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 절벽 위의 나무를 섬이라 불러요

잎은 사랑의 떨림

해와 달의 가슴을 본떴죠

조금만 건드려도 진물이 흘러나와

상처를 견고하게 깁는 이슬방물이 됩니다

뿌리가 추워서 암벽에 몸을 밀어 넣었군요

 

나는 저 절벽 위의 세월을 꽃이라 불러요

아찔한 벼랑에서

자란 올곧은 생이지만

바람에 지는 꽃잎이 되고 말았죠

몸부림치면서 상처를 이겨낼 때

시간은 안으로만 견더라 견더라

보랏빛으로 소리쳤어요

 

구름으로 잠깐 머물다 흘러갑니다

허공에 밧줄을 매고 약초를 캐던 사내는

<감상> 섬은 바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절벽 위에 갖은 풍상 겪으며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도 섬이고, 당신에게서 멀리 떨어진 그리운 이도 섬이다. 섬은 늘 올곧은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그 몸부림은 힘들고 그립다. 잠시 사람들이, 새들이, 바람이 들랑거리지만 영원을 약속할 수 없다. 흘러가는 것들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것이 우리 곁에 있는 섬의 도덕이며 섭리다. (시인 하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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