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남학호

팩은 모두 다섯 개다. 불어터진 젖을 틈틈이 짜서 냉동실에 얼려 둔 것이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건 두 시간 전이다. 목소리가 작아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앞뒤 말을 연결해 보면 보라를 업고 3시 30분에 이곳에 도착한다는 내용이다. 그 말만 하고 곧바로 전화가 끊어졌기 때문에 약속을 잊었느냐는 말을 할 기회를 놓쳤다. 연락을 하기 전에는 찾아오지 말라는 말을 일주일 전 분명히 했다. 그는 가만 듣고 있었다. 일방적 통보긴 했지만 대꾸를 하지 않기에 알아들은 줄 알았다. 보라에게 젖을 물리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남이 볼까 불안했다. 하루가 다르게 빠져나가는 그의 근육을 확인하는 일도 마음 편치 않았다. 소맷자락 아래서 덜렁이는 큰 손은 녹슨 갈퀴 같고 땅을 딛고 선 다리는 왜가리 같았다.

기상캐스터는 오늘 밤까지 비가 내린다고 했다. 일기도를 가리키는 그녀의 손동작은 우아했고 노란색 비옷을 입은 모습은 상큼했다. 나는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는 그녀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늦가을 비가 아니라 봄꽃 소식을 전해 듣는 기분마저 들었다.

▲ 한국화가 남학호

시어머니는 남편이 보라를 업고 내게 젖 먹이러 오는 걸 모른 척했다. 어둡고 눅눅한 반지하에 살다가 오후 두세 시까지 햇빛이 쨍쨍 드는 2층 남향집으로 이사한 뒤부터 나에 대한 시어머니의 타박은 눈에 띄게 줄었다. 전셋돈을 갚기 위해 일 년 정도 집에 올 수 없다는 말을 했을 때도 그녀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환자인 자기 아들과 젖먹이 손녀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인데도 독설을 퍼붓거나 검버섯이 핀 손으로 삿대질하지도 않았다.

남편은 은행소속의 프로농구선수였는데 지난여름 갑자기 쓰러졌다. 몸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는 말을 자주 하긴 했지만, 연습을 무리하게 해서 그러려니 했다. 그는 화장실을 가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때도 있었고 밥을 먹다 수저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시어머니는 몸이 허해서 그런 거라며 한약과 건강보조식품을 사다 먹였다.

의사는 그에게 루게릭 진단을 내렸다. 믿을 수 없었다. 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 감기 한 번 앓은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나는 남편을 데리고 여러 병원을 옮겨 다녔다. 그들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현대의학으로 고칠 수 없다는 말만 되돌아왔다. 미래가 몽땅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빛이 없는 공간에서 넋을 잃은 세 사람이 서로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초췌하고 암울하고 캄캄해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임수진 경북 구미

"정신없는 년, 내 아들이 아픈데 넌 웃음이 나오냐!"

시어머니는 눈썹 끝을 끌어올리며 쌍욕을 해댔다. 울음도 웃음도 아닌 어정쩡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 괜한 트집을 잡는 것이다. 어이가 없었지만 시어머니의 속인들 우박 맞고 찢어진 비닐하우스와 뭐가 다를까 싶어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들의 불운을 내 탓으로 몰고 갔다. 집에 사람이 잘못 들어와 금쪽같은 아들이 살(殺)을 맞은 거라고 했다. 시어머니는 외할머니 손에서 자란 나를 처음부터 마뜩찮아 했다. 근본 없는 년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착하디착한 아들 고쳐내라는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며느릿감으로 점찍어 둔 유치원 선생이 있었는데 나 때문에 어긋난 것에 대한 분풀이 같았다.

