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미래수산 대표 “기술향상이 성공의 길…우량 전복종패 개발 매진”

김대곤 밝은미래수산 대표가 1년 가량 자란 전복종패를 들어 보이고 있다.

양식산업은 수산식량의 보고(寶庫)이자 미래산업의 블루오션으로 불린다.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이 가파른 상승세를 타면서 세계적으로 수산물 소비추세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1인당 수산물 소비량은 1991년부터 20년간 45.4%로 폭등했다.

국가별로는 한국이 같은 기간동안 36.7%로 증가했으며, 소비 블랙홀로 불리는 이웃나라 중국은 19.7%가 늘었다. 수치로 보듯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추세를 나타내며 자칫 수산물 가격이 급등하는 '피쉬 플레이션'도 우려되고 있다.

1년 가량 자란 전복.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다. 이는 그만큼 수산업과 밀접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미래 식량자급과 차세대 해외수출품목 개발이라는 2가지 목표아래 해양수산업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전복양식' 외길인생 김대곤씨

2~3년 가량 자란 전복.

울진군 기성면 바닷가에서 전복 양식을 하는 김대곤(52·밝은미래수산 대표)씨는 자나깨나 전복생각 뿐이다.

울진 토박이인 김 대표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해 전자제품 기능공으로 일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직장생활 중 당시 새로운 사업으로 각광을 받던 수산양식업이 눈에 들어왔다. 흔히 요즘 말로 '꽂힌' 셈이다.

마음의 결정이 선 김 대표는 곧바로 4년간의 직장생활을 접고 28살의 늦깎이 신입생으로 포항 1대학 양식과에 입학했다.

6개월 미만의 전복종패가 자라고 있는 생산동 모습.

우선 체계적인 전문지식이 있어야 무엇이든 제대로 시작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후 실무경험을 쌓기 위해 포항 구룡포 광어양식장에서 5년간 근무하며 미래의 목표를 향해 묵묵히 달렸다.

본격적으로 전복을 키운 건 광어양식장 일을 그만둔 뒤인 1997년이다. 당시 IMF로 인해 경제사정이 녹록치 않았지만 5년간의 경험이 큰힘이 됐다.

저수조 설치부터 용접, 부품 조립까지 못하던 것이 없었던 김 대표는 손수 양식장을 완성했다. 본인이 직접 하다 보니 설치 비용을 절반이나 아낄 수 있었다.

1차 전복종폐에서 어느정도 자란 전복을 크기 별로 나눠 키우는 중간육성동 모습.

사업 초기 전복양식업은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물량이 딸려 서로 선점하기 위해 선금을 줄 정도였다.

김 대표는 "당시에는 원재료 값이 저렴하고 전복양식이 초기인 탓에 없어서 못팔 정도였다"며 "그때 전복성패 1kg 도매 가격이 지금의 2배 가격인 9만 5천원에 거래됐다"고 귀뜸했다.

잘나가던 전복양식은 서·남해안의 대형 전복 가두리 양식업이 활성화되면서 서서히 활력을 잃어가게 됐다.

공급과잉으로 출혈경쟁이 시작되면서 제값을 못받는 상황이 악화됐던 것.

이때쯤 전복에 목숨 건 김 대표는 눈을 돌렸다.

우리지역 바다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우수한 종패를 만들어보자는 새로운 꿈을 세웠다.

해마다 어자원 고갈이 심화되고 있는 동해바다에서 잘 적응해 클 수 있는 우량 전복종패는 곧바로 어업인들의 소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전복종패 생산은 기술과 노력의 결과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차 전복 유생에서 종패로 생산될 확률은 약 20%로 매우 낮은 편이다.

김 대표는 "유생 부화기에는 2~3일을 뜬눈으로 보내야 할 정도로 민감하다"면서 "깨끗한 물과 적정 온도 및 산소 등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차츰 완숙된 기술이 쌓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복양식의 미래 그리고 꿈

김대곤 대표는 전복종패를 생산해 한해 평균 2~3억원의 매출고를 올린다.

그러나 10년전에 비해 인건비와 재료비는 2배 이상 올랐지만 판매가는 제자리걸음인지라 시설개선에는 엄두를 못내고 있다.

김 대표는 "17년전 내손으로 만든 양식장은 지금 2배 이상 커졌지만 첨단 시설을 갖추기엔 자금이 만만찮다"며 "앞으로 정부정책이 기르는 어업에 힘을 싣는 만큼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나름대로 지금까지의 양식경험을 바탕으로 우량 전복생산이 생산되고 있다"며 "지금 연구하는 양식 기술이 성공을 거둔다면 2~3년 뒤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고품질의 전복종패를 생산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췄다.

김 대표는 전복에 빠져 사는 만큼 지역 후배 사랑도 뜨겁다.

매년 자신의 수익금 일부를 모교에 기부하는 등 인재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김 대표는 "지역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게 너무 부끄럽다"며 "장학금을 받은 후배들이 미래에 어른이 된 뒤 똑같이 돌려줬으면 좋겠다"며 쑥스러워 했다.

그는 "일본과 중국 등 현재 전복을 양식하는 다른 나라들을 찾아 견학해본 결과 우리나라 기술은 상당한 수준이다"면서 "노후화된 시설 개선과 해외시장만 개척한다면 수출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고 했다.

전복으로 시작해 전복으로 끝을 보겠다는 김 대표는 양식어업의 기술향상이 곧 살길이라고 믿는다.

비록 겉으로 보기엔 시골 냄새나는 무뚝뚝한 남자지만 그의 꿈은 야심차고 기술이 최고라 믿는 뚝심 있는 어업인이기에 우리 수산양식업의 전망은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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