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정복 성취감에 피로 잊고 고난이 주는 유익함을 깨달아

윤중원 한국폴리텍대학 포항캠퍼스 교수

지리산 종주 막바지 코스인 중산리로 하산하는 길이 너무 피곤하고 지루했다. 아들 녀석은 다리를 절뚝이며 더 이상 걷기를 거부할 정도였다. 폭우가 쏟아져 입산통제가 된 가운데 길은 이미 도랑이 되어 물이 콸콸 넘쳤다. 한참 내려오다 계곡을 만났는데 급류 속으로 돌 구르는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 같았다. 사투 끝에 도착한 중산리 마을. 그렇지! 우리가 지리산 종주를 해냈구나 하는 성취감에 피곤은 뒷전이었다. 평소 시냇물은 자연을 노래하며 흘렀건만 폭우 후에 지금 들리는 소리는 엄청난 진통의 소리였다. 만약 냇가 바닥에 돌이 없다면 급류는 거침없이 위용을 뽐내며 흘렀으리라. 갑자기 인생의 고난을 떠 올리며 '고난의 돌이 없으면 시냇물은 노래하지 않는다'라는 어느 가수의 멋진 고백이 생각났다.

오늘 필자는 지리산 35㎞ 종주를 뒤돌아본다. 처음 아들이 앞장서서 젊은 다리를 자랑했다.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노고단에서 벽소령대피소까지 오르락내리락 수십 번하면서 겨우 도착한 대피소에서 여장을 풀고, 나는 이내 몸살기로 드러눕고 말았다. 새벽녘에 한기는 가시고 거의 회복이 됐다. 아들과 함께 강행군을 또 시작했다.

새석대피소를 지날 즈음 폭우가 시작되고 장터목에 와서는 더욱 심했다. 아들에게 쉬지 말라고 전진 명령을 내렸다.

그 녀석 대답이 "군대도 이 폭우에는 훈련을 중지합니다" 그때 나는 불호령을 내리면서 계속 전진할 것을 강요했다.

아들은 드디어 다리를 절뚝이기 시작했다. 속으로는 "교만의 콧대를 꺾을 기회가 왔구나! 그럼 그렇지!" 어느 듯 정상에 섰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도 천왕봉 1천915m가 쓰여진 표지석 앞에서 아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중산리로 하산을 하는데, 아들은 매우 힘들어 하면서 몇 번이고 쉬어가기를 원했다. 나도 죽을 지경이었지만 아버지의 리더십을 보이고자 아들을 격려하며 계속 걸었다. 정상을 정복한 성취감은 폭우도 당하지 못했다. 그렇다! 도전 그것은 아름다운 것, 시냇물 속에 있는 돌은 흐르는 물에 타격을 입고, 그것도 수많은 시간 속에서 처음에는 모난 돌이었지만 깎이고 깎여 이제는 둥근 돌이 되어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고난의 돌이 없으면 시냇물은 노래하지 않는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지리산 종주의 고난에서 아들의 자만은 겸손으로 돌아섰고,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이겨낸 필자는 이제는 고난을 노래할 수 있다. 지리산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고난의 돌'을 '위대한 돌'이라고 명명하며 인생에서 '고난이 유익이다' 이 말을 진리로 선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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