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적 수출가격 약화 대비, 제품 품질 경쟁력 높여, 엔저 파고 순탄하게 넘어야

은호성 한국은행 포항본부장

지난 달말 일본은행은 추가적인 양적완화 통화정책을 전격 발표했다. 이 때문에 금년 상반기중 범위내에서 움직이던 엔/달러 환율은 115엔선에 육박하는 급속한 약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엔저 자체는 새삼스럽지 않다.

엔/달러 환율은 2012년 하반기 아베노믹스 출범시 70엔대 후반에서 시작해 지난해 4월 100엔선을 상회하더니 최근에는 110엔선을 돌파하고 있다.

그럼에도 엔화 환율이 요동을 칠 때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자동차·전자·기계 등의 주가가 과잉반응하고 있으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내 주식시장 및 일부 언론의 엔저에 대한 우려는 엔저로 수익성이 크게 개선된 일본기업들이 수출단가를 인하하면 우리 수출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엔화가 약세를 보이면 일본기업들이 수익성 개선을 배경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달러화 표시 수출단가를 인하해 수출물량이 늘어나고 고용·투자가 확대돼 경기회복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 일반적인 믿음이다. 이는 아베노믹스가 학수고대하고 있는 경기회복 경로이기도 하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이러한 우려와 반응은 과장된 성격이 짙다. 지난 1990년대 이후의 세 차례에 걸친 엔화 약세기(①95∼98년, ②99년말∼02년초, ③04년∼07년)의 경험과 금번 엔화 약세기(④12년말∼현재)의 일본 수출기업 행태를 보면 일본기업은 엔화가치가 하락하더라도 환율변동분 만큼 수출단가를 인하시키지 않았다. 엔화가 약세를 보임에 따라 일본기업의 수익성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나 다른 한편으로 수입물가 상승으로 생산원가가 높아지기 때문에 환율변동분 만큼 수출단가를 인하할 수는 없었다.

이 밖에도 엔저에도 일본기업들이 수출단가 인하를 꺼리는 것은 미국측을 의식한 외교적인 고려의 성격도 강하다. 미국 당국이 일본의 양적완화정책을 공식적으로는 지지하면서도 여러 경로를 통해 엔화의 급격한 약세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고 또한 수출단가 인하시 미국 자동차업계의 강력한 반발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일본내에 머물면서 수출에 주력하는 일본기업들이 시장점유율 제고보다는 높은 품질을 갖춘 고부가가치제품을 생산·수출하면서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주력하고 있는 점도 구조적으로 수출가격 인하를 꺼리는 요인이다. 일본개발은행의 한 서베이결과에 따르면 일본 수출기업들이 국내에 머물며 생산·수출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핵심제품생산 및 R&D 등이며 상당수가 수출 경쟁력은 높은 품질 및 서비스에서 나오는 것이며 엔화약세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라고 응답했다. 일본기업은 최근 엔화 약세로 수익성이 큰 폭으로 개선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가격인하를 통한 시장점유율 제고보다는 R&D 확대 등에 활용하고 있다. 엔화 약세가 가져온 이득을 짧은 시계가 아닌 긴 정책시계에 입각해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에 힘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의 산업계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비해야 할 점은 엔화약세에 따른 단기적인 수출가격 경쟁력 약화가 아니라 가까운 장래에 일본기업들이 높은 R&D를 바탕으로 품질경쟁력을 재무장하는 일이다. 우리제품의 품질경쟁력을 한층 더 높이는 노력을 배가해 엔저의 파고를 순탄하게 넘는 노력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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