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타산 기운 한 몸에 품은 조선 왕조 태동의 발상지

양동주 좋은터생활연구원 원장양동주 원장 프로필 △ 포항 신광 출신 △ 영남대학교 출강 △ 대구한의대학교 대학원 출강 △ 좋은터생활연구원 원장 △ (사)精通風水地理硏究學會학술이사 △ 대구교육대교,포항대교,영진전문대 평생교육원 풍수지리학 교수

"하늘이 감추고 땅이 숨긴 천하명당 준경 묘"

강원도 삼척시에 있는 준경묘·영경묘(三陟 濬慶墓·永慶墓)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 장군의 묘인 준경묘와 장군의 부인 평창 이씨의 묘인 영경묘의 묘역으로, 조선 왕조 최고의 선대묘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 건국 후 어명을 내려 선대의 묘를 찾아 고종 임금때인 광무 3년(1899년) 4월 16일에 고종이 공식적인 선조의 묘로 추봉(追封)하고 묘와 재각, 비각 등을 수축·정비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양무장군의 능묘는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에 있고 어머니인 '평창 이씨'의 능묘는 삼척시 미로면 하사전리의 준경묘에서 4㎞ 떨어진 곳에 있다. 명산으로 알려진 백두대간의 두타산 지맥에 자리를 잡고 있어 고려시대 이후 꽤 이름이 알려진 풍수로 부터 조선 왕조의 태동을 비롯해 500여 년 왕조의 정기를 이을 수 있는 명당으로 평가받던 지역이다. 강원 남부로를 따라 가다가 강원도 오십천의 하사전4교를 건너 영경묘를 찾고 영경묘 삼거리에서 상촌방면의 준경길을 따라 가다보면 준경묘 입구가 나오고 일대는 울창한 황장목 송림으로 둘러싸인 곳에 위치하고 있다.

준경묘.

2001년 충북 보은의 정이품송과 혼례를 올린 소나무도 준경묘 입구에 서 있다. 이 지역의 송림은 일부 간벌해 궁궐건축과 문화재 복원 목재로 사용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숭례문 복원을 위해 전주 이씨 문중의 협조를 받아 준경묘의 용맥 능선의 소나무를 간벌해 사용했다. 이 일대는 두타산의 울창한 송림으로 되어 있어 원시림의 경관을 구경할 수 있는 산자수려한 곳이다. 이곳의 낙락장송인 황장목들은 경복궁 중수 때 자재로 쓰였다고 한다.

풍수지리와 관련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로 잘 알려진 명당자리에는 그에 따른 전설과 설화가 많이 있듯이 이곳 준경묘도 조선왕조 건국과 관련된 유명한 백우금관(百牛金棺)의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묘각.

이안사가 전주에서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로 피신 와 자리를 잡고 산지 1년 만에 아버지(이양무)의 상(喪)을 당하게 된다. 이안사는 아버지 묘 자리를 구하려고 이산 저산 산등성이를 넘어 사방으로 헤매고 돌아다녔으나 마땅한 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 마침 활기리 노동(盧洞) 산마루에 이르러 몹시 고단하여 나무 밑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한 도승이 동자승과 함께 나타나 주위를 두루 살펴 인적이 없음을 확인한 뒤 한 곳을 가리키면서 "대지(大地)로다 길지(吉地)로다"하는 것이었다.

