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이 마련한 1천700만원 출처 추적…비자금 수사 비화 가능성

12일 경북지방경찰청 민원실에서 청도 송전탑 건설에 반대해 온 삼평1리 마을 주민이 경찰이 건넨 돈을 되돌려주면서 돈 전달 과정을 수사해달라고 고발했다. 청도경찰서는 이달 초 주민에게 한국전력측으로부터 돈을 받아 위로금과 치료비 명목으로 전달한 바 있다. 연합

청도경찰서장이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에게 돈 봉투를 돌린 사건에 대해 경찰청이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12일 "이현희 당시 청도경찰서장이 한국전력으로부터 돈을 받아 지역 주민들에게 전달한 과정과 한전이 마련한 돈의 출처 등을 조사하기 위해 내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이 서장이 추석 연휴에 지역 주민 7명에게 한국전력의 위로금 100만∼500만원이 든 봉투를 돌린 사실이 드러나자 이 전 서장을 직위해제하고 감찰을 벌여 왔다.

그러나 경찰청은 한전과 경찰서장의 돈 봉투 살포 행위가 징계를 염두에 둔 감찰 수준에 그치기에는 사안이 중하다고 여겨 사법처리를 전제로 한 수사로 전환했다.

지능수사대는 이날 5명의 수사관을 청도로 급파해 이 전 서장과 청도경찰서를 상대로 한전으로부터 돈을 받아 지역 주민들에게 전달한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돈 봉투 금액은 1천700만원에 달한다.

이 전 서장은 앞선 감찰 조사에서 "추석 전인 지난 2일 송전탑 건설에 반대해 온 할머니 1명이 먼저 '치료비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해 한전 측으로부터 100만원을 받아 전달했고, 이후 다시 한전에서 1천600만원을 받아 추석 연휴인 9일 다른 할머니 6명에게 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일 돈을 받은 주민 1명은 당시 집에 없어 직접 받지 않았고 딸이 대신 받았다고 청도345kV송전탑반대 공동대책위원회(대책위)측은 전했다.

이 할머니는 최근에서야 딸이 대신 받은 사실을 알았고 조만간 경찰에 돈을 되돌려 주기로 했다.

지난 9일 돈을 받은 6명 가운데 2명은 받은 800만원을 즉시 돌려줬으나 4명은 자녀가 대신 받거나 경찰서 직원이 돈을 두고 가는 바람에 800만원을 보관해 왔다.

이 전 서장이 9일 전달한 돈의 액수는 주민마다 달랐다.

그는 2명에게 300만원씩, 다른 2명에게 100만원씩 등 모두 800만원을 전달했고 나머지 2명에게는 300만원, 500만원을 주려 했지만 실패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민 1명이 먼저 돈을 요구했다는 일부 보도와 관련해 대책위 관계자는 "한 할머니가 2012년 반대 투쟁을 하던 중 용역업체 직원에게 맞아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렸고 그동안 병원에도 가지 못했다고 하소연한 일은 있으나 돈을 먼저 요구한 일은 없다"며 "다른 주민도 모두 돈을 요구한 적 없으며 돈을 요구했다고 하는 것은 모욕"이라고 밝혔다.

이 전 서장은 "한전에서 받은 돈은 1천700만원이 전부"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한전이 최소 1천700만원의 돈을 마련한 경위에 주목하고 있다.

한전 직원이 개인적으로 마련했을 것이라고 보기에는 금액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경찰의 추적 결과 돈이 한전이 조성한 비자금 계좌에서 나온 것으로 드러나게 되면 사건은 본격적인 한전 비자금 수사로 비화할 수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주민들에게 뿌려진 돈이 한전 직원의 개인 돈인지 한전에서 따로 만든 비자금인지 철저히 확인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책위는 12일 오후 경북지방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전력의 돈을 배달한 청도경찰서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한전과 경찰의 유착관계가 어느 정도인지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며 "더러운 돈으로 주민 투쟁을 모욕하지 말고 불법공사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주민 4명은 이날 경북경찰청 민원실을 방문해 돈을 돌려준 후 돈 출처와 전달과정을 수사해달라며 직위해제된 이 전 서장 등을 고발했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