그럴수록 나는 더 싹싹하게 굴었다. 두 여자가 한 남자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가장인 그가 쓰러지자 생활은 급격히 궁핍해졌다. 마트에 일자리를 구한 나는 물건 진열하는 일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면 다리가 퉁퉁 부었다. 시어머니도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듯했다. 종이 줍는 일이 고될 때마다 그녀는 젊은 년이 늙은 년 등골 빼 먹는다며 악에 받친 욕지거리를 해댔다. 남편은 시어머니와 나의 심리전을 못 본 척했다. 만사 귀찮은 표정이었다. 서운할 때도 있었지만, 그가 받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시어머니의 악담을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잠자기 전 남편의 팔다리를 주무르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살과 근육이 빠지기 시작한 그의 몸은 마른 나뭇가지 같아 세게 주무르면 부러질 것 같았다. 내가 남편을 마사지해 줄때마다 시어머니는 나를 밀어내고는 그 자리에 대신 앉았다. 내 손놀림에 정성이 없어보였는지 본인이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남편은 증세가 심해지면서 외부와 연락을 끊었다.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 맞았나 싶을 만큼 철저히 움츠러들었다. 동료 선수의 전화는 물론 감독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나는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아이가 들어선 얘기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는 사이 5개월이 되었다. 종일 누워있거나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창밖만 멍청히 쳐다보는 그에게 새 생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가도 어쩌면 아이가 그를 일어서게 하는 희망이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갈등하는 사이에도 아이는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마트 직원들이 입는 유니폼 속에 배를 감추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졌다. 집안에 드문드문 떠돌던 웃음이 수분처럼 증발된 자리에 새 생명이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의사는 그의 병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고약하다고 했다. 남편은 자신이 죽어가는 과정과 매일 만났다. 육체 안에 갇혀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사지를 늘어뜨린 채 낡은 일인용 소파에 꼼짝 않고 앉아 있을 땐 저 자세로 죽은 게 아닌가 싶어 겁이 나기도 했다. 남편은 농구코트에서 슛하던 건강했던 자신과 만나고 내 몸을 만지고 싶어 안달하던 기운 넘치던 한때를 회상이라도 하는 듯 혼자 웃음을 흘릴 때도 있었다. 그는 경기가 끝나면 밤 열두 시에도 나를 만나러 왔다. 운전 중에는 기어에 내손을 올려놓고 쓰다듬었고 신호대기 중에는 뺨과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그는 내 몸이 신기하다고 했다. 신기해서 자꾸 만져보고 싶다고 했다. 나를 생각하며 슛을 하고 드리블을 한다고 했다. 나는 그의 단단한 팔에 매달려 걸으며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노란 비옷을 입은 기상캐스터는 어느새 사라졌고 텔레비전 화면엔 맛집 기행이 한창이다. 그가 딸을 업고 공원을 서성일 생각을 하니 마음이 급하다. 나는 가방에 모유 보관 팩을 넣은 뒤 지갑을 챙겼다.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이 넓은 실내에 고요히 흐른다. 보라를 안을 생각을 하니까 젖이 도는지 가슴이 뻐근하다. 조심조심 현관으로 걸어가는데 아기 방에서 연아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빠르게 다가가 가슴을 토닥인다. 연아는 손발을 버둥대며 더 크게 운다. 빨리 재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팔에 안고 리듬감 있게 흔든다. 아기는 조그마한 입을 벌리고 가슴팍으로 얼굴을 들이민다. 두 시간 전에 젖을 먹였는데 또 입을 벌린다. 잘 먹어서 그런지 1개월 빠른 보라보다 훨씬 통통하다. 비 내리는 공원에 청승맞게 서 있을 남편을 생각하니 또 한숨이 나온다. 그를 보고 있으면 보라와 내가 블랙홀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든다. 한때는 그의 손끝만 닿아도 자지러질 만큼 좋았다. 세상에서 버림받더라도 그와 함께라면 행복할 것 같았다. 그의 몸을 받아들이며 절정을 향해 내달릴 땐 우리의 미래도 환하게 열릴 줄 알았다.

팔심이 없어 우산도 들지 못할 텐데 비를 흠뻑 맞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는 보라는 꾀죄죄한 얼굴로 그의 등에 매달려 있을 것이다. 작은 발이 포대기 아래로 삐죽 빠져나와 젖어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오늘따라 거실 천장의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더 화려해 보인다. 이 집엔 곰팡이가 자랄 틈이 없다. 천장도 높고 환기도 잘 된다. 식기와 가구도 고급스럽다. 접시 하나도 십만 원을 호가한다. 깨면 깬 사람이 변상해야 하니까 조심해서 다루라고 신애란이 말했다. 이 집에서 나는 가구보다 싸다. 그래서인지 내 몸값보다 비싼 가구를 닦을 때면 상전의 발을 닦아주듯 절로 허리를 숙이게 된다.

연아는 가슴팍에 계속 코를 박는다. 흔들어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모양이다. 기다리고 있을 두 사람을 생각하자 조급증이 인다. 소파에 앉아 블라우스 단추를 연다. 아기가 젖을 쭉쭉 빤다. 딸에게 돌아갈 게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물렸던 젖을 매몰차게 빼버린다. 연아는 새파랗게 넘어갔다. 남의 아기에게 젖을 내준 채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자렴. 제발 좀 자렴. 다시 젖꼭지를 물린다. 빗물이 베란다 창문을 타고 흐른다.

