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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의 고대 수수께끼를 푼다

(3)신라 최고의 미인 수로(水路)에게 야한 꽃 노래를 바친 노인은 누구인가?

글 = 이영희 (사학자·전 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 등록일 2014년09월11일 20시55분  
참깨밭과 벼논 뒤로 평화롭게 솟아있는 쪽박산.

수로(水路)부인은 신라 최고의 미인이다.

강릉(江陵) 태수(太守)인 남편을 따라 부임지로 가는 길목에서 철쭉꽃이 핀 험한 산을 바라다보며 저 꽃을 꺾어 내게 줄 자가 없는가 하고 묻는다.

그러나 그 곳은 올라갈 수 없는 곳이라며 모두들 고개를 젓는다.

이 때 소를 끌고 가던 노인이 나타나, 대뜸 산에 올라 꽃을 꺾어와 바치며 노래까지 읊는다.

포항시와 영덕군의 경계인 지경천이 동해로 흘러들고 있다.

이 노래가 유명한 신라 향가(鄕歌) 14수(首)중의 하나인 헌화가(獻花歌)다. '노인헌화가' 라고도 하는 노래다.

아무도 오르지 못하는 산에 순식간에 올라가, 철쭉꽃을 꺾어온 그 노인은 누구일까. 7~8세기의 놀라운 한·일 관계사가 여기에 펼쳐진다.

수수께끼의 수퍼맨 역행자(役行者·일본이름 엔노교자) 이야기라면 재미있는 영화작품거리가 된다. 마술이 있고, 격투가 있고, 로망스도 있는 판타지·서스펜스. 십 년전에 크게 히트한 '로드 오브 더 링그'에 못지 않을 작품이 될 것이다. 특히 한·일 합작영화로서는 이 이상의 작품도 없을 것이다.

쪽박산 기슭의 장사해수욕장 전경.

때는 바야흐로 고대일본의 최전성기 7세기말에서부터 8세기초. 무쇠 신발을 신고 산을 날아다니며, 바다를 걷고, 마술사처럼 주술(呪術)을 부리고, 귀신들을 부려쓰고…. 천황(天皇)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말에 대대적인 체포작전이 펼쳐지나 그때마다 교묘히 탈출. 할 수없이 정부가 그 어머니를 체포하자 '어머니의 석방'을 조건으로 나타나 스스로 잡힌다.

3년후 '무죄'가 인정되어 석방되자, 어머니를 무쇠 사발에 태워 함께 하늘로 날아 사라진다. (또는 바다로 떠 갔다고도 한다.) 그 후, 신라(新羅)의 산중에서 500마리의 호랑이와 함께 있는 역행자를 일본의 고승(高僧)이 발견한다.

이영희 전 교수

이 수수께끼의 인물에 대한 기록을 엮은 최초의 문헌은 '속일본기(續日本記)'다. 광인천황(光仁天皇·770~780)의 명에 따라 쓰여진 역사서에 실려 있는 기록이니 근거없는 이야기로 접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속일본기' 권 1. 문무천황(文武天皇) 3년(699) 5월24일(양력7월1일) 조에 실려 있다.

"5월 24일, 역군(役君)소각(小角·役行者를 가리킴)을 이즈(伊豆)로 유배 보냈다. 소각은 처음에 카츠라키야마(葛木山)에 살고 있었고, 주술(呪術)을 잘 쓰기로 이름높았다. 카라쿠니무라지히로타라(韓國連廣足)는 역행자를 스승으로 받들고 있었으나, 후에 능력을 해치게 되자, 그를 관청에 고소한 것이다. 그 탓으로 소각은 유배당했던 것이다. 세간에서는 훗날까지 다음과 같이 전해졌다. "소각은 귀신을 부려 물을 부어담게 하거나, 땔나무를 모으게 하거나 할 수 있었고, 만약 귀신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주술로 자유를 속박했다"고.

이 역군소각(役君小角) 즉 역행자(役行者)의 역(役)은 씨(氏)를 가리키며, 소각(小角)은 이름이다.

어머니는 백전녀(白專女) 도라매(刀良女)라고도 불렸다. 신라계 여성이다.

흰 살결의 날씬한 미인이었다고 한다. 외딸이었으므로, 이즈모(出雲)지방 출신의 대각(大角)을 맞아들여 결혼했다. 이 사나이가 역행자(役行者)의 아버지이다.

역행자의 어머니 백전녀 즉 도라매는 지금의 나라(奈良)시 오쿠다(奧田)의 연못가에서 병 요양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연못 이슬 속에, 한 줄기에 두 개의 하얀 연(蓮)꽃이 피어있는 것을 보았다. 잎새에는 금빛 개구리가 앉아 있었다. 도라매가 가느다란 대를 뽑아 개구리를 향해 던지자 개구리는 짝눈이 되어 연못 속으로 도망쳤다. 연못 속에 도망친 개구리는 흙빛이 되어 떠올라왔고, 한줄기에 두 꽃이 피어있던 연(蓮)도 그만 한꽃이 되고 있었다. 도라매는 그때부터 중병을 앓게 되었고, 42세에 사망했다. 어머니를 여읜 역행자는 그후 요시노산(吉野山)에 들어가 개구리를 제사지내고 공양(供養)했다 한다.

