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섬유산업의 기틀을 세운 이동찬(李東燦)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8일 노환으로 타계했다. 1922년 태어났으니 향년 92세를 일기로 이 나라 산업계에 큰 족적을 남기고 내일 김천시 봉산면 금릉공원묘원에 묻힌다. 고(故) 이 회장은 경북 신광(포항)태생으로 대구에서 기업을 시작하여 재계 30위권의 대기업으로 일궈낸 이 나라 공업화 1세대 경영계의 거목이었다.

이 회장에 대한 조문과 추모 행렬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은 그가 남긴 업적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일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추모 논평을 냈다. 전경련은 "노사 간 산업 평화를 선도해온 이동찬 명예회장의 별세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경총은 "섬유화학산업을 이끌며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이 명예회장의 별세를 깊이 애도한다"고 논평했다.

보통학교를 수석 졸업할 정도로 명석한 고 이 회장은 1957년 선친과 함께 대구시 신천동 코오롱그룹의 모태인 국내 첫 나일론 공장인 '한국나일론(KOREA NYLON)'을 세웠다. 1963년 처음 생산한 나일론섬유는 우리나라 섬유산업에 큰 획을 그은 사건이다.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에 나일론이 들어간 것도 이때쯤부터다. 고인의 선친이 공화당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60,70년대 코오롱상사, 코오롱나일론, 코오롱폴리에스터를 경영하며 코오롱그룹의 외형을 키워냈다.

고인은 1982년부터 무려 14년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맡으며 노사문제 안정화에 기여했다. 1990년 노사와 공익대표가 참여하는 국민경제사회협의회를 발족시켰고, 1993년에는 경총 회장으로 한국노총과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고 1994년에는 '산업평화 선언'을 통해 노사협력의 기틀을 닦았다.

고인의 유업과 유지는 1995년 12월 경영권을 물려받은 아들 이웅열 회장은 물론이고 이 시대 기업을 경영하는 모두에게 계승되어야 한다. '이상은 높게 눈은 아래로'라며 임직원과 사회 약자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철학을 가졌다. 조선시대 대유(大儒)인 회재 이언적의 가풍을 이어 받아서인지 "기업은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임직원 모두의 사회생활 터전이고 기업의 부실은 사회에 대한 배신이며 배임"이라는 사명감도 우리 모두가 받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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