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몸 낮춘 운문사 처진 소나무, 막걸리 공양을 받다

등록문화제 제256호로 지정된 풍각면 송서리에 위치한 풍각면사무소 전경.

△풍각면사무소

청도군 풍각면 송서리의 풍각면사무소는 지난 2006년 6월 등록문화제 제256호로 지정된 1930년대 건립된 장방형 평면의 면사무소 건물이다.

돌출된 현관 포치에 의해 중앙현관의 상징성을 표현하고 있으며 지붕의 박공부분에 구성된 여러 단의 특이한 환기창, 돌출된 현관의 캐노피, 목재비늘판벽과 시멘트 모르타르의 2단으로 마감된 외벽 등 의장적으로 특징이 있는 건물이다.

지붕은 용마루 상단부를 삼각형으로 모를 낸 '반절맞배지붕'형식을 취하고 있고 마당에 있는 측량 수준점은 이 건물의 가치를 더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대의 지방 면사무소의 건축형태와 공간구성 및 재료 등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건축적, 향토사적, 지방행정사적 가치가 있다.

이호우·이영도 시조시인 남매 생가.

지난 2005년 풍각면사무소가 신축 이전한 뒤 원형을 복원하는 보수사업을 시행해 어린이를 위한 작은도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호우·이영도 생가

청도읍 유호리의 이호우·이영도 생가는 지난 2006년 12일 등록문화재 제293호로 지정된 1910년께 건축된 근대기 단층 한옥집으로 건물배치는 안채와 사랑채가 'ㄱ'자형으로 구성돼 있다.

천연기념물 제295호 매전면 처진소나무.

이 집은 시조시인 이호우(1912~1970)·이영도(1916~1976) 남매가 태어난 가옥이다. 전통 시조 형식에 현대적인 감각과 정서를 담아낸 이호우는 '개화(開花)', '휴화산(休火山)' 등을 남겼으며, 여류 시조시인으로 교편을 잡기도 한 이영도는 시조집 '청저집(靑苧集)'과 수필집 '춘근집(春芹集)' 등을 남겼다.

이호우와 이영도는 한국 현대시조의 격을 한 차원 높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대 한국 문학사에서 일정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시조시인 남매의 생가라는 점에서 문학사와 향토사적 가치가 높다.

천연기념물 제180호 운문사 처진소나무.

△운문사 처진소나무

청도군 운문면의 운문사 처진소나무는 지난 1966년 8월 천연기념물 제180호로 지정됐으며 수령은 약 500년으로 추정된다.

처진 소나무는 간혹 야생상태에서는 보고된 바 있으며 소나무가 눌렸을 때 가지가 위로 뻗지 못해 밑으로 처져 있다가 그대로 굳어진 것은 있으나 이 소나무는 전혀 그러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전형적인 처진 소나무이다.

우리나라 고목들은 많은 삽목 전설이 있는데, 호거산(虎踞山) 운문사 뜰 평탄한 곳에 있는 이 나무에도 어느 대사가 지팡이를 꽂아 자랐다는 전설이 있다. 임진왜란과 6·25동란 때 수 차례 무리들의 방화로 많은 건물들이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어나 이 처진소나무만은 재앙을 면할 수 있었다.

천연기념물 제402호 적천사 은행나무.

봄이면 막걸리 12말을 12말의 물에 타서 뿌리에 부어주는 행사를 계속하고 있고 수형이 매우 아름답고 가지가 처지는 소나무로는 우리나라 최대의 것이다.

△각북면 털왕버들

청도군 각북면 덕촌리의 털왕버들은 지난 1982년 11월 천연기념물 제298호로 지정됐으며 수령은 약 200년으로 추정된다.

각북면 털왕버들의 크기는 높이가 15m, 가슴높이의 둘레가 4.9m, 가지는 1.56m에서 갈라지기 시작해 동쪽으로 10m, 서쪽이 11.25m, 남쪽이 11.6m, 북쪽이 8m이다. 일반 왕버들처럼 생겼으나 가지와 엽병(잎자루)에 털이 있는 것이 다르다.

마을 앞 하천뚝에서 자라고 있으며 정자목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휴식처 역할을 하고 있는 털왕버들은 지상 1.56m에서 두 개로 갈라져서 한쪽은 용천사(湧泉寺)를 향해 비스듬히 뻗어 있었는데, 지난 2000년 여름 태풍 피해로 없어졌고 한쪽은 곧게 자라 왕성한 수세를 자랑하고 있다.

△매전면 처진소나무

청도군 매전면 동산리의 처진소나무는 지난 1982년 천연기념물 제295호로 지정됐으며, 수령은 약 200년으로 추정된다.

처진소나무는 가지가 아래로 처지는 수형을 가진 것인데 접목으로 이 형질이 유전되며, 우리나라 처진소나무 중 가장 전형적인 것이 매전면 처진소나무이다.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4m, 가슴높이의 둘레가 1.96m, 지상부의 둘레 2.4m, 가지 밑의 높이가 6m이고, 가지의 길이는 동쪽이 5.5m, 서쪽이 4.8m, 남쪽이 2.9m, 북쪽이 6.2m이다.

나무 옆에는 고성 이씨(高城 李氏)의 묘(墓)가 있는 점으로 보아 도리솔의 한 나무로 보호돼 왔을 것으로 보인다. 옛날 어느 정승이 이 앞을 지나갈 때 갑자기 큰절을 하듯이 가지가 밑으로 처지더니 다시 일어서지 않았다는 전설도 있다.

△이서면 은행나무

청도군 이서면 대전리의 은행나무는 지난 1982년 11월 천연기념물 제301호로 지정됐으며, 수령은 1천300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을 가장자리에서 자라며 나무 밑은 통로가 되고 맹아(萌芽)가 무성해 원줄기를 둘러싸고 수세가 왕성해 나무둥치가 용트림하듯 감겨 올라간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시대 지나가던 한 도사가 은행나무가 선 자리에 있던 우물을 보고 물을 마시려다 빠져 죽은 후 우물에서 은행나무가 자라 났다는 설과 또한 이 마을을 지나던 한 부인이 우물에 물을 마시려다 빠져 죽었는데 그 여인이 주머니에 갖고 다니던 은행 알이 싹터서 자라는 동안 우물은 없어지고 은행나무만이 살아 남았다고 전한다.

또 하나의 설은 신라말경에 지방행정구역 변경 때 경계수로 심은 것이라고 해 수령을 1천300년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 부락에는 의흥 예씨(義興 芮氏)의 후예들이 살고 있는데 은행나무의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다음해의 풍흉을 점치고 있다. 잎이 한꺼번에 조용히 떨어지면 풍년이 들고, 시름시름 떨어지면 흉년이 든다고 믿고 있다.

△적천사 은행나무

청도읍 월곡안길의 적천사 은행나무는 지난 1998년 12월 천연기념물 제402호로 지정됐으며, 수령은 800년으로 추정된다.

높이 28m, 둘레 11m의 암나무로 열매가 달리며, 가지의 길이는 동서로 28.8m, 남북으로 31.3m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예가 드물게 노거수로서 수형이 아름답고 맹아(萌芽) 및 유주(乳柱)의 발달이 특이한 나무이다.

적천사를 고려 명종5년(1175)에 지눌(1158∼1210) 보조국사가 오백대중이 상주하는 대가람으로 중건할 때 절 부근 숲속에는 많은 도적 떼들이 살고 있었는데, 지눌보조국사가 가랑잎에 범 '호'(虎)자를 써서 신통력으로 호랑이를 만들어 부근 산에 풀어놓으니 도적들이 호랑이를 보고 겁을 내어 모두 도망을 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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