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원하는 세상 꿈꾸며 신념을 위해 장렬히 순교한 이름모를 동학교도에 관심을

이재원 시민정치연구소장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이후 가톨릭에 입문하려는 젊은이들이 크게 늘고 있는 모양이다. 4박5일간의 짧은 방한일정 동안 보여 준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그 만큼 우리 젊은이들에게 큰 감명을 준 탓일 게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보듬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돌보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종교라면 당연히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를 실현하고자 가장 먼저 행동하는 것은 종교지도자의 당연한 책무다. 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번 방한기간 내내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이 바로 이러한 종교지도자로서의 바람직한 면모를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 8월 16일 교황은 공식 방한행사 중의 하나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윤지충바오로와 동료순교자 123위에 대한 시복식 미사를 집전했다. 조선의 엄격한 봉건계급사회를 부정하고 만인은 평등하다는 천주를 신봉하다 지배층으로부터 갖은 박해를 받으며 결국에는 순교한 우리나라 초기 가톨릭 신자 124명이 이날 성인의 전 단계인 복자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이날 TV중계로 시복식을 지켜보던 나는 뜬금없게도 동학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람이 곧 하늘이고(人乃天), 사람을 하늘 대하 듯 하라(事人如天)는 가르침으로 당시의 계급사회를 부정하고 사회개혁을 시도한 동학교도들 역시 조선의 지배층으로부터 갖은 박해를 받기는 매 한가지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 광화문광장에서의 시복식처럼 서학(가톨릭)교도들은 종교적 신념을 잃지 않은 위대한 순교자로 훗날 세상에 널리 알려져 신원회복(?)되었지만 종교적 신념을 가진 것에만 그치지 않고 평등한 인간세상을 만들겠다며 사회개혁의 실천에 앞장 서 무참히 죽음을 맞이한 수많은 동학교도들은 아직도 우리는 잘 모른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역사의 뒤로 숨지 마라. 앞에 나서서 당당히 우리 모두가 잘 사는 정당한 시스템을 원한다고 말하라"고 설파했다. 그리고 "진정으로 내가 교회에게 바라는 것은 실천이다"고 했다. 종교적 신념을 가슴에만 담아 두지 말고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 당당히 맞서는 것이 종교인의 바른 자세라는 이야기다. 그의 이런 실천적 사회참여의식이 종교를 떠나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시복식이 있던 날 나는 후천개벽을 꿈꾸며 사회의 잘못된 제도를 타파하고 참세상을 위해 목숨조차 아끼지 않았던 당시의 동학교도들이 어쩌면 교황이 말하는 바른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짧은 일정동안 한국사회에 큰 여운을 남겨두고 교황은 떠난 지금, 다시금 우리사회는 세월호 해법을 두고 분열과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해 내가 이사장으로 있는 전국푸른문화연대가 주관한 푸른문화학교 강의에서 조중의 포항CBS본부장은 '동학의 제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이 동학보다 먼저 서학을 접했다면 분명 순교자가 되었을 것'이라 말한 적이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모든 사람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장렬히 순교했던 그때의 이름 모를 동학교도들에게도 조그마한 관심이라도 가져보는 게 어떨까 희망해 본다. 적어도 해월이 포항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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