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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의 고대 수수께끼를 푼다

(2)신라 최고의 미인 수로부인(水路夫人)에게 노인이 바친 야한 노래 이야기 - 헌화가, 비상한 미인에게 비상한 노인이 성을 바치려 한 노래

글 = 이영희 (사학자·전 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 등록일 2014년09월04일 20시01분  
울퉁불퉁한 바위가 포개져 있는 해발 200m의 아름다운 화강암 산인 쪽박산. 4~5월이면 진분홍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산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는 고려 후기인 1281년(충열왕 7년)에 편찬된 귀중한 우리나라 역사책이다. 저자는 일연(一然)스님. 고조선부터 신라·고구려·백제 등의 역사를 서술했고, 신라 때의 노래인 향가 14수도 함께 실었다.

이 역사책에는 신라 제 33대 성덕왕(702~733년 재위) 때에 살았던 유명한 미인 수로(水路)부인 이야기와 함께, 이 미인에게 한 노인이 바친 야한 노래도 실려 있다. 이 삼국유사 대목을 먼저 소개한다.

잿빛 돌산과 금빛 논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쪽박산 기슭.

성덕왕 때 순정공(純貞公)이 강릉(江陵)태수로 부임하는 도중, 바닷가에서 점심을 들었다. 곁에는 돌 봉우리가 병풍과 같이 바다를 두르고 있어 그 높이가 천길이나 되는데, 그 위에 철쭉이 만발하여 있었다. 공의 부인 수로가 이것을 보더니 좌우 사람들에게 말했다.

"꽃을 꺾어다 내게 줄 사람은 없는가."

그러나 하인들은 마다했다.

포항시와 영덕군으로 나뉘는 곳에 동해로 지경천이 흐르고 있다.

"그기는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입니다."하고,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이 때, 암소를 끌고 곁을 지나가던 늙은이 하나가 있었는데, 부인의 말을 듣고는 그 꽃을 꺾어 가사(歌辭)까지 지어서 바쳤다. 그러나 그 늙은이가 어떤 사람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 노인의 노래는 다음과 같다.

"자줏빛 바위는

잡은 손 암소 놓게 하고,

이영희 전 교수

나를 부끄러워하시지 않을진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그 뒤 그들은 임해정(臨海亭)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갑자기 바다에서 용(龍)이 나타나더니 부인을 끌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남편 순정공이 땅에 넘어지면서 발을 굴렀으나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또한 노인이 나타나더니 말했다.

"옛사랑의 말에, 여러사람의 말은 쇠도 녹인다했습니다. 바다 속의 용인들 어찌 여러사람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경내(境內)의 백성들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지팡이로 강 언덕을 치면 부인을 만나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남편이 그대로 했더니, 과연 용이 부인을 모시고 나와 도로 바쳤다. 이 때 여러 사람이 부르던 해가(海歌)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부인을 내놓아라.

남의 부인 앗아간 죄 그 얼마나 크리.

네 만일 거역하고 내놓지 않으면

그물로 옭아 구워먹으리."

남편 순정공이 부인에게 바닷속에서 있었던 일을 묻자, 수로부인이 선선히 대답했다.

"그곳 칠보궁전(七寶宮殿)의 음식은 맛있고, 향기롭고, 깨끗한 것이 인간이 불로 지져 만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 때 부인의 옷에서 나는 이상한 향기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수로부인은 아름다운 용모가 뛰어나, 깊은 산이나 큰 연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차례 신물(神物)에게 붙들렸다.

이상이 삼국유사 수로부인 대목에 실려 있는 글들이다. 그럼 먼저 이 신라(新羅) 으뜸의 미인 수로부인의 이름이 왜 '수로(水路)'인지 살펴보자.

