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 가는 지금 비선실세 국정개입 논란 접고 새해는 희망 논의하고 실천해야

이중원 한국산업기술진흥원 감사

이번에도 어김없이 지독한 홍역을 치렀다.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이라는 실세 논란이 불거졌다. 새로운 정권이 출범하고 순항할 즈음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고질병이다. 대통령의 자녀들이 실세 논란에 휩싸였고 형제들이 논란의 핵이 되어 곤혹을 치르곤 했다. 당사자들은 국민적 지탄을 받았던 처신에 대해 엄중한 사법적 응징을 받으면서 사회 정의의 준엄함을 재확인시키곤 했다. 그러나 이른바 실세 논란의 그림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정치적 공방을 격화시키면서 국론이 분열됐고 국정운영 동력이 뒤뚱거리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어려움으로 다가오곤 했다. 국가적으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할 쟁점이 산적한 시기였고 보면 국민들이 감당해야 할 유형 혹은 무형의 짐은 천근만근이었다.

이번 정윤회 논란은 결과적으로 실체가 없었다. 누군가는 검찰이 수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무엇인가 국민적 지탄을 받기에 충분한 비리가 있을 것이라고 수군거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대 정권에서 반복되어 왔던 예전엔들 실상을 감추려고 권력의 모든 수단을 동원하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주머니에 송곳이 감춰져 있었기에 그 뾰족한 끝이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그 송곳 끝이 나오지 않았고 보이지도 않았다. 이른바 십상시의 조직적인 국정 농단이나 미행이라는 반사회적인 행태도 없다. 농단이란 본래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한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제기된 모든 의혹들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특별히 독차지하려고 아등거릴만한 이익이나 권리는 없지 않은가.

문자로 정리된 문건은 때로는 의외의 괴력을 만들어 내는 속성이 있다. 의사소통에서 즉시성과 현장성이 적용되는 말과 달라서 충분히 검토하고 숙고한 결과라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기록은 그 기록이 적시한 사실과 함께 그 기록이 쓰였던 상황이며 배경 그리고 기록자의 처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으로 저 마다 목소리의 옥타브를 올리려는 시기라면 더더욱 기록의 문건은 지혜롭게 읽어야 한다. 조선의 세조시대를 풍미했던 남이 장군의 목숨을 빼앗았던 역사는 우리에 두고두고 곱씹어야 할 가르침이다.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그 호기를 북정가(北征歌)라는 한시에 담으면서 '男兒二十 未平國'(남아이십 미평국, 남아 이십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한다면)이라고 적었다. 그런데 평정한다는 의미의 평(平)자를 얻는다는 의미의 득(得)으로 바꾸어 역모를 획책했다는 혐의를 받고 처참한 최후를 맞았다. 기록이 갖는 빛과 그림자다.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시간의 흐름에 시작이 따로 끝이 있겠는가. 시작도 끝도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사람들이 하루하루로 구분하고 달로 나누고 해로 묶었다. 인간이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반복하는 실수와 잘못을 시간의 마디마다 뒤돌아보고 바로 잡아야 한다는 단절의 가르침일 것이다. 이제는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논란을 접어야 한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자연의 흐름에 실어 떠내려 보내야 한다. 논란의 실체가 없고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할 문건이었다. 핵심은 실익이 전혀 없는 소모적이고 낭비적인 논란이라는 대목이다. 국가 사회의 건전성과 생산성을 높이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극대화하기는커녕 소모적인 분란만 증폭시켰다. 한 해가 저문다. 새해에는 희망과 보람을 논의하고 실천해야 한다. 진정한 망년(忘年)의 의미일 것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