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의 지평리전투 승리에는 두 영웅이 있었다. 랄프 몽클라르 프랑스군 육군중령과 당시 미 23연대 연대장인 폴 프리먼 대령이었다. 1, 2차 대전에서 용맹을 떨쳐 각종 무공훈장을 받고 육군준장으로 전역한 몽클라르는 프랑스가 한국전 참전을 결정하자 스스로 4계급을 낮춰 중령으로 대대 지휘관에 자원했다. 국방차관이 자원을 만류하자 "중령이라도 좋습니다. 저는 언제나 전쟁터에서 살아왔습니다. 곧 태어날 자식에게 제가 최초로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했다는 긍지를 물려주고 싶습니다"며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또 한명의 영웅 폴 프리먼 대령은 전투중 심각한 부상을 입고도 후송을 거부, 마지막까지 싸워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1951년 2월13일부터 3일간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 일대에서 미국과 프랑스연합군이 중공군과 사생결단의 공방전을 벌였다. 중부전선의 교통요지를 노린 중공군의 맹공격에 아군은 모두 후퇴, 미23연대만 남아 고립됐다.

리지웨이장군으로부터 사수명령을 받은 프리먼 대령은 동서남북 사방에 진지를 구축, 서쪽엔 몽클라르 중령의 프랑스군 대대를 배치했다. 격전중 중공군 박격포탄이 연대장 지휘소에 떨어져 프리먼대령은 다리에 중상을 입었다. 부상 소식을 들은 군단장이 지휘관을 교체하려고 했으나 "제가 우리부대를 이곳으로 끌고 왔으니 마무리도 제 손으로 하겠다"며 프리먼 대령은 후송을 거절했다. 다리를 절뚝이면서 최전방 진지로 나가 병사들을 독려했다. 서쪽을 지키던 몽클라르의 프랑스대대는 중공군의 협공으로 위기에 빠졌으나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백병전을 벌여 진지를 사수했다. 3일간 포위된 미·프랑스연합군은 구원군의 지원으로 중공군을 물리치고 구출됐다. 중공군 참전 첫 패배를 안긴 이 두 영웅은 아무리 목숨이 경각에 달려도 자신의 임무완수에 모든 걸 받쳤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을 지근에서 보필하는 청와대 참모들이 자기 직분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별로 없다. 오죽하면 '청와대 얼라들'이란 핀잔까지 나왔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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