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위해 목숨바친 권전·권기일, 역사적 사건에 그림자역 자처, 정신자본은 지도층의 책임·의무

김정모 서울취재본부장

개천절부터 오늘 한글날까지 태극기를 내건다. 영화 '명량' 관람객이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 세월호 침몰사태 이후 불신 불만 불안이 높아간다. 명량의 흥행 배경이다.

국난을 당해 누가 신출귀몰한 방법으로 위업을 이뤘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역사의 주역이 태양처럼 빛나기까지 이름도 없이 몸을 던져 도운 조역도 그 못지않다.

이순신의 막료에 권 전(1549~1598)이 있었다. 묘비명에 따르면 무과 출신으로 경상도 고성 현령을 지내다 임진왜란시 만호와 판옥선 함장을 지냈다. 옥포, 사천, 당포, 명량에서 이순신과 청사에 길이 빛나는 전과를 올려 아장(亞將)이 된다. 장군선(船)에서 이순신을 보좌하다 노량전투에서 전사했다. 국록을 먹는 벼슬아치로 당연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도 하지 않는 세태이기에 칭송받는다.

나라를 지키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국가가 패망한 뒤에 국권 회복을 도모하는 것이다. 상상하기 어려운 희생과 결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책임질 필요 없는 벼슬아치가 아니면서 국민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라면 더욱 그렇다.

권 전의 애국 충정은 추산 권기일(1886~1920) 선생으로 대를 잇는다. 안동 검암리 안동권씨 부정공파 대곡 문중 주손(胄孫)인 추산은 경술국치 후 천석부자의 종가 재산을 팔아 1911년 3월 식솔을 데리고 만주로 갔다. 석주 이상룡이 주도한 신흥무관학교 설립자금을 대고 서간도 동포사회의 정착과 군자금 모집에 나서는 등 이회영 이동녕과 함께 항일투쟁을 했다. 무관학교 출신의 독립군은 청산리·봉오동대첩을 거뒀다. 추산은 1920년 8월 15일 일본군의 신흥무관학교 기습으로 최후의 일인으로 최후의 일각까지 항전하다 이역만리 만주 땅 길림성 통화현에서 서른여섯 청년의 뜨거운 몸으로 순국했다. 추산의 불꽃같은 애국심은 몇 줄 글로서 어찌 다 말하겠는가. 추산 후손의 가난이 증명하고도 남는다.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말하는 이기심과 이익의 관점에서 보면 독립투사들은 허무한 인생실패자다. 알프스를 넘어온 세계 최고 경제대국이자 무적의 카르타고군 앞에 풍전등화의 로마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노블리스 오블리주'였다. 귀족들이 너도 나도 재산을 털어 군비를 대 의무를 다했다.

8·15 해방은 우리 힘으로 직접 달성하지 못했다. 1943년 11월 미·영·중 3국의 카이로 정상회담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이 약속한 것이다. 세계 식민지 국가 중 처음이다. 한국인들의 독립의지를 높이 샀다. 우리의 독립투쟁의 결과다. 모택동에 의해 합병된 위구르족과 티벳트족은 지금까지 6,70년간 중국과 유혈투쟁을 벌이고, 나라 잃은 쿠르드족은 터키 이란 이라크에 흩어져 지금까지 독립을 하지 못하고 유랑하고 있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을 앞두고 "스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선수가 필요하다"했다. 권 전과 권기일은 스타라기보다는 그림자를 자처한 역사적 선수였던 것이다.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처럼 낭만적 사랑을 위해 바친 열정이 아니다. 정주영처럼 사업의 열정도 아니다. 그것은 조국에 대한 열정이자 책임의식이다. 한국의 정신자본은 지도층의 책임과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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