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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왜 지금 다시 낙동강인가?

신도청시대, 낙동강을 가다…‘역사의 중심’ 대구·경북 새 희망의 물길 흐른다

김정모 논설위원 kjm@kyongbuk.co.kr 등록일 2014년12월31일 17시42분  
낙동강이 눈으로 덮힌 하회마을을 감싸 안고 유유히 흘러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낙동강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올해 7월 경북도청이 낙동강 상류인 안동 예천 신청사로 이전한다.

또 세계적으로 '물'을 다시 소중한 자원으로 인식하고 그 가치를 다시금 발견하고 있다. 다시 태어나는 낙동강의 시대다.

경상북도 신도청시대를 맞아 그 낙동강을 재발견하고 새로이 조명하기 위해 낙동강 물길을 따라 '신도청시대, 낙동강을 가다'를 기획 연재한다.

낙동강은 뭇 생명들의 젖줄이다. 우리의 모태다. 오늘의 경상도를 만든 원천이다. 신석기시대 농경문명을 일궈오면서 낙동강과 하천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마을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마을이 도시로 발전했다. 이곳에서 우리 선조들은 선사시대부터 삶을 기대어 살았다. 줄잡아 1만 년 전 부터 신석기 청동기 철기문화를 꽃피웠다. 칠곡군 석적면 중동일대에서 돌망치 등 구석기 유물이 나왔으니 실은 그 전부터다. 낙동강은 지금도 우리가 먹는 식수는 물론이고 농업용수와 공업용수를 대주는 수원지다.

그 낙동강이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 가운데 일어난 3번의 기적과 함께해왔다.

하나는 한반도 동남쪽 낙동강역에서 건국한 신라가 최초의 한민족 통일국가로 거듭난 것이다. 신라와 가야가 낙동강을 두고 패권을 다투다가 신라가 낙동강을 먼저 차지하면서 운명을 갈랐다. 신라는 제 기야 왜 등 3국 연합군의 침략을 격퇴하면서 삼국통일의 주도권을 잡았던 것이다.

또 하나는 낙동강을 자양분으로 삼아 낙동강 서쪽 지역을 영역으로 국가연맹체를 이룬 당대 동아시아 최고의 우수한 문명국인 가야의 존재다. 가야의 문명 특히 제철 기술은 일본에까지 전파됐다. 요즘 한국제품의 핵심기술 상당수가 일제인 것에 비하면 까마득한 옛 이야기다. 당시에 '메이드 인 가야'는 일본인들에게 최고의 인기 제품이었다고 사료는 전한다. 고대 일본 산업의 최첨단을 이룬 가야의 문명은 일본이 고대국가로 발전하는데 기초가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강의 기적'이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 중에서 그것도 전쟁의 참화를 딛고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것을 국제사회에서는 '한강의 기적'이라 부른다. 그 한강의 기적이 실은 낙동강의 기적이라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산업발전의 대동맥 역할을 담당하여 경제발전의 기틀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 발전도상에 남도(南道)에는 부산 마산 울산벨트가, 북도(北道)에는 포항-대구-구미벨트가 앞에서 이끌고 안동을 비롯한 농촌 고을의 대규모 노동력이 뒷받침됐다.

낙동강은 우리나라 남북한 전체의 강중에 압록강 다음으로 긴 한반도 제2의 강이다. 이어 두만강 한강 대동강 금강 순이다. 나무가 줄기가 있고 가지가 있듯이 낙동강에는 803개의 하천이 있다. 낙동강 중상류로 흘러드는 낙천 반변천 길안천 내성천 서천 한천 병성천 쌍계천 위천 감천 금호강 회천 신천 가천 등 경북권의 주요 하천은 물론이고 이름 없는 실개천과 작은 도랑에도 우리의 삶이 녹아 있다. 농부들이 지게를 지고 가며 농요를 읊으며 건넜고, 아낙네들이 빨래방망이를 두들겨 댄 애환이 서려있다. 천진난만하게 물장구치던 아동들의 체취가 배여 있다. 그래서 대규모 이농의 시대인 60~80년대 타향에서 고향이 사무치게 그리우면 "낙동강 강바람에 치마폭을 스치면…"이라는 대중가요 '처녀 뱃사공'을 부르며 그 낙동강 물길을 그리워했다.

20세기 6·25전쟁, 60~80년대 공업화 등 역사의 현장이 됐던 곳으로서의 낙동강을 찾아가 본다. 왜란과 6.25의 비극을 가장 가슴 아프게 간직한 사연이 깃든 곳이 낙동강이다. 특히 낙동강은 고려, 조선시대에 일본과의 교통무역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일제 강점기 이전 수천년 동안 교통의 주 인프라는 강이었고 나루가 그 중심이었다. 철도와 신작로가 놓이고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그 강은 교통의 소임을 다했지만. 공업화 이전 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낙동강에 배가 다녔기에 한강의 마포, 노량진처럼 낙동강에도 많은 나루가 있었다. 배로써 사람이나 짐을 실어 나르는 '나루', 한자로 표해 도(渡) 진(津) 포(浦) 항(港)이다. 이런 지명이 널려있다.

우리는 강이라는 자연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길고 긴 천 여리 낙동강도 무수한 하천 실개천 도랑들이 한데에 합수(合水)한 것이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다 협력하여 선(善)과 성(成)을 만든다. 또 물길은 산을 만나면 돌아가야 하고 큰비가 나면 다니지 않은 길도 간다. 유연함과 강인함을 배울 수 있다.

낙동강이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올해 7월에는 낙동강중류 대구에 있던 경북도청이 안동예천 신청사로 완전히 옮긴다.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다. 특히 같은 위도(36도)상에 서게 된 세종시와 도청 신도시를 잇는 동서5축 고속도로, 중앙선 복선전철화, 예천공항 등 새로운 길이 열린다. 전환의 시대다. 다시 한 번 도약하는 기초를 놓는 한 해가 될 수 있다.

신도청시대 경북은 연해주 만주3성 두만강권 등 곧 도래할 환동해권 경제와 에코경제시대를 맞는다. 뿐만 아니라 세 번의 기적의 역사에 중심을 차지한 저력이 있기에 낙동강에서 희망을 다시 발견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한국의 남부시대, 지방화시대를 선도하는 '낙동강의 기적을 이루자'는 소리 없는 깃발을 내건다. 멀리는 909년 경상도 역사에서 짧게는 119년 경상북도 역사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비전으로 경상북도 신도청시대, '신낙동강(新洛東江)'를 연재한다.

이제 세계적으로 '물'을 다시 소중한 자원으로 인식하고 그 가치를 새삼 발견하고 있다. 다시 낙동강을 예찬하기 위해 낙동강 물길을 따라 나선다. 기자가 찾은 겨울 낙동강도 여전히 유장하고 진중했다. 모이고 모여 큰 줄기로 수억 년 흘러왔을 낙동강. 낙동강 8백3개 하천에서 미래를 만나는 본지의 여정에 독자 제위와 함께 감동을 발견하고 나누고 싶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싯구처럼 우리는 넉넉한 낙동강의 품안에서 엄마야 누나야 살았고 살아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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