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柏後彫 (송백후조)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송백의 지조를 안다

윤용섭 한국국학진흥원 부원장

대지에 물과 불기운이 충만한 여름에는 녹음이 무르익고 백화가 방창하다. 모든 풀과 나무가 화려함을 뽐내고 열정을 태우며 생명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이 시절 과연 어떤 나무가 더욱 굳센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어느덧 서리가 내리고 쌀쌀한 서녘 바람이 불면, 짙푸르던 잎새는 어느새 불그레한 단풍이 되어가며 하나둘 지기 시작한다. 낙엽이 깔린 가을길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정열을 불태우던 청춘기가 지나간 것은 사실이다. 이어서 첫눈이 내리고 겨울이 깊어지면, 그 곱던 단풍잎도 어느새 사라지고 풀은 마르고 나무는 맨살을 드러낸다. 북풍이 몰아치는 겨울날, 백설이 분분히 날리면 그 화려함을 자랑하던 초목들이 앙상하기만 한데, 오직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르름을 잃지 않고 장엄하게 겨울의 산야를 지켜준다. 이 모습이 바로 송백지후조(松柏之後彫)다.

사람도 그렇다. 좋은 시절에는 누구나 넉넉할 수 있고 예절을 차릴 수 있다. 그러나 인생행로에 찬바람이 몰아쳐 집안이 몰락하거나 직장이 없어지거나 사업이 실패하거나 하면, 누구나 실의에 빠지고 비탄에 잠긴다. 여기서 절망하여 성격까지 바뀔 수 있고 엉뚱한 유혹에 빠지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평소 부귀와 빈천에 흔들리지 않는 공부를 한 사람이나 세상의 칭찬과 비방에 흔들리지 않는 정신을 기른 사람은, 이 어려운 시기를 어느 정도 꿋꿋하게 넘길 수 있다. 또 어려울 때 변치 않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 한다. 고난을 겪어야 평소 수양을 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드러난다 하겠다. <자한편>

子曰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一.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송백이 뒤에 시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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