한자 '물 수(水)'는 신라말로 '몰'이라 발음했다. 수로(水路)란, 신라말 식으로 읽으면 '몰질'이라 읽힌다. '몰아가는 행위'가 바로 '몰질'이다. "수로부인은 아름다운 용모가 뛰어나 깊은 산이나 큰 연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차례 신물(神物)에게 붙들렸다"고 수로부인조(條)는 글을 맺고 있다. 미모로 '몰질'해서, 수로(水路) 즉 '몰질'이라 불렸는지 모른다. 어떻든 맑은 물처럼 눈부신 미인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남편 순정공(純貞公)의 부임지인 강릉까지 동해의 바닷길을 걸어갔다하여 '수로'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말도 있으나, 수도 서라벌(지금의 경주)에서 신광(神光)을 거쳐 청하(淸河), 송라(松羅)를 지나 영덕 쪽박산까지의 머나먼 길은 바닷길 아닌 흙길이다. 이 '수로부인의 흙길'을 일러준 분은 청하 기청산식물원 이삼우원장이다. 옛길에 정통한 분이다. 수로부인의 길은 흔히 신라 서라벌에서 형산강(兄山江)을 타고 포항, 즉 옛날의 영일만 근오기까지 와 배에서 내려, 영덕 강릉까지 먼 길을 간 것으로 여겨져 온 것과는 영 딴판의 길이다.

이삼우원장의 말에 의하면 영일만에서 화진포까지는 신라 때만해도 길이 닦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로부인 일행이 점심을 들었다는 '바닷가 돌 봉우리'란 어디에 있는 산인가. 탐방에 나섰다.

'신라 서라벌에서 강릉까지'의 길 가운데 흙길은 영덕군 쪽박산까지다. 여기부터는 동해 바닷가를 가는 그야말로 수로(水路) 즉, 물가길이 시작된다.

쪽박산.

이 문제의 산을 찾아가 봤다. 울퉁불퉁한 바위가 포개어져 있는 해발 200m의 둥근 산이다. 사철(沙鐵) 성분이 섞여 보이는 아름다운 화강암 바위들이 엉켜 있다. 바위 틈에 '진달래가 만발해 있었다'는 삼국유사의 글발로 보아 노래가 읊어진 계절은 4월에서 5월께 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진분홍색으로 흐드러지게 피는 진달래꽃은 참꽃이라고도 하고, 한자어로는 두견화(杜鵑花)라 한다. 매력적인 꽃이다.

한시절 전에는 음력 삼월삼일 삼짇날이면 진달래꼬층로 만든 화전(花煎)을 먹으며 봄맞이를 했고, 진달래꽃으로 빚은 진달래 술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진달래 화채도 전통음료로 인기가 있었다. 녹말가루를 묻혀 데친 진달래꽃을 오미자 국물에 띄워 만든 화채. 모두 풍미(風味)의 옛 맛들이다.

수로부인 시절에도 진달래로 화전을 만들고, 진달래술을 빚어 마셨을까. 어떻든 수로부인은 '꽃을 꺾어 줄 자는 없는가'하고 묻는다. 그래서 나타난 자가 '노인'이었다. 노인이 꽃을 바친 노래가 '헌화가'('노인헌화가'라고도 함)인 것이다.

꽃의 옛말은 '곶', '고지'다. 꽃은 머리, 항아리 등에 꽂는 것이란 뜻으로 일찌기 '곶', '고지'라 불렀다. 성(性) 행위도 '꽂는'(옛말로 '곶는') 행위다. 노인이 꽃을 꺾어 바친 노래 '헌화가'는 노인이 섹스를 바치고자 한 노래라 짚을 수 있다. 비상한 미인에게 바친 비상한 노인의 노래 '헌화가'가 특별히 주목받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도대체 이 '노인'은 누구일까. 다음 차례에 이 노인이 어디에서 온 누구인지 상세히 살피기로 할 것이다. 신라 성덕왕(聖德王)과 얽힌 많은 역사가 여기에 펼쳐질 것이다.

둥글둥글한 큰 바위들이 몰려 있는 쪽박산은 영덕군(盈德郡)과 포항시 사이에 흐르는 실개천 지경천 너머에 바로 솟아 있다. 산기슭 동쪽엔 장사해수욕장이 바로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육지쪽 산기슭은 논이다. 잿빛 돌산과 금빛 논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쪽박산.

신라 당대의 미인 수로부인이 바라보며 진달래꽃을 즐긴 이 언저리에 화원(花園)을 세워 '수로부인 꽃뜰'이라 이름지으면 어떨까. 내친김에 '노인헌화가비'까지 세우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지경천 북쪽에는 영덕군이 '수로부인 화원'을, 지경천 남쪽에는 포항시가 '노인헌화가비'를 각각 세우면 참 뜻있는 상조 공사가 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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