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 자연과 푸른 감성 어우러진 한국 근현대문학의 산실

일월산 외씨버선길.

△ 주실마을과 조지훈 선생

주실마을은 시인 조지훈 선생의 고향으로 이 곳의 조씨를 흔히 주실 조씨라 부르며, 선비의 고장으로 유명한데 마을 전체 분위기와 짜임이 다른 마을과는 달라 학자와 문인이 많이 배출됐으며, 개화기 서양 문물을 빨리 받아들여 1928년부터 지금까지도 양력설을 쇠고 있다.

주실 마을에 위치한 호은종택(경북도 기념물 제78호)은 청록파 시인의 한 사람이며, 대표적인 한국 현대시인이고 국문학자였던 조지훈(1920~1968)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시인 조지훈 선생의 고향 주실마을 전경.

선생은 1939년 문장지에 '고풍의상으로 추천되면서 문단에 나와 '청록집', '풀잎단장', '조지훈시선' 등을 남겼으며, 시인이자 국문학자로서 유명한 것은 물론 지조있고 풍류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주실마을 입구에는 2008년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뽑힌 영양 일월 주실 마을 숲이 있으며, 주실마을에 들어서려면 반드시 이 숲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마을의 대문이자 마을을 감싸고 있는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다.

기존에 있던 천연림을 보완해 100년 전에 심은 소나무와 250년이 된 아름드리 느티나무, 느릅나무가 풍성한 숲을 이루고 있으며, 시인을 기리는 기념시비가 서 있고, 마을 뒤편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며 2005년 개장한 지훈 선생의 시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90년 전통을 자랑하는 영양양조장.

지난 2004년 문을 연 지훈 문학관은 2천792㎡(846평) 대지에는 문학관과 시청각실, 전시실, 등 각종 시설이 들어서 있으며, 미망인 김난희 여사가 직접 쓴 '지훈문학관' 현판이 걸린 입구에 들어서면 지훈의 대표적인 시 '승무'가 흘러나온다.

문학관에는 지훈의 소년시절 자료와 청록집 관련 자료를 비롯 격정의 현대사 속에 남긴 여운, 지훈의 가족 이야기, 미망인 김난희 여사의 글과 글씨, 지훈의 시와 산문, 학문 연구의 핵심 내용, 선비로서의 지훈의 삶을 알 수 있는 각종 자료가 전시돼 있다.

전시물 중에는 지훈이 쓴 주례사와 여러 곳에서 받은 감사장이나 위촉장, 표창장 등을 비롯해 평소 쓰던 문갑과 서랍, 30대 중반에 썼다는 검은색 모자와 가죽 장갑, 40대에 사용했던 부채, 세상을 뜨기 6~7년 전부터 애용했던 담배 파이프와 안경, 외출할 때 즐겨 입었던 외투와 삼베 바지 등 지훈의 삶의 궤적을 더듬을 수 있는 유품이 망라돼 있고 100여 장의 사진과 헤드폰을 통해 투병 중이던 지훈이 여동생과 함께 낭송한 시 '낙화'를 들을 수 있다.

△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대티골 숲길

지난 2009년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숲길 부문에서 '아름다운 어울림상'을 받은 대티골 숲 길은 일부 구간이 외씨버선길과 겹치면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길이다.

대티골 숲길은 영양군 최북단인 일월면 용화리에 위치하고 있고, 31번 옛 국도로 일제강점기 임업자들이 만들었다는 산판길로 구리 광산에서 캔 광물과 금강송을 실어 나르기 위해 산허리를 잘라 만든 고갯길이기도 하며, 낙동강 상류지류인 반변천의 발원지인 뿌리샘을 포함하고 있다.

1980년대 초반까지 도로로 이용되다가 옆에 새 길이 나면서 자연의 품으로 돌아온 이 길을 걷다 보면 '영양 23㎞'라고 적힌 이정표가 남아 있으며, 자연림으로서 뛰어난 경관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역사와 정취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곳으로 소나무림이 주는 웅장함과 신갈나무가 주는 아기자기한 정취로 걷는 이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줄 뿐만 아니라 치유의 숲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옛 31번 국도인 대티골 마을 입구에는 마을주민이 직접 기획한 통나무다리인 약간의 스릴감을 무아교(나를 버리고 가는 다리)라는 이름으로 스토리텔링한 다리가 있고 외씨버선길 상징하는 대표조형물과 돌탑이 있고 대티골 마을에는 엽서를 써서 우체통에 넣으면 1년뒤 발송해주는 희망 우체통이 있다.

△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영양 양조장'

지난해 경상북도 100년 기업의 역사를 쓸 향토뿌리기업으로 인증을 받은 영양 양조장은 등기상은 1926년도에 설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에 등기가 나오기 전 군지(郡誌)에 1925년 주조장 인가가 나왔다고 적혀있다.

페인트가 여기저기 벗겨지긴 했지만 '영양 양조장' 건물은 아직도 튼튼하다.

90여년의 세월에도 벽에 금하나 없을 정도며, 기둥은 압록강 적송으로 요즘 보기 드문 목재이고 손으로 쳐보면 돌처럼 단단하고 지붕은 지진에도 끄덕 없을 정도의 트러스 구조이고 나무못만 쓴 것도 특이하다.

내부에는 옛날 양조장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직도 우물을 쓰고 있으며, 양조장 입구에는 전화 6이라는 푯말이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는데 당시 관공서가 1번, 경찰서가 2번 등 관공서가 1번부터 5번까지 차지하고, 6번째가 '영양 양조장'인 것으로 그 시대 영양군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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