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해지면

붉은 십자가 솟아오른다

사람 사는 집보다 더 높은 곳

사람들 우러러 보아야 하는

거칠 곳 없는 높은 자리에

병원 표지와 같은

붉은 십자가 어둠 속에 솟아오른다

 

어디가 아프니?

붉은 십자가가 만드는 그림자 속에

한사람이 한사람을 부축하고

어디가 아프니?

자꾸 묻는다

묻는 소리 메아리처럼 들린다

<감상> 붉은 것들은 힘을 갖고 있다. 활활 타오르는 붉은 장작불은 물을 끓일 수 있는 힘이 있고,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의 붉은 피는 몸을 움직이고 따뜻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렇기에 붉은 것은 금기의 색이면서 신성을 드러낸다. 시인은 도시의 밤하늘을 밝히는 붉은 십자가를 바라본다. 십자가는 힘 있는 사람들의 안식처이기보다 가난하고, 상처받아 위로받고 싶은 자들의 공간이다. 어디가 아프니? 그 한마디 말은 그야말로 지친 이들에게 큰 위로다. (하재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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