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慈藏)·혜공(惠空)·원효(元曉)·의상(義湘)…초승달 모양 대지 이룬 제철입국 반월사상의 집약지

포항시 남구 오천읍 오어로 1 오어사(吾魚寺)는 지금 눈부신 단풍으로 만산홍엽(滿山紅葉). 오는 주말에는 피크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포항의 주산(主山) 운제산(雲梯山) 기슭에 신라 제 26대 진평왕(眞平王·572~632년) 때 지어진 오어사(吾魚寺)의 원래 이름은 항사사(恒沙寺)였다.

'항사(恒沙)'란 '길게 이어지는 모래 벌'을 뜻한다. 포항 바닷가의 긴 모래벌을 가리킨 한자(漢字)낱말이다.

'긴 모래벌이 이어진 바닷가 포항에 지어진 절'이라는 뜻에서 이같은 이름이 붙여진 듯 하다. (일설에 의하면 '바닷가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이 출세했다'해서 '항사사'라 했다는 설도 있다.) 어떻든 당시의 포항은 일본으로 이어지는 항구로서 큰 구실을 하고 있었다.

10년 전 항공촬영한 오어사 전경. 반달 모양 대지가 하얗게 분명히 드러나 보인다. 가운데 있는 기와지붕 건물이 대웅전. 호수가 초승달 모양으로 반달 대지를 에워싸고 있다.

영일만(迎日灣)의 고대 이름 '근오기'가 이를 증명한다. 이 이름풀이는 '포항의 고대 수수께끼' 제11호에서 소상히 밝힐 것이다.

어떻든 '항구 가에 지어진 절' 항사사는 그 후 오어사(吾魚寺)로 개명(改名)된다.

'내 물고기'라는 뜻의 이 절이름 또한 심상치 않은 작명(作名)이다.

여기에는 원효(元曉)와 혜공(惠空) 두 스님이 등장한다.

원효대사가 쓰던 1천400여년 전의 삿갓. 높이 1척(한자), 지름 약 1.5척이다. 오어사 유물전시관에 전시되고 있다.

두 스님은 절 개울가에서 헤엄치며 놀다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후에 원효가 물 속에 방변(放便)했는데, 그 변이 곧 물고기가 되어 한 마리는 물을 거슬러 상류 쪽으로 올라가고, 또 한 마리는 하류 쪽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원효와 혜공은 서로 상류 쪽으로 올라간 물고기를 '내가 잡은 고기' 즉 '오어(吾魚)'라 주장했다는데서 이 절 이름이 '오어사(吾魚寺)'라 고쳐졌다는 것이다.

또 일설(一說)에 의하면, 원효스님이 개울 물고기를 잡아먹은 다음 물놀이를 하다 방변(放便)했는데, 그 변이 곧 물고기로 바뀌는 것을 본 혜공스님이 '내가 잡은 고기(吾魚)다!'라고 외쳤다는 데서, 절 이름을 '오어사(吾魚寺)'라 고쳐짓게 됐다고도 한다.

고려 때 제작된 동종(銅鐘). 오어사 앞 호수에 빠져 있는 것을 건져올려 유물전시관에 전시하고 있다.

어떻든 물고기가 변이 되고, 변이 또 물고기가 되는 변생(變生) 이야기다. 모습이 바뀌어 다시 세상에 태어나는 변생 이야기는 불교 설화(說話)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브의 한가지다.

오어사 일대는 방금 눈부신 단풍으로 온통 붉게 물들어 있다. 소나무의 푸르름이 드문드문 에메랄드 그린 보석처럼 박혀있을 뿐, 진홍(眞紅)양탄자를 깔은 듯, 맞은편 산에서 바라보는 운제산(雲梯山) 일대는 숨을 들이키듯 아름답다.

그 비단 양탄자 자락에 자리하는 반달모양의 오어사. 그 반달 모양의 절을 에워싸고 있는 또 하나의 반달형 호수. 실로 절경(絶景)이다.

이영희 전 포스코인재개발원 교수

오어사는 진평왕(眞平王) 때 지어졌다. 포항의 신광(神光)에 525간이나 되는 대사찰(大寺刹)을 지어, 대단위 제철공장의 배후를 마련한 배짱의 임금이다.

그에게 있어 사찰은 단순한 절이 아니다. 제철(製鐵)의 근간이 되는 사상(思想)의 교육장이요, 숙박처요, 사무실이기도 했다.

오어사에게 그가 담당시킨 것도 사상 교육이었다.

당대의 종교인을 모아 불교를 연마(硏磨)시키고 제철철학(製鐵哲學)을 연구하게 했다.

'반달 사상(半月思想)'이 바로 그것이다.

신라(新羅)의 왕궁은 서라벌의 반월성(半月城)에 지어졌다. 반월대라고도 불렸다.

왜 하필이면 반월(半月)인가.

반월성 아래에는 남천(南川) 또는 문천(蚊川·모기내)라고 불린 반달 모양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모기가 있어서 '모기내'라 불린 것이 아니라. 사철(沙鐵)이 모이는 강이라 해서 모기내라 불렸던 이 반달 모양 강변 위에 바로 왕궁을 지어 '반월성' 이라 이름 지은 것이다.

신라 초기·중기의 역대 왕들이, 제철에 심혼(心魂)을 깃들였음을 헤아릴 수 있다.

반월성은 모기내 보다 약 2m 가량 높다. 신라의 역대 왕과 신하들은, 이 2m 가량의 언덕 위에서 강가로 내려가 사철을 건져 담아 올려, 왕궁 안 뜰에서 제철을 한 것이다.

