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生可畏 (후생가외) 후생은 가히 두려워할 만하다

윤용섭 한국국학진흥원 부원장

후생가외後生可畏는 너무나 유명한 말이 되었다. 후배, 후진들이 두렵다는 뜻이다. 시대는 발달하고 해가 갈수록 물화物華는 풍부해진다. 물화는 물질문명의 진수들이다.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는 속담처럼, 세간의 인물들도 그와 같아서 세월이 흐르는 데 따라 일대의 인걸들이 물러나며 다시 후대의 신인들이 등장한다.

이것은 인간 문명의 변천과 함께 이루어지므로 더욱 극적이다. 아무리 천하를 종횡하는 학문과 도량을 지녔더라도 세월이 흘러가면 후생에게 밀리게 되어 있다. 과거의 성현들은 지구는 둥글며 태양은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지구, 즉 이 땅덩어리가 그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초둥학교 학생도 아는 진리이다. 지식의 축적에 있어서 문명의 발달이란 이처럼 무서운 것이다. 성현은 지식이 아니라 그분이 소유한 지혜로 인해 존중받는다.

그러나 후생이라고 모두 지금의 인물보다 나은 것은 아니다. 아니, 훨씬 못한 경우가 많다. 중국에서도 공자나 제갈공명 같은 인물은 더 이상 태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생은 두렵다. 역사의 물결 은 결코 그치지 않고, 뛰어난 인물은 계속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들은 선배들이 못다 한 사업을 완성하기도 하고 미흡한 학술을 보완 발전시키기도 한다. 때로는 틀린 점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후생도 역시 인간이다. 확고한 뜻과 불굴의 노력이 없으면 선배의 경지를 추월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십, 오십이 되어도 이름이 들리지 않으면 두려워할 게 없다고 하는 것이다. <자한편>

一. 후생은 두려워할 만하니,

後生可畏(후생가외)

二. 어찌 앞으로 올 자가 지금 사람만 같지 못하다고 하겠는가?

焉知來者之 不如今也(언지래자지 불여금야)

三. [그러나] 사십이 되고 오십이 되어도 명성이 들리지 않으면

四十五十而 無聞焉(사십오십이 무문언)

四. 이 또한 두려워할 것이 못 될 뿐이다.

斯亦不足畏也已(사역부족외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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