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원 한국산업진흥원 감사

요즘 이야기거리는 대부분 정치권에서 나온다. 국정감사를 마치고 내년도 예산안을 만지작거리면서 어린이집 보육비 논란에 연일 설전이 오고 간다. 그러나 예산안 윤곽만 잡히면 정치권은 개헌론 소용돌이로 빠져들 태세이다. 여권과 야권을 아울러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냥 있을 리 만무하다. 개헌 논의에는 국회의원 선거구 문제도 더해졌지만 무엇보다도 국민적 여망을 품고 있다. 국력을 분산시킬 우려가 있고 따라서 국가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지만 여론은 이미 개헌론으로 좌표를 잡은 것 같다. 바로 엊그제였다. 한 방송사가 "헌법을 고쳐 대통령과 국회의 역할을 조정하는 걸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여론조사를 했더니 무려 63%가 찬성한다고 응답한 반면 반대 21.5%에 불과했다.

헌법은 국정 운영의 지향점을 설정하고, 그 지향점을 향해 효과적으로 나갈 수 있는 국정 운영의 방식을 결정하고 그 국정 운영 방식을 생산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제도와 장치를 요약해 놓고 있는 최고의 국민적 함의이다. 개헌론은 크게 달라진 국내적인 상황을 수용할 수 있도록 국정 운영의 지향점을 다시 설정하고 그에 따른 국정 운영 방식 그리고 제도와 장치들을 매만지고 다듬어 보자는 국민적 요구인 셈이다. 지구 45억년 마디마디는 강한 생명체가 승자가 아니고 새로운 환경에 능동적으로 적응한 생명체가 승자가 되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집채 더미만한 공룡은 충격적인 환경에 멸종했지만 같은 시기에 출현했던 보잘 것 없는 모기는 공룡이 멸종했던 그 환경에 적응해 2억년이란 세월을 관통해 지금도 생존하고 있는 사실은 괄목해야 할 가르침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개헌론의 본령은 헌법을 개정해야 하느냐 하지 말아야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국정 운영의 좌표를 어떻게 설정해서 국정 운영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느냐에 국민적 관심이 모아져야 한다. 문제는 국정 운영의 지향점이나 국정 운영의 방식은 정치적 입장이나 시대적 요구를 보는 관점 혹은 국가적 가치관에 따라 제각각이라는 대목이다. 천 갈래 만 갈래도 갈라지고 얽힌 이른바 국민적 여망을 헌법이라는 하나의 그릇에 담아 내지도 못하면서, 엉뚱하게 국민적 마찰음만 증폭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진원지이다. 여기에 국회의원 선거구 문제가 보태지면서 2016년 4월 총선이 예정되어 있고 보면 시일 또한 촉박하다는 멍에가 씌워져 있다. 그렇다고 개헌 논의를 포기한다면 우리는 1987년 헌법의 족쇄를 떨쳐낼 수 없을 것이다.

원칙만 지킨다면 어렵지도 않고 시끄럽지도 않는다. 개헌 논의를 미뤄서도 안 되고, 이번만은 기형적 아류를 만들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