"자장자장 자장자장 우리 아기 잠잘 적에 앞집 개도 짖지 말고 뒷집 개도 짖지 마라."

마음이 급하니까 외할머니가 불러주던 자장가가 무의식적으로 웅얼거려진다. 신애란이 알면 기겁할 일이다. 옛날 사람들의 입에서 구전된 자장가는 신애란이 싫어한다. 그녀는 구전된 것은 뿌리가 없어 격이 떨어진다고 했다. 격이 떨어지는 걸 자꾸 들으면 듣는 사람 역시 품위를 잃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브람스나 슈베르트의 자장가를 격조 있게 불러 줄 자신이 없으면 모차르트나 충실히 틀어주라고 했다.

유모를 찾는다는 광고를 보고 면접장소를 찾아갔을 때 신애란은 바이올렛 테 안경에다 네이비 바지정장을 입고 있었다. 출산 후 부기가 덜 빠진 건지 원래부터 살집이 있었던 것인지 재킷 단추가 튕겨 나갈 것처럼 보였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그녀 약지에 끼워져 있는 루비 반지가 반짝거렸다. 그녀의 귀에도 루비 귀고리가 달랑거렸다. 신애란은 우선 내 외모부터 찬찬히 살폈다. 머리 모양과 손톱, 가슴과 아랫배를 차례로 훑었다.

"애 엄마 가슴치고는 작네."

그녀의 첫 마디였다. 당황했지만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가슴이 풍만하지 않고 몸도 말라 질 좋은 모유 수유는 힘들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시큰둥한 그녀 반응에 당황했다. 어떡하든 이 면접에 통과해야만 했다. 수개월 전부터 집주인은 집값을 올려 달라고 했다. 아니면 당장 짐을 빼라고 했다. 그때마다 나는 두 손을 모아 쥐고 머리를 조아렸다. 봐 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집주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반지하 방은 대낮에도 불을 켜지 않으면 동굴처럼 캄캄하고 장판 아래서 시작된 곰팡이는 담쟁이넝쿨처럼 벽을 타고 올랐다. 주인은 낡아서 덜컹거리는 싱크대를 고쳐 줄 생각조차 안 했다. 그게 싫으면 나가라는 식으로 배짱을 부렸다. 그러면서도 집세는 꼬박꼬박 올려 받았다. 머잖아 곰팡이는 딸아이의 몸으로 번져갈지도 모른다.

유모를 하겠다고 온 사람은 나 이외에 세 명이 더 있었다. 단발머리에 어려 보이는 여자는 미혼모 쉼터에서 사내아이를 출산한 후 입양을 보냈고 서른세 살 먹은 여자는 폭력을 쓰는 남편과 이혼 후 둘째를 낳은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온 여자는 마흔한 살에 5개월 된 아들을 두었다는데 가슴도 크고 몸집도 굵었다. 신애란은 지원자 모두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행색이 누추해 보인다고 했다. 구질구질하게 살아온 여자들의 젖을 딸에게 먹이는 게 꺼림칙한 모양이었다. 형편 좋고 여유 있는 사람이 뭐하러 유모를 하러 올까. 그걸 기대하고 있는 그녀가 이상했지만 나는 입을 다물었다.

마음이 급했다. 백 번을 생각해도 목돈을 만질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남편은 태어난 지 한 달된 젖먹이를 두고 어떻게 남의 집에 유모로 갈 생각을 할 수 있느냐며 안 들은 것으로 하겠다고 했다.

"그럼 어린 것을 곰팡이와 함께 키워?"

내 말에 남편은 차라리 자신의 장기를 팔겠다고 했다. 그날 그와 나는 처음으로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 그만하라고 했는데 남편은 장기 매매에 대한 더 구체적인 사례까지 들면서 나를 설득하려 들었다.

"이 몸으로 앞으로 몇 년을 더 산다한들 큰 의미가 있겠어?"

그 말이 결국 속에 불을 질렀다.

"의미가 없다고? 보라와 내겐 당신이 눈을 뜨고 바라봐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 는데. 어떻게 그런 절망적인 말을 할 수가 있어?"

감정이 격해져 목소리가 떨렸다.

"정은야!"

그가 내 이름을 부르며 팔목을 잡았다. 나는 그의 손을 강하게 뿌리쳤다.

"혼자 매일 천장 보고 앉아서 한 생각이 그거였어? 그런 거였어? 그럼 하루라도 빨리 실행에 옮겨야지. 성한 장기가 남아 있을 때. 그래야 돈을 더 받을 거 아니야!"

