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청년 농어업인, 경북이 미래다- (9)구미시 선산읍 동부리 양파 농사꾼 김민수씨

트럭 운전자에서 4만평 경작하는 농업경영인으로 성공

박용기기자 ygpark@kyongbuk.com 등록일 2014년11월11일 21시10분  
양파밭에서 비닐 씌우기 작업을 하고 있는 김민수씨.

2014년 10월 31일 구미시 선산읍 동부리에 위치한 '민수농산'에서 만난 김민수씨는 젊은이들의 농촌 기피 현상이 오히려 자신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역발상으로 미래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김씨는 "젊은 사람들이 농사를 기피하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은 점점 더 많아지는 것 아니냐"며 "지금 농사를 짓고 있는 동네 어른들의 땅 모두 앞으로는 내가 다 경작하게 될 것"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김씨의 어색한 웃음에 눈을 마주친 순간 알게 된 그의 빨갛게 충혈된 눈과 그을린 얼굴은 농촌을 떠날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의 현실을 이해하고, 우리 농업을 지키고자 하는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의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감과 아내와 딸 둘, 아들 하나를 둔 가장의 책임감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양파 밭으로 가기 위해 트랙터 위에 오른 김민수씨.

△화물운전사에서 4만평을 경작하는 농사꾼으로.

1978년생으로 올해 37세인 김민수씨의 첫 직업은 화물트럭 운전사였다.

그러던 2004년 농사를 짓던 친구 아버지가 폐암으로 생명이 위독해 일이 힘들어지자 김씨에게 일을 부탁하면서 거름으로 뒤덮인 땅과의 인연은 시작됐다. 어쩔 수 없이 일을 도와드리기는 했지만 그 당시 농사에 '농'자도 몰랐던 민수 씨는 화물트럭 운전이 주업, 농사는 그냥 부업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농사를 우습게 본 탓일까? 결국 그해 하천부지에 심은 감자 8천평이 물에 잠기는 것을 그냥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김씨는 2005년 트럭운전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농사일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김씨는 그 뒤로도 몇 년 동안 혹독한 농사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비닐 씌우기 작업을 마친 양파밭.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4년. 김씨는 5천평의 논과 3만5천평의 밭을 경작하는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농사꾼으로 성장했다.

사람의 손으로 일을 다 하기에는 벅차 하나 둘 사들인 농기계만도 트랙터 5대, 승용관리기 6대, 포크레인 1대, 지게차 1대, 운반차 1대 등으로 농기계 구입에 들어간 돈만 3억원 상당이다. 작물도 감자, 양파, 무, 배추, 우엉, 생강, 고추, 당근 등 다양해졌다. 25군데에 나뉘어 있는 김씨의 경작지 4만평 중 김씨 소유의 땅만 해도 6천평이다.

또 수확한 농산물을 보관하기 위해 현재 3억원을 들여 저온창고를 짓고 있을 정도로 성공한 젊은 농업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3억원을 들여 공사가 한창인 저온창고.

△농사를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농사는 경험이다.

"농사를 쉽게 생각하지 마라. 멋모르고 달려들면 자기 무덤을 파는 격이다."

자신 또한 지금 생각해 보면 겪지 않아도 될 시행착오를 너무 많이 겪었던 탓일까? 김씨는 농사일을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농사를 배우기 위해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어느 정도 노하우도 쌓이는 등 경험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요즘 인터넷의 발달로 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농사는 자기가 직접 해보지 않고는 알기 힘들다며 글이 아닌 몸으로 일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도 김씨는 새벽 6시30분 농장에 도착해 해가 지고 나서도 일을 멈추지 않는다.

10월 31일 김씨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비가 와서 가능했다. 양파 비닐 씌우기 작업이 한창인 탓에 시간을 낼 수 없었던 김씨는 비가 오면 일을 나가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날도 밭에 갔다 왔는지 온몸이 비에 젖어 있었다.

△농촌의 현실은 이렇다.

"올해 4월 일어난 세월호 사건은 앞으로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자식가진 부모 심정을 전한 김씨는 다시 농사이야기로 돌아와 "온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했던 세월호 사건에 농민들의 피해도 컸다"며 "사고 이후 행사가 취소되고 소비가 위축되면서 감자, 양파 가격이 폭락한 가운데 가을 당근과 무까지 많은 비로 흉작이 예상되는 등 올해가 10년 농사 중 최악"이라고 걱정했다.

이에 대해 농산물 가격 안정화 정책이 필요하다는 김씨는 "공산품의 경우 생산 후 일정 시간이 지나도 가격의 변동이 적지만 농산물의 경우 그렇지 않다"며 "또 모든 물가가 올라도 농산물의 가격은 큰 변동이 없다. 10년 전 2만5천원이었던 아주머니 하루일당이 지금은 6만원으로 두배 넘게 올랐지만 농산물 가격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운반비, 수수료, 기름값, 하차비 등을 빼면 오히려 적자인 경우도 있다"며 걱정을 이어갔다.

△강한 책임감을 가진 소 같은 남자.

때마침 농장에 들어온 김씨의 후배 백창현(33)씨는 "형은 나이는 37살인데 생각하는 것은 60, 70대"라며 "농사에 많이 알고 생각이 깊으며, 일하는 모습은 그냥 소"라고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지난해부터 김씨와 함께 농사일을 시작했다는 창현씨는 "(형은)일을 미루는 법이 없다. 야간작업 후 컨테이너에서의 쪽잠은 다반사"라며 "마음은 여리지만 머리에는 온통 일 생각 밖에 없는 강한 책임감의 소유자"라고 김씨를 평가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앞으로 기업 형 농장을 경영하는 게 꿈"이라며 "많은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돌아와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농촌의 미래를 설계했으면 한다"며 미래의 꿈을 키워갔다.

<ⓒ 경북일보 & kyongbuk.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