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김에
밭고랑에서 내린 바지
한 계절
지나도록 추켜 올리지 못한 채
담장도 울라타고 손 닿지 않는
지붕까지
기댈 언덕처럼 오르시다
그대로, 푹 익어버린
어머니 궁둥이
<감상> 종종 시를 읽다가 시를 쓴 소재와 발상에 놀랄 때가 있다. 이 가을 시골풍경에서 종종 보게 되는 호박 한 덩어리를 시인은 어머니의 궁둥이로 읽는다. 그것도 급한 김에 바지 지퍼 내리고 볼 일을 보다 만 그 모습으로 말이다. 이 가을 담장 위, 지붕 위 올라가 푹 익어버린 호박을 보면서 이 시를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급하게 밭고랑에서 볼일을 보는 어머니의 모습까지도.
(시인 하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