마음과 달리 입에서 독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시어머니가 문밖에서 이 소리를 들었던 모양이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갈퀴 같은 손이 들어와 순식간에 내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이런 근본 없는 년. 내 아들에게 장기를 팔라니. 금수보다 못한 년."

말리던 남편이 시어머니의 힘에 밀려 이불 위로 나동그라졌다. 그녀는 거머리처럼 내 머리채를 잡고 늘어졌다. 머리 밑이 빠지는 것 같았다. 처음엔 시어머니를 밀어냈지만, 어느 사이 시어머니와 나는 하나가 되어 서로의 몸을 할퀴고 쥐어뜯으며 방안을 뒹굴고 있었다.

"그만해!"

남편이 주먹으로 벽을 쳤다. 그제야 시어머니와 나는 서로의 몸에서 떨어졌다. 내 손에 시어머니의 흰 머리칼이 한주먹 뽑혀 있었다. 거친 숨소리가 방 안의 공기를 탁하게 했다. 시어머니와 나는 약속이나 한 듯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신애란은 건강검진 결과지를 세심하게 훑었다. 그녀 앞에서 나는 가슴은 작지만 질 좋은 모유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건강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다. 젖도 잘 나왔다. 딸아이가 먹고도 남을 만큼 충분했다. 스물일곱이란 나이도 온 사람 중에 제일 적당했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앉아 내 눈을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나는 그녀가 원한다면 상의를 걷어 올리고 퉁퉁 불은 젖을 보여줄 수도 있었다.

내 가슴 언저리를 훑으며 천천히 커피를 마시던 신애란이 빈 커피 잔을 탁자에 내려놓더니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곧이어 지켜야 할 사항에 대해 조목조목 얘기하기 시작했다. 냉정한 태도였다. 국문학 교수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계약 기간 중에는 남편과 잠자리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수유할 몸이 더러워진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웃는 얼굴로 동의했다. 1년 동안 집에 갈 일도 없겠지만, 남편과 잠자리를 할 일은 없었다. 자기 딸 외에는 어느 아기에게도 젖을 물려서는 안 된다는 조항도 있었다. 순간 서러운 마음이 울컥 올라왔지만, 그 또한 수용했다. 그밖에 연아 혼자 두면 안 되고 모차르트를 틀어주어야 하며 종이 기저귀 사용은 안 되며 집안일 역시 게을리 하면 안 된다는 조건이 부칙으로 들어 있었다. 계약만료일까지 휴가를 줄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노예계약이나 다름없었지만, 몸 파는 일보다 나을 것 같아 모든 조항에 동의했다. 어길 시에는 계약금의 세 배를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까지 읽은 뒤 사인을 했다.

음악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처음 1개월 동안은 모차르트 트는 걸 자주 잊었다. 그런 날은 신애란이 꼭 일찍 들어왔다. 하루는 연아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데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발소리가 들렸다. 순간 모차르트를 틀어놓지 않았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지만, 그녀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속도보다 빠르게 모차르트를 틀 재간이 없었다.

"집안이 왜 이렇게 조용하지. 음악 트는 게 힘든가요?"

그녀의 낭창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연아를 안은 채 엉거주춤 서서 그녀를 맞았다.

"언제나, 늘 이라고 했죠. 인간의 뇌는 자는 동안에도 음악을 듣는다고 몇 번 말했죠?"

나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잔소리가 끝나길 기다렸다.

"난 말이에요. 연아가 배 속에 있는 열 달 동안 기회만 되면 모차르트를 들려주었어요. 집에서도 자동차에서도 산책하면서도 말이에요. 강의가 비면 교수실에서도 수시로 들려주었다고요. 그 애는, 발길질하다가도 모차르트를 들려주면 고요해지곤 했어요. 이미 뱃속에서부터 음악을 이해한 애라고요. 그러니까 잠을 자건 놀건 신경 쓰지 말고 언제나, 늘 틀어놓으세요. 변명하지 말고. 아시겠어요?"

나는 고개를 조아렸다.

신애란의 집에 입주한 며칠 뒤 남편이 한밤중에 전화했다.

"보라가 줄기차게 울어. 정말 미치겠어. 이게 사는 거니?"

