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건너에서 누군가 손을 흔든다

그 얼굴이 그 얼굴이면 안 되는데

그저 그런 이웃이 겹치더니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지 너와 나에게도

실금이 생기고

설명이 필요한 사이가 되었던 적 있다

비교할 수 없던 내 사랑

시간이 끼어들어 얼굴이 지워진 적 있다

<감상>어떤 것이든 설명을 필요로 하는 사이는 아무래도 가까운 사이는 아니다. 명사든 형용사든 우리가 아는 것은 그것의 쓰임에 대해 어느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묻지도 않는다.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다. 사랑도 그런가.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의 믿음이 세월의 무게에 금이 가고, 이끼가 끼고, 낯선 사람으로 저쪽에서 걸어가게 된다면…. 그것은 정말 지워지는 일이다. 많이 외우고 다녔던 이름들, 얼굴들을 하나하나 지우는 일. 그것도 꽤나 힘들 것이다. (시인 하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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