이 '개구리 이야기'는 역행자의 어머니에 관한 실화(實話)를 설화(說話)처럼 엮은 것으로 역행자의 어머니 도라매가 '임금이 되려던 개구리'를 죽인 이야기를 설화화(說話化)한 것이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개구리'는 7세기 일본의 제철왕(製鐵王) 오호노오미홈치(多臣品治)의 모습이다.

홈치는, 빠른 시기에 일본으로 진출한 예(濊)계의 제철왕이었다.

상·고대(上古代)의 한국에 예(濊)라 불린 강력한 부족국가가 있었다. 기원전 8세기에 이미 두만강(豆滿江) 기슭 무산(茂山)의 합입지대 즉 사철(砂鐵)이 풍성하게 모이는 이른바 '초승달지대'에 제철국을 세우고, 한반도 동해안 일대와 일본에 진출, 예(濊) 또는 야(八)라는 이름 아래 세력을 펼치고 있었다. 오호노오미홈치는 고구려계의 연개소문 즉 훗날의 일본천왕 천무(天武)와 함께 7,8세기의 일본을 번영케 한 인물이었다. 비록 '천황'은 못되었으나, 특히 제철 관련 업적을 튼튼히 세워 올린 인재였다. 바로 역행자의 아버지였던 사람이다.

일본역사책 '일본서기(日本書紀)'의 기둥으로 기록되는 여걸(女傑) 지통황후(持統皇后)와 품치(品治)는 사이좋은 동모(同母)남매로 기술되고 있으나, 그 내막은 알 수 없다.

'일본서기'의 수이제이기(綏靖記)에 의하면 "4년 여름 4월 캄야이미미노미코토(神八井耳命)가 돌아갔다. 우네비야마(畝傍山)에 묻었다"고 되어 있다.

수이제이(綏靖)가 천무(天武) 천황으로, 품치(品治)가 캄야이(神八井)로 비정이 된다면, 천무 4년에 품치(品治)는 죽은 것으로 되는데, 이 '4년'은 천무 4년이 아니라 문무 4년(700년)의 일로 여겨진다.

역행자(役行者)가 어머니 대신에 잡힌 다음해의 여름이다.

품치는 아마도 문무 4년의 여름 4월(구력으로는 4월부터 여름으로 친다)에 죽은 것으로 여겨진다. 품치는 문무 4년 여름 4월, 나라켄 카시히라시 북쪽에서 죽은 것으로 보인다. 역행자(役行者)의 어머니에게 살해된 것이다.

음력 4월은 양력의 6,7월. 연꽃이 피는 계절이다. 역행자의 어머니 도라매와 그녀에게 살해된 그의 아버지 품치를 위해 역행자는 그 후 해마다 7월7일이면 요시노(吉野)산에 모여 개구리를 제사 지냈다고 한다. 연못의 연꽃 108송이를 꺾어 추선공양(追善供養) 한 것이다.

암시와 상징의 결정(結晶)과 같은 이야기. 현대의 메타포 속에, '헌화가'의 노인 역행자가 존재한다.

역행자(役行者)에 관한 문헌 중에 어머니의 이름을 소상히 소개해 놓은 것이 있어 주목을 끈다.

"어머니 이름을 '타카카모시라타우매토기츠마로(高賀茂白專渡都岐麻呂)'라 한다."- 역군형성기(役君形成記)

'타카카모'는 고위층의 제철족(製鐵族) 임을 나타내는 낱말이다.

"신라의 신광(神光)에서, 바다를 신령스런 빛으로 비치며 일본에 간 제철족의 자손이 바로 가모(賀茂)씨들이라는 것이, 이 '高賀茂'의 표기다.

백전녀(白專女)는 도라매(刀良女)라 불리고 있었다. '흰 여우'를 뜻했다. '토라' 즉 '호랑이'를 가리킨 것은 아니다. 호랑이는 가장 성스러운 존재라는 뜻에서 신에 봉사하는 여성들을 가리킨 것이다.

토라매는 '渡都岐麻呂'라 표기, '토츠가마로'라 불리고 있었다. '시집가는 마로'란 뜻으로 섹스하는 즉, 성교(性交)하는 고위 제사자(祭祀者)를 뜻한 낱말이다. 여신(女神)인 아마테라스(天照)를 두고, 남자신을 가리키는 '무치(貴)'라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 용법이다. 토라매의 이름을 (渡都岐麻呂)라 쓰고 '토츠기마로'라 부르는 것도, '섹스하는 미코(무녀·巫女)'를 의미한다.

한편, 이 '渡都岐'는 한반도 가까운 지역에서는 '도츠기'라고 읽힌다. '도츠기', '도우즈기'는 '도츠구'의 명사형이며, '후려갈긴다'는 뜻도 지니고 있어 착잡한 생각을 갖게 한다. 역행자의 어머니는 '후려갈기는 여자'란 천한 이름으로 불려있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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