나 역시 젖먹이 연아와 집안일에 종일 시달렸다. 사는 게 아닌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신애란은 연아가 우는 걸 싫어했다. 마흔에 어렵게 얻은 아이라고 했다. 그녀는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고 싶어 했지만 젖이 나오지 않아 유모로 나를 데려온 것이다. 자기 젖을 먹여주지 못하는 게 미안해서인지 신애란은 연아에게 뭐든 최고급으로 해주고 싶어 했다. 유모차와 보행기는 물론 옷과 신발도 브랜드만 고집했다. 신애란은 세미나다 연수다 해서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그녀 남편인 T 교수는 지방에 있는 대학에서 건축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이면 집에 들르곤 했다. 그가 집에 오는 날이라고 해서 신애란이 장을 보고 음식을 장만하는 건 아니었다. 그가 오는 날이라도 신애란은 일이 있거나 약속이 있으면 늦게 들어왔고 간혹 술을 마시고 들어올 때도 있었다. 그 일로 T 교수가 불만을 토로하거나 화를 낸 적은 없다. 내가 차려주는 밥을 묵묵히 먹었고 신문을 읽거나 외출을 했다. 그렇지 않은 날은 자신의 서재에 종일 틀어박혀 있다가, 월요일 아침이면 지방으로 내려갔다. 함께 밥을 먹고 같은 침대서 잠을 자고 손잡고 쇼핑을 해야 한다는 개념이 신애란과 T 교수한테는 없어보였다. 각자의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한 듯 보였다. 불편해 보이지도 않았다.

T 교수가 오는 날이면 나는 청국장을 끓였다. 그가 청국장을 좋아한다고 신애란이 말해 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T 교수의 입맛이 특별나게 까다로운 건 아니었다. 아주 짜거나 맵지만 않으면 잘 먹었다. 주방 일을 하다가도 연아가 울면 나는, 앞치마에 손을 문질러 닦고는 아기를 안았다. 방보다는 거실 소파가 편했다. 앞섶을 열면 연아는 작은 입을 벌리고는 젖을 세차게 빨았다. 젖이 너무 많이 돌 때는 연아가 사레에 걸렸다. 그럴 때면 그릇에 젖을 짜낸 뒤 다시 물렸다. 남은 젖을 짜낼 때마다 집에 두고 온 보라가 생각났다. 모유 보관 팩에 짜두었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오는 남편에게 들려 보내기는 하지만 따뜻한 살을 만지고 눈을 맞추며 엄마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들으며 먹는 것과 같을 수 없다.

보라는 새벽 다섯 시면 잠이 깨곤 했다. 몸이 그 일을 기억해서인지 신애란의 집에 온 지 석 달이 되었지만, 그 시간만 되면 젖이 돌면서 가슴이 아팠다. 불은 젖을 마사지할 때마다 마음이 분쇄되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이 아기가 보라였으면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젖을 먹이다 고개를 들면 T 교수가 거실 한쪽에 서서 젖을 먹이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몸을 반대편으로 틀었다. 그리곤 윗도리로 가릴 수 있는 데까지 가렸다. 한 달에 한 번 오던 T 교수가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오기 시작했다. 신애란은 여전히 바빴고 나는 더 자주 청국장을 끓여야 했다. 그는 서재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지만 연아가 울면 거실에 나와 하릴없이 집안을 어슬렁거렸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연아옆에 누워서 젖을 먹이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거친 호흡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눈을 떴다. 머리맡에 T 교수가 서서 내 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놀란 나는 차렵이불을 끌어당겨 가슴을 덮었다. 그 바람에 연아가 깨서 울었다. 나는 얼른 연아를 품속으로 끌어당겼다. 한참을 서 있던 T 교수가 거실 쪽으로 사라졌다. 그가 사라진 뒤 시계를 보니 저녁 아홉 시였다.

1층에 내려서야 우산을 챙기지 않은 게 생각났다. 다행히 비는 멎어 있었다. 연아를 재우느라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 102동을 빠져나온 나는 모유 보관 팩이 든 가방을 가슴에 꼭 안고 105동 광장을 가로질러 놀이터와 노인정을 끼고 돈 뒤, 아파트 외벽 담장 아래를 빠르게 걸었다. 50m쯤 걸어가니 북문과 연결된 작은 통로가 보인다. 그 옆에 작은 틈새 공원이 있다. 그와 내가 매주 금요일마다 만나는 장소다. 벤치 두 개와 팔각정이 있는 이곳에 사람이 오는 경우는 드물지만, 간혹 중년의 남자들이 벤치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다 가곤 한다. 고층 아파트밀집 지역과 어울리지 않는 소박한 공원이다.

