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찬회담 합의에 만족…예방 필요성 못 느꼈을 수도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등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박근혜 대통령 예방을 사실상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 당국자는 4일 "오찬 회담 때 우리 측은 북측 대표단이 청와대 예방 의사가 있다면 준비할 용의가 있다고 언급했다"며 "이에 대해 북측은 시간관계상 이번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소개했다.

결국 남측에서는 청와대 예방 의사를 타진했으나 북측이 거부한 셈이다.

사실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인 황 총정치국장이 대표단의 단장 자격으로 군 정복 차림을 하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청와대 예방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2000년에도 당시 조명록 군 총정치국장 겸 국방위 제1부위원장도 미국을 방문해 군복을 입고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은 될 수 있으면 남한의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을 직접 만나 남북관계 등에 대한 약속을 받으려고 해 왔다"며 "이번에 북한 대표단이 남측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박 대통령을 만나도 오찬회담에서 합의한 내용 이상을 얻어내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청와대 예방을 수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10월 말에서 11월 초 사이에 제2차 고위급접촉을 하고 남북간 현안을 논의키로 한 만큼 더 이상의 결과물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2009년 남측을 방문한 김기남 노동당 비서 등 조의 대표단은 체류 일정을 하루 연장하면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빈손'으로 귀환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당시 이 대통령은 북한 대표단을 만나 비핵화를 촉구하면서 이것이 이뤄지면 대북 지원을 할 것이라는 내용의 '비핵·개방 3000'의 원칙을 설명하는데 면담 시간 대부분을 할애했다.

따라서 이번에도 박 대통령을 예방해봐야 비핵화 촉구, 병진노선 비판, 인권문제 거론 등으로 일관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피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북한은 대통령을 만나도 현재의 남북관계 분위기를 확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을 것"이라며 "오찬회담을 통해 남측에 전달할 메시지를 모두 전한 상황에서 굳이 청와대 예방에 연연할 필요를 못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 이후 북한이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입에 담기 어려운 문구를 동원해 비난한 상황에서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데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 주민들까지 박 대통령의 비난에 동원돼온 상황에서 고위급 대표단이 청와대 예방에 집중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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