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삶의 모습을 즐겨 그린 단윈 김홍도의 풍속화 가운데 서민의 고달픈 생활상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 있다. 낡은 벙거지에 지게를 짊어지고 있는 사내와 아이를 등에 업고 찌그러진 광주리를 머리에 인 행상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부상(負商)과 보상(褓商)의 모습을 그린 부보상(負褓商) 그림이다.

등짐을 진 부상은 삼국시대 이전, 보따리를 인 보상은 신라 때부터 있었다지만 19세기 조선시대에 와서는 상단이 형성될 만큼 활발한 경제활동을 한 경제주역이었다. 등짐장수나 봇짐장수로도 부르고 5일장을 돈다고 해서 장돌뱅이로도 불리는 이들은 규율이 엄격한 상인집단이었다.

지난 2010년 국립민속박물관이 부보상 전시회를 열면서 흥미로운 추정치를 발표했다. 부보상 생활을 30년 하면 지구를 3.6바퀴나 도는 만큼 걷는다는 것. 부보상이 1800년대에 각 마을의 5일장을 돌아다녔던 거리를 계산해보았더니 한 달에 396.66㎞, 1년이면 4천759.92㎞라는 것이다. 등짐장수는 바다 산물인 생선과 소금, 육지 산물인 목기나 죽세공품, 질그릇 등을 지게로 지고 날랐고, 봇짐장수는 문방구나 인삼, 장신구, 화장품 등 비교적 가볍지만 돈 되는 잡화를 취급했다. 이들 부보상의 발자취는 전국에 분포돼 있고, 대구경북 지역에도 몇 곳 남아 있다. 이들은 1960년대까지 조직과 규율, 의식을 전승하며 명맥을 이어왔다. 경북 울진과 고령, 대구 달성군 지역에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고령의 상무사(商務社)는 잘 알려져 있다. 상무사는 조선 후기 부보상단의 업무를 관장하던 곳이다.

대구에서 '조선 부보상을 만나다'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오는 30일까지 대구근대역사관이 여러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던 부보상 관련 유물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 등짐장수가 행상할 때 가지고 다니던 지게작대기인 '금물장'과 인장, 상단 임원의 이름과 신분 등을 기록한 '선생안', 규약을 기록한 '좌사제규약', 상무사 기(旗) 등을 볼 수 있다. 선조들의 경제활동 단면을 읽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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