남편이 딸아이를 업고 서성이고 있는 게 보인다. 그의 초췌한 모습을 보는 순간 비를 품은 구름만큼 가슴이 캄캄해진다. 그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등에 업힌 보라에게 손을 뻗는다. 아기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다. 숱이 적은 머리칼에 빗방울 몇 개가 눈물처럼 맺혀 있다. 얼굴과 목도 조금 젖은 듯하다. 남편은 보라가 감기에 걸렸다고 했다. 약은 먹였으니 걱정하지 말란 말도 덧붙인다. 보라는 남편 등에 얼굴을 비비며 칭얼댄다.

"약을 먹이면 뭘 해. 비를 맞았는데."

퉁명스런 내 목소리에 놀랐는지 그가 입을 닫는다. 나는 보라를 받아 안고는 팔각정에 걸터앉았다.

"저기로 가자. 춥지 않겠어?"

남편이 길 건너편을 가리킨다. 그가 가리킨 게 편의점 앞 차양인지 커피숍인지 파리바게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못 들은 척 블라우스 단추를 열었다. 대꾸할 힘도 싸울 힘도 없었다. 신애란은 잔소리가 심한 여자였기에 나는 하루에도 여러 번 걸레를 들고 집 안 구석구석을 닦아야 했다. 수십 장의 기저귀를 날마다 삶아 빠는 일도 고되었다. 유모로 들어가기 전보다 몸이 더 말랐다. 저녁이 되면 피곤 때문에 눈이 절로 감겼다. 가수면 상태에서 설거지하고 화장실 변기를 닦고 거실바닥을 기어 다니며 청소를 할 때도 있었다. 수면제 먹인 닭처럼 졸다가 연아가 울면 가슴을 풀어헤쳤다. 아기는 줄기차게 빨아댔고 할 일은 산더미였다.

보라는 가슴에 찰싹 달라붙어 허겁지겁 젖을 빤다. 구부정하게 서 있던 그가 벤치로 가 앉는다. 앉아서 이쪽을 바라본다. 나는 손으로 가슴을 꾹꾹 누른다. 일주일 만에 만난 딸에게 충분히 먹여주지 못하는 게 속상하다.

"엄마 미워하지 마."

보라는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손가락을 움직여 내 얼굴을 만진다. 목젖이 뜨거워진다. 나는 고개를 든다. 머리 위로 비구름이 느리게 지나고 있다. 낮게 깔린 구름이 언제 다시 비를 쏟을지 몰라 불안하다. 이 비가 그치면 겨울이 올 테고 남편의 병세는 더 깊어질지도 모른다.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 그가 언 땅을 걸어서 용케 공원으로 온다하더라도 이곳에서는 추워서 젖을 먹일 수 없다. 그 생각을 하자 벌써 마음이 서늘해진다.

이제 보라는 4개월에 접어들었다. 4개월은 어떤 일을 기억하고 판단할 나이는 아니다. 지금의 기억이 아기에겐 상처로 남지 않을지 모르지만, 가족을 위한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내게는 깊은 아픔이다. 신애란의 집으로 온 이후 보라는 열흘 가까이 우유병을 혀로 밀어내며 발악적으로 울어댔다. 어디서 그 많은 눈물이 나오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남편에게 들었을 때, 모든 걸 놓고 딸에게 가고 싶었다. 노인은 서럽게 우는 보라에게 자신의 젖을 물릴 때도 있었다. 노인의 마른 젖을 빨다 지쳐 잠든 날이 얼마나 많았을까.

간혹 그와 통화 중 전화선 너머로 보라의 자지러질 듯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누굴 닮아서 이리 고집이 세냐."

시어머니의 짜증 섞인 목소리도 들렸다. 우유가 너무 뜨거운 거 아니냐고 전화선 저쪽에서 남편이 말했다.

"내가 빨아봤다."

시어머니의 목소리는 멀지만 똑똑하게 들렸다. 순간 나는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녀는 아직도 습관을 안 고친 모양이다. 비위생적이니까 손목에 한두 방울 떨어뜨려 보라고 해도 귓등으로 흘리더니 끝끝내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시어머니가 김치를 질겅질겅 씹어 먹은 입으로 젖병을 빠는 모습을 상상하자 속이 메슥거렸다. 그녀는 여전히 날고기나 고등어를 만진 손을 비누로 씻지도 않고 젖병을 만질 것이다. 아이가 자주 설사를 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두 팔을 양옆으로 늘어뜨린 채 구부정하게 앉아있다. 영혼 없는 키 큰 인형 같다. 개업하는 날 가게 앞에 서 있는 꺽다리 바람 풍선인형을 볼 때마다 남편이 생각났다. 바람 풍선의 허리가 휙휙 꺾일 때마다 그도 그렇게 꺾일 것 같았다. 때로는 저렇게라도 버텨주는 게 고마울 때도 있지만 비가 흩뿌려지는 날 기어코 아이를 업고 오는 걸 볼 때면 그 고집이 시어머니에게서 유전된 것 같아 보기가 싫어진다. 그때 공원을 가로질러 가던 남자가 젖을 먹이는 나를 흘끔거린다. 나는 허연 가슴을 감추지 않는다. 더 숨을 곳도 감출 것도 없다.

