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때 여야 복지공약 논쟁 확대, 지속가능한 미래 위해 복지 필요, 여야, 중간적인 길에서 해답 찾길

김정모 서울취재본부장

시계 침이 자정을 가리킨다. 서울 지하철 계단에서 본 50대 후반의 노숙자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창밖에 비 소리가 나고 인왕산에서 찬바람이 불어 을씨년스러워서 이기도 하지만 노숙인으로는 보기 드물게 신문을 보고 있어서 특이해서다. 아마 노숙 생활 초년병으로 사회에 아직 미련이 남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몸 하나 편하게 눕힐 곳이 있는 사람은 감사하다. 잘 사는 인생 출발선에 서려면 두 가지 전제가 있다. 부모와 국가를 잘 타고 나야 한다. 논물을 걸러 식수로 사용하는 서부 아프리카, 포성이 멈출 줄 모르는 중동, 전체주의 국가 북한에 태어나지 않고 한국을 조국으로 한다는 게 행운이다. 부모는 못 바꾸고 유전인자는 못 바꾼다. 그러나 정치와 정사(政事)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국가는 좋게 바꿀 수 있다.

국가의 무상급식 무상보육 복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사실상 '복지 디폴트(채무 불이행)'상태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박종훈 경남도교육감 간에 무상급식을 두고 힘겨루기를 한다. 논란이 일자 청와대가 나섰다. 안종범 경제수석은 9일 "누리과정은 법적으로 장치가 마련돼 있어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의 의무. 무상급식에 대해서는 지자체 재량으로 하는 것이지 한 번도 공약으로 내세운 적이 없다. 다만 무상보육은 '반드시 추진하겠다'고 수차례 공약했다"며 무상보육에 우선순위를 둔 것이다.

2010년 지방선거 때 '무상복지'의 빗장을 열렸다면 2012년 대선 때 여야 대통령후보들이 경쟁적으로 복지공약을 내걸어 복지 논쟁을 더 확대시켰다. 하지만 세금을 더 거두지 않는다면 다른 지출을 줄여야만 복지를 할 수 있다. 사실상 국민을 속인 것이다. 여야가 표를 겨냥해 정밀하지 못한 복지 공약을 내건데 문제의 원인이 있다.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를 놓고 지금처럼 보혁(保革)으로 여야로 나뉘어 자신이 옳다며 싸워봐야 헛 수레바퀴만 돌리게 된다. 미국은 'SNAP'나 'TANF'에 등록된 저소득가정은 자동 무상급식을 하고, 독일 베를린주는 생활보호대상자 자녀의 경우 급식비 30%를 감면해준다. 영국은 잉글랜드 초등학교에서 무상급식을 했고 2019년까지 초등학교 전면무상급식계획이다. 남의 나라야 어떠하던 무상급식, 재정을 만들어 해야 한다. 가난한 학생들만 무상급식하면 그 밥은 눈칫밥이요 눈물 묻은 밥이 된다. 가난한 학생들의 기를 살려줘야 매래가 있다. 이 땅에 사는 누구라도 배를 곯지 않고 교육받을 권리를 누리게 해줘야 하는 것은 불쌍해서 온정을 베풀기 위함이라기보다는 나라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다.

하루빨리 복지제도에 대해 정치가 해결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지금 이 나라는 정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지가 오래다. 야당도 이 문제를 가지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라는 외교 전선에 나가 있는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은 국익을 위해서도 바람직스럽지 않아 보인다. 최장집 교수가 <정치발전연구소>의 '정치철학이 있는 민주주의 강의'에서 한 말이다. "...시장자본주의 대(對) 복지자본주위와 같은 이분법을 통해 선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는 것은 중간적인 길이다" 대표적인 진보적 정치학자로 한국사회에 남다른 무게를 지닌 그의 학문과 식견을 보수정당도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여야는 복지재원도 복지범위도 중간적인 길에서 해답을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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