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학에 조예가 깊음에도 불구하고, 계향은 거기 얽매이지 않았다. 그보다도 부엌일에 더 큰 도가 자리 잡고 있는 듯 행동했다.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은 여자의 도니라' 며느리들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계향은 제 마음속에 그 말을 심어준 어머니 권씨를 생각했다. 나이 들수록 이상하게 어머니가 그리웠다. 여자들이 하는 부엌일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가족이 먹는 것이고 두 번째는 손님을 접대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제사를 올리는 것이다. 봉제사와 접빈객은 당시 조선 사회 예학의 핵심이었다. 그러니 한 가문의 예란 실은 모두 부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서령이 지은 실명(實名)소설 '장계향, 깨달은 조선 여인'의 한 대목이다. 장계향은 '육경(六經)의 주석이 하늘의 말씀이라면 곡식과 채소와 육고기와 물고기 안에 더 생생한 하늘의 말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인물이었다.

조선시대는 남성의 시대였다. 남성 못지않은 출중한 재주와 능력을 가진 여성들이 많았지만 그들의 이름은 남겨지지 않았다. 극소수의 인물만 누구의 어머니, 누구의 아내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을 뿐이다.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도 이름대신 당호와 성씨만 유명할 뿐이다. 이러한 시대상 속에 사임당과 비견되는 영남의 여성군자(女性君子) 안동장씨(安東張氏) 장계향(張桂香·1598~1680)이 있다. 계향은 경서를 두루 읽었을 뿐 아니라 뛰어난 서예실력으로 '명필'로 불리기까지 했다. 계향은 또한 여류문인이자 경세가의 혜안을 갖고 있었다.

계향은 선조 31년 안동 금계리에서 태어나 숙종 6년 영양 석보촌에서 타계했다. 그가 쓴 최초의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과 시 6편, 초서, 맹호도가 전하고, 그의 아들 이현일이 쓴 '정부인 안동 장씨 행실기'를 통해 성품과 세상을 읽는 깊은 사유체계를 읽을 수 있다. 영양군이 19일 재령이씨 종택이 있는 영양 두들마을에서 장계향 표준영정을 봉안하고 음식디미방 문화 관광자원화사업을 위한 전통음식 교육 체험 건물의 기공식을 가졌다. 상업적인 홍보에 그치지 않고 장계향의 정신이 후손들에게 잘 전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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