보라는 젖이 충분하지 않은지 가슴팍으로 자꾸 파고든다. 당분간 오지 말란 말은 했지만 딸에게 도둑 젖이라도 먹이지 않는다면 나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남편은 일주일 전보다 더 말랐다. 눈은 움푹하고 어깨는 앙상하다. 홀쭉한 뺨 때문에 자기 나이보다 10년은 늙어 보인다. 저 몸으로 보라를 업고 온 게 신기하다. 아빠로서 마지막 안간힘인 것 같다. 병을 진단받은 후 무력감에 빠졌던 그를 되살린 건 아기였다. 보라가 태어난 후 그는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젖을 먹이러 오는 게 딸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이자 미안함을 더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195㎝에 80㎏의 몸. 코트를 뛰어다닐 때의 그는 한 마리 야생마였다. 슛할 때의 힘찬 점프는 보는 사람을 매료시켰다. 그는 나를 농구공처럼 품어주었다. 그의 품에 안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였다. 타이거 우즈의 여자 친구도 부럽지 않았는데 그의 몸이 파괴되고 마비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고서야 우리가 꿈꾸는 것들이 얼마나 허물어지기 쉬운 것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남편의 근육은 가속화가 붙은 듯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다. 음식물 삼키는 것도 힘들어하고 말도 어눌해졌지만, 짜증을 내거나 엄살을 부리지 않는다. 말없이 앓는 게 그가 병과 맞서는 방법이다. 그는 자신을 굴복시킨 병이 호흡기관은 물론 간뇌나 척추신경의 운동 세포까지 파괴해 나간다는 걸 알고 있다. 하루하루 죽어가지만 아빠 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보라가 걸음마를 시작하면 같이 걷겠다는 꿈도 생겼다. 그때까지만 살고 싶다고 했다. 어쩌면 딸의 손을 잡고 걷고 싶어 모진 고통을 견디고 있는지도 모른다.

"택시 타고 가."

나는 지갑에서 5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그의 주머니 속에 넣어준 뒤 모유가 든 가방을 팔목에 걸어준다.

"집에 도착하는 즉시 냉장고에 넣는 거 잊지 마. 팩 위쪽에 양과 날짜 적어놨으니까 날짜가 빠른 것부터 먹여."

매번 하는 말이지만 한 번 더 다짐을 받는다.

도로변으로 나가면 사람들 눈에 띌 수 있기 때문에 이쯤에서 그를 보낸다. 그가 택시에 오르고 있는 게 보인다. 보라가 자지러지게 울고 있다. 귀를 막고 얼른 돌아선다. 허전함에 입술을 꼭 깨문다. 남편처럼 자꾸 발이 헛디뎌진다. 길고양이 한 마리가 놀이터 그네 아래서 불안한 눈빛으로 이쪽을 흘끔거린다. 털이 흠뻑 젖은 고양이의 아랫배가 불룩하다. 새끼를 가진 것 같다. 가까이 가려 하자 꿈틀대며 일어서더니 슬금슬금 피한다. 고양이도 높다란 아파트가 위협적인 이 도시와 친해지지 못한 모양이다.

그를 태운 택시는 가고 없는데 아기는 여전히 가슴에 달라붙어 젖을 빨고 있는 것 같다. 기상캐스터의 노란 비옷을 살 꿈이 한 발 멀어진 느낌이다. 어쩌면 이 도시처럼 노란 비옷은 나와 어울리지 않을지 모른다. 빗방울은 금방 소나기로 변했다. 비를 피할만한 곳을 찾거나 뛰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천천히 철벅 철벅 걷는다. 빗물이 몸을 타고 흐른다. 속옷까지 흠뻑 젖고 나니 누군가 대신 울어준 것처럼 속이 시원하다.

