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동산 아래

폐어가 된 우리집 장독대를 보면

검버섯 누덕누덕 핀 할머니의 얼굴 보이네

할머니 입 속 듬성듬성 한 대씩 남은

누런 이빨같이 허물어진 장독대

무명행주로 싹싹 닦아

동백기름 자르르하던 그 항아리 속에는

마늘, 고추, 미역줄기, 도라지, 무, 깻잎

여름 밥상 차려주던 곰삭은 장아찌 가득

어머니 사랑

단내음 퐁퐁 우러나오던 장독대

지금은 소리없이 저물어가네

<감상> 지난여름 난 책 보관할 창고를 마련하고, 그 앞에 장독대도 만들어 항아리를 옮겨 놓았다. 간장을 제외하곤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아 빈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고추장을 담을 것도 아니고, 곰삭은 장아찌를 만들 것도 아니었다. 그냥 사라지는 장독대가 아쉬워 옮겼을 뿐이다. 지금 우리나라 장독대는 아파트 문화로 바뀌면서 대부분 저녁 놀빛으로 저물고 있다. 장독대를 옮기고 나니 그냥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시인 하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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