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손님과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비교적 친한 사이이므로 격식을 따질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외국에서 찾아온 손님을 허술하게 대접할 수 없었다. 일류 호텔의 식당에서 양식(洋食)을 먹으려고 자리까지 잡아두었다. 하지만 막상 그를 만나자, 굳이 한국적인 특색이 있는 음식을 먹겠다는 것이다. 이 편이 오히려 당황했다. 한국적인 특색이 있는 음식 중에서 외국 손님에게 버젓하게 대접할 수 있는 것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불고기 자실 테요?' 물어보았다. 한국적인 특색이 있는 것이라면 불고기가 가장 보편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친구는 빙글빙글 웃으며, 불고기는 이미 시식한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대접할까-망설였다. '냉면 어때요?' '냉면?' 그는 냉면이라는 어휘조차 모르는 것이었다.…'이처럼 소박하고 담백(淡白)한 것을 처음 먹었다오'그의 말이었다. '태평양 저편에서는 이와 유사한 미각을 전혀 맛볼 수 없어요. 야생적인 감미가 혀에 나긋하게 깔리는 동양적인 환상을 환기시켜 주는 이상한 미각이라오."

박목월 시인이 쓴 수필 '냉면 맛 숭늉 맛'의 외국인 대접 장면이다.

동치미 국물에 말아주는 냉면을 처음 맛본 외국 손님의 반응이 무척 흥미롭다. 그 외국인은 냉면 맛을 동양화의 여백(餘白)이나 수묵의 색감 같은 미각이라고 했다. 동서양 사람들간에 미각에 대한 편견 같은 것이 분명히 존재한다. 동서양 뿐만 아니라 나라마다, 심지어는 지역마다 음식의 맛을 내는 것이 천차만별이다. 중국인이 여러 음식에 넣어 먹는 고수 향채(香菜)는 우리로서는 상당히 거북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과감하게 먹으며 '기막힌 맛'이라는 삭힌 홍어는 외국인에게는 엽기적인 맛으로 통한다.

최근 미국 컬럼비아 대학 의과대학 신경과학교수 찰스 주커 박사가 혀에는 맛을 감지하는 미뢰(味雷: taste bud)가 있어서 단맛, 쓴맛, 짠맛, 신맛, 감칠맛 등 5가지 맛을 감지한다는 연구결과를 네이처지에 발표했다. 혀에는 약 8천개의 미뢰가 흩어져 있다고 한다. 한국인의 맛 담백함은 어떤 세포가 담당하는 지 궁금하다. 맛의 과학적 분석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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