왕궁이 바로 제철공장이었던 것이다.

이래서 신과는 '제철입국(製鐵立國)'을 했다.

이 반월정신(半月精神)을 사상화(思想化)한 것이 '반월사상'이다.

사철은 강물 따라 모인다. 강물이 S자 모양으로 굽어지는 자리, 즉 바로 반월성 바로 아래 남천(南川) 또는 모기내라고 불린 곳에 모였다. 이런 강가를 찾아 '제철공장'은 지어졌던 것이다.

남천 강변만이 아니라 서라벌 북쪽의 강 알천에서도 사철이 건져졌다. 신라왕들은 이 알천의 S자형 강변에 대궁(大宮)을 지어 제철을 독려했다.

알천에서는 사철만이 아니라 사금(砂金)까지 건져졌다. 무쇠와 순금(純金)알이 함께 건져진 것이다. 신라가 '부자나라'가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알천에서도 역시 '반월 지대(半月地帶)'에서 사철과 사금이 건져진 것이다.

신라의 역대왕들은 이 알천에서 흔히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사철과 사금이 건져지는 알천 가에서 자주 군사훈련을 함으로써 소중한 보물고장을 단단히 지킨 셈이다.

'반월형 강물가를 소중히 지킬 것'

진평왕은, 이 목표를 철저히 지키게 하며 그 상징으로 오어사를 지었다.

포항의 주산(主山)인 운제산 기슭 물가에 반달형 지대를 형성, 단아(端雅)한 불사(佛寺)를 지어, 당대의 고승(高僧)들을 모아 불교 연수에 전념케 했다.

절 둘레에는 반달 모양 호수도 만들어, 절을 더욱 신비롭게 돋구어 보이도록 했다.

반달형 대지에 세워진 아름다운 사찰(寺刹). 반달형 호수에 에워싸인 반달형 절간은 정녕 신비로워 보였다.

자장(慈藏), 혜공(惠空), 원효(元曉), 의상(義湘)….

신라 으뜸의 고승(高僧) 조사(祖師)를 모아 불도(佛道)를 맘껏 닦게 하고 그 휘하에 학승(學僧)도 많이 양성케했다.

반달사상은 이들 고승·조사에 의해 무르익어갔다.

제철을 통해 국가가 융성하고, 나라가 번영하므로써 국민의 지식과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생활 수준이 높아지므로써 나라사랑도 부푸는 선(善)순환이 반달사상이 안겨주는 아름다움이다.

진평왕은 운제산 산중에 네 고승들의 암자를 지어 수행처(修行處)로 삼게 했고, 현재 자장암과 원효암이 운제산 정상에 존재한다.

오어사에는 이밖에도 놀라운 보물이 지금껏 간직되어 있다.

원효대사의 삿갓이다.

지극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이 1400여년 전의 삿갓은 절의 별채에 보관되어 있다.

높이는 1척(尺)지름은 약 1.5척이다. 뒷 부분은 거의 삭아 버렸지만, 겹겹으로 붙인 한지엔 글씨가 적혀있다. 실오라기 같은 풀뿌리를 소재로 하여 짠 보기 드문 삿갓이다.

이밖에 고려 때 만들어진 동종(銅鐘)도 전시되고 있다.

이 동종은, 1998년 6월29일 보물 제1280호로 지정되었다. 고려 고종(1216년) 때 제작된 높이 96㎝의 아름다운 범종이다. 종 윗부분의 음통을 휘감아 오르는 용모양의 조각은 금방이라도 살아서 하늘로 등천할듯이 생동감 있다. 가는 목에는 비늘과 갈기가 매우 정교하면서도 사실적이다. 종의 하단에 새겨져 있는 명문(銘文)에 종의 제작 동기와 과정, 제작자 등에 대해 자세하기 기록돼 있다.

동화사(桐華寺) 스님들이 힘을 모아서 300근의 종을 정우(貞祐) 4년(1216)에 대장(大匠) 순광(順光)이 만들었다는 기록이다. 본존 상태가 완전하고 균형감이 있을 뿐 아니라 양식적으로 매우 뛰어난 종이다. 이 종은 무슨 이유에서 인지는 몰라도 오어사 앞 호수 바닥에 빠져 있던 것을 1995년 11월 준설 과정에 발굴돼 세상에 새 빛을 보게 됐다. 당시 경북일보 문화부 이동욱기자(현재 편집국장)가 특종 취재해 알리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됐다.

반달형 오어사 전경(全景)과 그 반달형 대지를 에워싸고 있는 초승달 모양 호수의 모습도 여간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초승달형 강가 역시 반달형 강변처럼 사철이 고이는 것이다. 반달형 강변에 쌓이는 사철의 양이 훨씬 많고, 초승달 형 강변에 쌓이는 양은 그보다 못했다.

세계 여러 나라의 국기를 보면, 흔히 중동지방 등 국가의 국기에 초승달이 그려진 것을 많이 보게 된다.

터키, 파키스탄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동남아 국가의 국기에서도 더러 초승달이 보인다.

알제리, 모리타니, 코모로, 콩고, 튀니지 등 아프리카 여러나라의 국기에도 보인다.

이들 나라의 태반이 제철국가였던 나라들이다. '초승달'은 일찍이 제철(製鐵)을 상징했다. 세계적인 심볼마크였던 것이다.

특히 신라는 무쇠의 반제품(半製品)·완전히 제품화되지 않은채 원자제 형태로 매매되는 상품)을 터키에 팔아왔다.

터키는 이 신라의 무쇠 반제품으로 터키식 칼을 만들었다고 한다. 신라의 무쇠는 뛰어나게 우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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