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일 잃은 빛바랜 급수탑, 오가는 열차 배웅하며 옛 영화 추억

안동시 운흥동 안동역 내에 있는 옛 급수시설로 지난 2003년 1월 등록문화재 제 49호로 지정된 안동역 급수탑.

△안동역 급수탑

안동역 급수탑은 안동시 운흥동 안동역 내에 있는 옛 급수시설로 지난 2003년 1월 등록문화재 제 49호로 지정됐다.

1940년에 축조한 급수탑의 구조는 탑 부분과 수조 부분으로 이뤄져 있으며, 전체 높이는 약 24.1m이며 콘크리트 기초 위에 급수조 하단까지 위로 점점 좁아지는 사다리꼴로 축조했다.

안동역 급수탑의 평면 형태는 다른 급수탑이 원형인 것과는 달리 12각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급수조의 천장은 돔형이고, 급수탑 몸체 사방으로는 서로 다른 위치에 높이 1.1~1.4m의 창을 내었다. 몸체 남쪽에는 3.1×3.3m 크기의 출입문을 냈으며, 그 뒤쪽으로는 급수탑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철제 사다리가 설치돼 있다. 당시의 전형적인 급수탑 형태를 보이며 원형의 보존 상태가 좋다.

1907년 서울에 설립한 서점겸 출판사 '박문서관'에서 만든 목판.

중앙선 안동역은 1940년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급수탑은 1899년 서울~인천 간 경인선의 개통과 함께 처음 등장했다가 1950년대에 디젤기관차가 등장하면서 제 기능을 다하고 사라졌다. 한국 철도 역사의 이해와 근대 교통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가치가 있다.

△박문서관 목판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에 위치한 은행나무. 수령은 700년 정도로 추정된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하고 있는 '박문서관 목판'은 근대문화재로 지정 고시돼 있다.

박문서관은 1907년 노익형(盧益亨)이 신문화의 수입에 따른 책전 역할의 수행을 목적으로 서울에 설립한 서점 겸 출판사로써, 유교의 기본경전인 사서(四書)와 문학·어학·사전 등 실용 대중서 등의 서적을 인쇄했다.

박문서관은 학계에 따르면 근대기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출판사로 평가되는데, 특히 일제강점기하에 민족정신의 고취와 국민계몽에 기여한 점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안동시 와룡면 주하리에 위치한 뚝향나무로 '노송운첩'에 내력이 실려있다.

박문서관 목판은 설립자 노익형의 후손이 보관해오다가 지난 2010년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된 것으로, 판면이 훼손된 경우가 많고 마구리가 모두 결실돼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20세기 초기의 한글 서체를 볼 수 있는 자료이자, 근대화 과정에서 사라진 목판 간행과 그 교정의 모습을 알려주는, 즉 근대의 출판 역사를 볼 수 있는 역사적 자료라는 점이 인정돼 국가문화재인 근대문화재로 지정 등록됐다.

지정된 주요 목판은 '논어언해', '대학언해', '맹자언해', '소학언해', '중용언해' 등 유교경전의 언해본 목판과 '유몽선습', '십구사략', '통감절요' 등 아동용 교과서 목판으로써, 특히 언해본 목판은 현재 방각본의 한글 판목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20세기 초기의 한글서체를 이해하고 연구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안동시 임동면 대곡리에 위치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굴참나무.

△용계리 은행나무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7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31.0m, 둘레 13.67m이다. 원래는 용계초등학교 운동장에 있었으나 임하댐의 건설로 물에 잠길 위치에 있어 15m의 높이로 흙을 쌓아 지금의 위치에 옮겨 심은 것이다.

이 나무에는 조선 선조 때 훈련대장이었던 탁순창(卓順昌)이 서울에서 내려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은행나무 계(契)를 만들어 이 나무를 보호하고, 매년 7월에 나무 밑에 모여 서로의 친목을 도모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한다. 현재 이 마을은 사라졌지만, 탁씨의 자손들은 해마다 나무에 제사를 드리며 보호하고 있다.

용계의 은행나무는 주민 단합을 이루게 하는 상징물로서의 역할을 해 온 나무로서 가치가 크고, 우리 선조들이 나무를 사랑하고 보호한 것을 알 수 있는 자료이며, 우리나라에 있는 은행나무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 중에 하나이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주하리 뚝향나무

안동시 와룡면 주하리의 뚝향나무는 나이가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3.2m, 둘레 2.25m의 크기이며 가지가 아래로 처지는 것을 막기 위해 37개의 받침대를 세워서 관리하고 있다.

조선 세종 때 선산부사를 지낸 이정(李楨)이 평안북도 정주판관으로서 약산성 공사를 마치고 귀향할 때 가지고 와서 심었던 세 그루 중 아직 남아 있는 한 그루라고 하며, '노송운첩'에 이에 대한 내력이 실려 있다고 한다.

주하리의 뚝향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문화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대곡리 굴참나무

안동시 임동면 대곡리의 굴참나무는 나이가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가 22.5m, 둘레는 5.4m로 현재 보호되고 있는 굴참나무 중 가장 강건하고 나무의 모양이 잘 발달돼 있다.

마을에서는 농사일을 마친 7월 중 좋은 날을 택해 논길을 보수하고 잡초를 벤 후, 일이 끝나면 동네사람들은 나무 아래에 모여 제사를 올리고 음식을 나눠 먹었다고 한다. 또한 봄에 이 나무에 소쩍새가 와서 울면 풍년이 든다고 믿고 있다.

대곡리 굴참나무는 마을의 정신적 지주로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호속에 자라온 나무로서 민속적 가치가 크다. 또한 우리나라 굴참나무 중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 중의 하나로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송사동 소태나무

안동시 길안면 송사동의 소태나무는 나이가 약 400년이며, 높이 14.6m, 둘레 3.20m(동), 2.28m(서)로 소태나무로는 매우 큰 편이다. 송길초등학교 뒷뜰에서 자라고 있으며, 회화나무·느티나무 및 팽나무 등 10여 그루의 나무와 함께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근처에 신을 모셔놓은 집인 서낭당이 있고, 여러 그루의 크고, 오래된 나무가 함께 있는 것으로 미뤄 보아 마을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숲인 성황림으로 보호됐던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매년 음력 1월 15일이면 마을의 안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송사동 소태나무는 소태나무 중에서는 매우 오래되고 큰 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높고, 우리 조상들의 종교문화를 알 수 있는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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