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 인간다운 삶 보장하되 복지 선진국 시행착오 본받아 무차별 복지에 현혹돼선 안돼

이중원 산업기술진흥원 상임감사

복지(福祉)논쟁의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고, 정녕 피할 수 없다면 훗날로 미루고 싶었던 불청객이다. 정답이 없는데다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마땅한 롤 모델조차 없는 까닭이다. 복지의 판도라 상자는 무상 보육이 먼저 비집고 열었다. 그리고 곧바로 무상 급식으로 옮겨 붙었다. 새해 예산 편성 시한이 다가 오자 2조원을 웃도는 누리 과정 지원 재원을 누가 부담할 것이냐는 놓고 일선 교육감과 중앙 정부가 시이소 게임을 시작했다. 일선 교육감들이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거부하기로 하자 중앙 정부는 무상 급식비를 누리과정 예산으로 활용하라며 무상 급식을 건드렸다. 무상 보육과 무상 급식이 오버랩 되면서 복지논쟁을 증폭시켰다. 무상 보육이든 무상 급식이든 누구도 싫어하지 않는다. 문제는재원이다. 복지논쟁의 본질이기도 하다.

복지란 행복한 삶이라는 의미로 국민들 모두의 행복한 삶을 지향해야 한다는 당위 적 가치다. 행복한 삶은 다시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가 지켜지는 삶으로 구체화했다. 최소한의 의식주(衣食住)가 보장되고 고통스러운 질병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최소한의 의식주조차 확보하지 못하거나 질병을 스스로 치료할 없는 이웃이 존재했고, 이 같은 현실 상황은 국가 공동체의 생산성과 건전성을 훼손하게 되었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조차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민족적 혹은 국민적 정체성은 이완되기 십상이었다. 복지정책이 시작된 출발점이다. 단순한 자선 활동이 아니라 조직적이고 정책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고 보호하는 제도와 그 장치를 마련하게 되었다.

과학기술의 첨단화는 생산성의 고도화로 이어지면서 부(富)의 풍요를 가져왔지만 한편으로 국가 사이 혹은 개인 사이의 불평등도 심화시켰다. 세계 각국은 손쉬운 대로 갖가지 복지 혜택을 확장했고, 점점 벌어지는 불평등의 간극을 메워야 했다. 선거라는 정치 제도가 시행되면서 복지정책은 무분별하리만치 양적으로 확장되고 질적으로 확충되었다. 복지정책이 본령을 벗어나기 시작했고 재원 고갈이라는 암초를 얹히게 되었다. 문제를 늦게나마 알아챈 국가들은 보편적 복지를 선별적 복지 체제로 전환하느라 안간힘이고, 보편적 복지의 덫에 눈을 감았던 국가들은 심각한 재정난에서 함몰되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헐떡이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복지의 빛과 그림자가 지금 우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복지 역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보장이라는 초심의 테두리를 벗어나선 안 된다. 다른 사람 땀의 결실을 보상없이 나누는 과정으로 자칫 근로의 가치를 외면케 하는 독가시를 직시해야 한다. 보편적 복지를 주창했던 복지 선진국들의 재원 고갈이라는 경험적 시행착오를 교과서로 삼아야 한다. 무차별 무상급식을 선별적 무상급식으로 전환하고 그 나머지 재원으로 누리과정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영·유아 무상보육을 우선해야 한다는 응답이 52%로, 무상급식 우선을 주장한 38%를 크게 앞지른 현실과도 그대로 맞아 떨어진다. 복지는 정치적 쟁점이 아니라 현실적 상황 논리의 문제임을 곱씹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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