믿음은 누구나 같다고 본다.

나무는 뿌리가 전해주는 물이 있기에 싱싱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대자연으로 보면 가장 연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 하지만 믿음과 신앙의 에너지로 쓰러져도 일어나며 버티며 산다.

그렇다고 보이지 않는 요행이나 사이비종교나 무속신앙에 매달리고 빠져서는 안 된다 불안과 파탄을 초래 한다. 삶의 뿌리는 신성하고 거룩해야한다. 모든 기도와 신앙의 꼭지점은 선(善)과 애(愛)로 우리가 기대며 의지 하는 인생의 용골장치다.

삶의 본질은 예측가능과 불가능이 공존 한다. 건강하던 이가 갑자기 쓰러지며 떵떵 거리던 사람이 한순간 몰락하기에 그렇다. 어제는 멀쩡했지만 오늘은 무슨 일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믿는 사람도 불안한데 아무것도 안 믿는 사람의 공포는 더 할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발달되고 변하더라도 마음과 영적에너지는 첨단과학도 해결 못 한다. 자기 살길은 자신의 의지와 믿음의 몫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영원히 살 것으로 착각을 한다. 물질의 세상과 마음의 세상을 구분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속세의 육신은 일시적으로 잠시 머물다 가지만 참 신앙의 믿음이 인생을 영원히 잡아주는 용골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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