이안사가 나무 밑에 앉아 지켜보고 있는 것을 모르는 도승은 이어서 말하기를, "이곳이 제대로 발복하려면 개토제(開土祭)에 소 백(百)마리를 잡아서 제사를 지내야 하고, 시신을 금관(金棺)에 안장해 장사를 지내야 한다. 그러면 5대손 안에 왕자가 출생해 기울어 가는 이 나라를 바로 잡고 창업주가 될 것이다. 또한 이 땅은 천하의 명당이니 함부로 발설하지 말라"하는 것이었다. 동자승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을 더 있다가 그들은 다른 곳으로 길을 떠났다. 자신의 귀를 의심한 이안사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생각에 골몰하였으나 가난한 살림살이에 소 백 마리를 어디서 구하며, 더구나 금으로 만든 관은 어디서도 구할 수가 없었다. 부친의 묏자리를 명당에 쓰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형편상 어쩔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이안사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궁여지책을 찾아내게 되었는데, 소 백(百) 마리는 흰 소 한 마리로 대신하고 금관은 귀리 짚으로 대신하면 될 것 같았다. 흰 소를 한자로 쓰면 백우(白牛)이므로 숫자상 일백 백자와 발음이 통하게 되어 백우(百牛)가 될 수 있고, 귀리짚은 같은 황금색이므로 금관과 의미가 통할 것이라 판단하였다. 마침 처가에 흰 얼룩소가 있었는데, 다음날 아침 처가에 간 이안사는 밭갈이 할 일이 있다며 흰 소를 잠시만 빌려 달라고 하여 소를 끌고 노동(盧洞) 산마루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처가에서 빌린 흰 소를 잡아서 제물로 사용하고, 부친을 넣을 관은 귀리짚으로 대신해 아버지의 장사를 치렀다.(전주 이씨 홈피)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분석하면 한반도의 중추역할을 하는 백두대간이 북에서 남으로 힘차게 뻗어 크고 높게 성봉한 갈마봉을 거쳐 고적대와 청옥산을 지나 두타산(1353m)에 이르는 용맥은 한마디로 말해서 살아있는 용이 힘찬 용트림을 하면서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

두타산을 뒤로하고 용맥은 좌우로 가지맥을 내어 힘찬 용트림에 몸을 지탱하듯 하면서 남으로 행진한다. 준경묘의 주룡맥은 대간룡과의 분기점에 와서 뒤를 받쳐주는 지맥을 서쪽으로 내어주고 동쪽으로 강한 주맥으로 용맥이 진행하여 묘역 뒤에서 방향을 동남쪽으로 크게 틀면서 좌우로 청룡맥과 백호맥을 만들어 중심맥을 옹호하게 하고 주룡맥은 산이 다하고 물이 감도는 산진수회(山盡水回)한 명당을 만들면서 내룡(來龍)하고 있다.

필자가 몇 년 전 이곳을 비롯한 연경묘를 둘러보았는데 천장지비(天藏地秘), 하늘이 감추고 땅이 숨긴 천하의 명당이 이곳이로구나. 하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청룡과 백호맥의 성봉은 그 풍체가 풍만하고 용맹스러운 성봉이 되어 준경묘 좌우 가까이에서 보좌하듯 하고 있으며 묘역에 들어가지 않고는 그곳에 그러한 명당이 있는 것조차 알 수 없는 곳이다.

특히 청룡맥은 길게 이어지면서 낮은 성봉을 거듭 만들면서 오십천에 가서야 끝난다. 이러한 청룡맥의 기운이 500년 조선왕조의 기운은 아닐까. 묘역까지 오르려면 시멘트 포장길이 이어지지만 차단기가 굳게 내려져 있어 걸어야 한다. 고갯마루를 넘어서면서 울창한 송림이 모습을 드러내고 동녘을 향해서는 활엽수가 빽빽하게 비포장길에 그늘을 만들어준다.

산행코스로는 활기리, 준경묘, 황장목숲길, 대간능선, 1059봉, 1014봉, 1100봉, 황장산 댓재, 햇대등, 댓재옛길, 424지방도로, 옛길, 상사전리로 이어지는 산행 코스 16km가 있지만 가족과 함께 편하게 산책할 수 있는 거리는 활기리에서 준경묘까지는 팻말을 따라 걷는 1.8km 보도 코스를 이용하면 좋다.

준경묘에서 약4㎞ 떨어진 곳에 목조(이안사)의 어머니, 평창 이씨의 묘인 영경묘가 있는데 문화재청은 강원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산 149번지 등 6필지 6만5천154㎡ 규모의 준경묘·영경묘(濬慶墓.永慶墓) 구역을 2012년 7월 12일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2012년 7월 20일 강원도기념물 제43호에서 해지하고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 524호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준경묘·영경묘가 남한 지역에 소재하는 조선 왕실 선대(先代) 능묘이자, 조선왕조 태동의 발상지라는 역사성 뿐만 아니라 풍수지리적 가치 등을 평가해 사적으로 지정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출처:한국어 워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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