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망가뜨린 개인의 삶과 희망

아내는 남편이 돌아오기로 약속한 매월 5일이면 아침 일찍부터 기차역으로 나간다.

기차에서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철문이 닫히고 나서야 아내는 실망을 애써 감춘 채 발걸음을 돌린다.

그 옆에는 아내를 부축하는 남편이 있다.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된 중국 출신 장이머우 감독의 '5일의 마중'은 기억을 잃은 채 남편을 곁에 두고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이야기다.

영화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중국 전역에 극좌 광풍을 일으킨 문화대혁명으로 처참하게 무너져내린 가족의 비극을 보여준다.

불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대학교수인 루옌스(친따오밍 분)는 반동분자로 낙인 찍혀 아내 펑완위(궁리)와 어린 딸 단단(장후이원)을 남겨둔 채 투옥된다.

영화는 10여년간 연락 한 번 할 수 없었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견디다 못한 루옌스가 탈옥해 집을 찾아오는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5월의 마중'은 장면 하나하나가 영화가 끝나고서도 오래도록 기억나는 영화다. 관객들은 도입부에 등장하는 부부의 이별 장면부터 마음을 빼앗긴다.

서로 찾아 헤매다 엇갈리는 아내와 남편의 모습은 관객들을 함께 애타게 하고 찐빵과 이불을 정성스레 싼 아내의 보따리가 내팽개쳐지는 장면은 결국 눈물을 유도한다.

수년 후 그토록 그리워했던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는 펑완위의 모습도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남편의 이 정도 노력이라면 펑완위의 기억이 돌아오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품었던 관객의 기대는 번번이 배반당한다.

우리 바람과는 달리 역사가 망가뜨린 개인의 삶은 원래 모습을 찾지 못한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나날 속에서도 묵묵히 버티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다.

이 작품은 장이머우와 궁리가 '황후화' 이후 7년 만에 재회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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