엘리베이터 속으로 들어섰다. 벽면에 부착된 거울에 흠뻑 젖은 여자가 서 있다. 어깨길이의 머리칼이 추레해 보인다. 블라우스는 몸에 찰싹 달라붙었고 얼굴은 해쓱하다. 거울 속 여자를 향해 웃어준다. 웃는 여자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진다. 엘리베이터가 32층에서 멈춘다. 문이 열리자마자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다. 당황하니까 현관문 비밀번호가 잘못 눌러진다. 손이 덜덜 떨린다. 두 번의 실수 끝에 문을 열 수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서던 나는 도로 문밖으로 뛰쳐나올 뻔했다. 현관에 연아를 안은 T교수가 서 있다. 그가 목각인형 같은 표정으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나를 바라본다. 몸에 찰싹 달라붙은 블라우스가 신경 쓰인다. 그가 헛기침한다.

"평상시에도 애를 두고 돌아다닙니까?"

T 교수가 침을 삼키며 묻는다. 외겹의 눈은 날카로웠고 입술은 말할 때 외에는 단단하게 닫혀 있다. 나는 엉겁결에 손을 휘젓는다. 물방울이 휙휙 날린다. 그가 내 가슴과 하복부를 흘끔댄다. 나는 달라붙은 블라우스를 몸에서 떼 낸다.

"공원 벤치에서 아기에게 젖 물리고 있는 거 봤습니다."

순간 남편과 딸아이의 얼굴이 잠시 스친다. 천둥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파트 유리창으로 비가 확 뿌린다.

신애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건 젖은 옷을 갈아입고 연아의 기저귀를 갈아 채우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오늘 연수가 있어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T 교수 저녁을 차려주라는 말이 없는 걸로 봐서 그가 온 걸 모르는 모양이다. 청국장을 끓여 저녁상을 보았지만 T 교수는 먹지 않았다. 나는 설거지하고 기저귀를 개켰다. 그때까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고한다거나 신애란에게 일러바친다는 말도 하지 않았고 애를 두고 나가지 말라는 충고도 하지 않았다. 잘 도착했다는 남편문자를 확인하는 손끝이 떨렸다.

T 교수가 서재로 커피 한 잔을 부탁했다. 그는 책상 앞 회전의자에 앉아 있다. 나는 커피 잔을 조심스럽게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의 시선이 내 가슴 언저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뭐가 묻었나 싶어 내려다보니 블라우스 단추 두 개가 풀어져 있다. 정신이 없어 연아에게 젖을 먹인 뒤 잠그는 걸 잊은 모양이다. 들고 있던 쟁반으로 황급히 앞을 가렸다. 붉어진 얼굴로 서재를 빠져나오는데 그때까지도 T 교수는 내게서 눈을 거두지 않고 있다.

연아 옆에 웅크리고 누웠다. 무슨 말이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침묵이 더 무섭다. 뇌가 폭발 직전이다. 내일이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 뒤척이다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꿈에 신애란이 나왔다. 그녀는 계약을 어겼으니 돈을 내놓으라며 내 옷자락을 잡아당긴다. 나는 손바닥을 싹싹 비빈다. 블라우스가 뜯어졌다. 신애란은 내 배를 타고 앉아 유축기로 젖을 짜기 시작했다. 유축기 속으로 고단했던 지난 시간이 빨려 나왔다. 시어머니가 보라와 남편과 함께 흐물흐물해진 얼굴로 꺅꺅거렸다. 그만해, 그만하란 말이야! 밀어냈지만 신애란은 꿈쩍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더 깊이 가슴팍으로 파고든다.

모차르트의 '봄을 기다림'이란 곡이 환청처럼 들린다. 가슴이 답답하다. '이곳이 어디지. 내가 왜 이곳에 누워있지. 보라는, 우리 아기는 어딨지.' 손을 내밀어 앞엣것을 더듬는다. 둥글고 단단한 것이 잡힌다. 신애란은 아니었다. 연아의 고른 숨소리가 바로 곁에서 들린다. 내게 찰싹 달라붙어 젖가슴에 얼굴을 박고 있는 건 T 교수였다. 그가 젖꼭지를 꽉 문다. 아프다. 눈물이 났지만 비명을 삼킨다. 노란색 비옷을 입은 기상캐스터의 잘록한 허리와 상큼한 미소가 난데없이 생각난다. 유모 일이 끝나면 그녀가 입고 있던 노란 비옷을 사고 싶었다. 그 옷을 입으면 예전의 행복했던 날로 돌아갈 것 같았다. 비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내일은 맑음이라던 기상캐스터의 노란 비옷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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