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5년 2월 나폴레옹이 엘바섬을 탈출하자 유럽 각 도시는 두려움에 빠졌다. 파리에 도착한 나폴레옹은 군대를 다시 조직, 유럽을 휩쓸기 시작, 워털루서 영국군과 대치했다. 웰링턴 군대가 전략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진을 치고 있었지만 나폴레옹은 "우리가 패배할 가능성은 없다"며 큰소리쳤다. 나폴레옹군대는 병사 7만2천, 대포 246문으로 병사 6만7천, 대포 156문의 웰링턴군대보다 전력이 우세했다. 저녁 무렵 나폴레옹은 정예기병부대로 영국군을 공격했다. 영국군이 쏘는 대포의 산탄이 쏟아지는데도 마치 무시무시한 파도가 밀려오는 듯한 프랑스기병의 기세에 겁을 먹은 영국군은 대포를 버리고 도망했다. 워털루전쟁의 첫 전투는 나폴레옹의 승리였다. 승리감에 도취한 나폴레옹은 기고만장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자신의 운명을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한 것을 몰랐다. 당시엔 적군의 대포를 접수하면 대가리가 없는 못을 발사구에 집어넣어 대포를 못 쓰게 만들었다. 그러나 기병대가 전투를 시작하기 직전 어느 지휘관이 "못은 어디 있어" 못을 찾았지만 공격에만 마음이 팔린 나폴레옹은 그 말을 무시하고 못도 챙기지 않고 전장에 나섰던 것이다. 총, 칼, 창, 대포, 말 등 장비는 다 있었는데 못이 없었다.

반격에 나선 영국군과 밀고 당기는 전투가 계속되면서 웰링턴군대가 다시 진지를 탈환, 대포를 되찾았다. 나폴레옹군을 향해 영국군 대포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언덕 위에서 뒷짐을 지고 서있던 나폴레옹은 자신의 군대가 영국군 대포공격에 산산조각이 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이 참담한 패배는 못을 챙기지 않고 출전한 방심과 부주의가 원흉이었다. 한줌의 못만 있었어도 영국군 대포는 무용지물이 됐을 것이고, 웰링턴군대는 패배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성남 환풍구 붕괴 추락참사까지 잇단 '안전참사'는 못 한줌의 부주의가 승패를 가른 '나폴레옹의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우리사회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에 의한 인재(人災) 추방이 시급한 데도 국회가 발목을 잡아 꼼짝달싹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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