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恥下問 (불치하문)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윤용섭 한국국학진흥원 부원장

자공이 공자에게 "공문자(孔文子)는 어찌하여 문文이라는 시호를 얻었습니까?" 하고 물었다. 공문자는 춘추시대 위나라 대부 공어를 말하는데, 집안의 복잡한 분쟁에 휘말려 사위를 공격하려 했던 사람이다. 따라서 그렇게 훌륭한 인물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이 자공의 속생각인지 모른다. 당시 공로가 높은 신하가 죽으면 나라에서 시호를 내리는데, 가장 좋은 시호는 바로 문文이었다. 문은 한 시대의 문화를 총칭하기도 하며 흔히 훌륭한 학문으로 이룩한 현인의 문덕文德을 일컫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공자의 시호가 문선왕(文宣王)이며 주자학을 완성한 주희는 문공(文公), 우리나라의 이퇴계 선생은 문순공(文純公), 이율곡 선생은 문성공文成公인 것이다.

그런데 자공의 질문에 대한 공자의 답이 천고의 명언이니, 바로 민이호학(敏而好學) 불치하문(不恥下問), 즉 '민첩하여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였다. 사회생활에서의 결점은 있지만,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정도로 배우기를 좋아한 공어의 미덕은 그의 결점을 보충하기에 충분하다는 취지다.

공자의 이 말씀은 안중근 의사(義士)도 좋아하여 여순감옥에서 쓴 안 의사의 친필유묵이 지금도 남아있다. 신분의 차별이 없어진 오늘의 문명사회에서도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직위가 낮은 사람에게 묻고 배우는 것은 매우 어렵고 드문 일에 속한다. 그런데 이처럼 드문 일을 행하는 사람이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이 아닐까? <공야장편>

一. [자공이 묻되 공문자는] 어찌 문(文)이라 부르게 되었습니까?

何以謂之文也

하이위지문야

子曰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二. 영민하고 배우기를 좋아했으며

敏而好學(민이호학)

三.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不恥下問(불치하문)

四. 이 까닭으로 문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是以謂之文也(시이위지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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