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남학호
벼슬이는 긴 꼬리를 날렵하게 움직이며

쉴 새 없이 쪽방을 헤집고 다녔다.

누구나 구구, 하면 달려가 얻어 먹는 것이

습관이 돼 고되게 먹이를 찾으러 나서지 않았다.

꿩은 왜 멀리 날지 못할까?

꿩의 선조는 다른 조류들이 고되게 비상할 때

땅에서 편히 어정대는 길을 택했을 것이다.

그처럼 안주한 탓에 하늘로 날 수도 땅에서

도망칠 수도 없는 무력한 신세가 됐다.

보건소에서 나온 검안 의사는 미심쩍은 눈빛이었다. 할머니의 눈꺼풀을 까보기도 하고 시퍼렇게 멍든 주사 자국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심지어 팬티에 똥이 흘러내렸나 하고 치마를 들추어 보기도 했다. 하기야 그럴 만했다. 무통 링거를 맞고 며칠 후 사망한 노인이 1년 동안에 셋이었다. 그것도 독거노인으로 북적대는 산동네에서만.

알아채면 큰일인데……. 아내를 도와줄 수 없잖아.

곽 선생은 고인의 살림살이를 정리하는 척하면서 자꾸 곁눈질했다. 의사는 뭔가를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따지고 보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의 건강은 오늘내일하는 중환자나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굶주리고 병치레가 잦은 극빈층 노약자 아닌가. 진통제 링거를 맞고서 모처럼 편히 잠들다 보면 다음 날 일어나기 싫을 것이고 그처럼 사나흘 흐르면 허약한 노인들은 금세 자연사한다. 의사는 마음을 정한 듯 사망 판정 칸에 서명날인을 했다.

후유, 다행이네. 곽 선생은 자기도 모르게 입속말하며 하얀 비닐로 포장돼 실려 나가는 시신에게 꾸벅 절했다. 최씨 할머니가 감쪽같이 자살하도록 도와준 사람이 자신이었다. 지난주에 최씨가 다니던 병원에 출장 치료를 요청해 진통제와 영양제 주사를 놓도록 했다. 간호사가 돌아간 뒤 링거액 주입구에, 병든 푸들을 안락사시킨다는 핑계로 동물 병원에서 얻은 근육 이완, 심장마비 약물을 20cc씩 넣었다. 네댓 마리 애완견에 쓰이는 주사제를 모으면 한 사람의 치사량이었다. 최씨가 곤히 잠들자마자 소리 없이 쪽방을 빠져나왔다. 여태껏 세 차례나 같은 일을 치렀지만 한번도 끝까지 머물지 못했다. 오랜 항암제 투약으로 까맣게 말라비틀어진, 종일 멍한 눈길로 천장만 쳐다보는 아내를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행복 장의사님, 그럼 뒤처리를……."

동사무소에서 보낸 장례 지도사가 시신을 만진 장갑을 쓰레기봉투에 던져 넣으며 멋쩍게 웃었다. 귀찮은 일을 떠넘기게 돼 다행이라는 미소였다. 아침에 구청 자원봉사 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최씨 할머니는 무연고로 분류돼 유품을 그대로 두게 되니까 필요하면 짐을 정리하라고 했다. 가족이 없는 노인들은 봉사 단체에서 장례를 치러 주지만 가재도구는 내버려 두었다. 그냥 놔두면 무허가 판자촌에 흉가가 늘어날 것이 뻔해서 곽 선생이 그 험한 일을 도맡아 해왔다. 그 덕분에 산동네 주민들이 붙여 준 애칭이 행복 장의사였다. 곽 선생은 그 별명이 싫지 않았다. 아내는 병상에서 걸핏하면 말하곤 했다. 가장 행복하게 죽는 사람이 인생을 가장 행복하게 산 사람이라고. 곽 선생은 말년을 힘들게 보내는 독거노인들에게 그 마지막 행복을 맛보게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어슬렁대는 유기 동물을 집에 데려와 기르고 그들을 안락사시킨다는 구실로 주사약을 모아 왔다.

낮과 밤이 두세 번은 바뀌었을 법한데……. 기억이 아득해서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탁상시계는 진즉 건전지가 닳았고 휴대폰은 잠들기 전에 꺼 놓았다. 곽 선생은 아랫목에 자벌레처럼 웅크리고 누웠다. 산동네 특유의 서늘한 냉기와 퀴퀴한 곰팡내가 전신을 덮었다.

내가 며칠이나 누워 있었을까?

어제 무엇을 했던가?

떠올려 보아도 몽롱한 느낌뿐이었다. 지루한 일상이 쪽방 귀퉁이에 겹겹이 쌓인 폐휴지처럼 무의미하다. 독거노인들이 가장 무섭게 맞닥뜨리는 것이 시간이다. 그것은 언제나 텅 비어 있다. 그는 이불 속에서 손만 내밀어 물컵을 찾았다. 입술이 바싹 말라 입언저리가 찢어지듯 아팠다. 빈 막걸리 병과 찌그러진 주전자만 댕그랑거렸다. 귀찮아진 그는 이불로 몸을 돌돌 말아 더 깊숙이 숨었다.

곽 선생은 같은 꿈을 반복해 꾸었다. 생각하기도 싫은 악몽이어서 상처 입은 짐승인 양 끙끙댔다. 꿈속에서 그는 네온등으로 휘황한 도심의 거리를 걸었다. 돌연 아스팔트에 구멍이 뻥뻥 뚫리고 건물과 사람들이 빨려 들어갔다. 중학교 교사로 일할 때 수업에서 가르쳤던 싱크홀이었다. 곽 선생은 안타까울 만큼 두 팔을 허우적대며 구멍 사이를 내달렸다. 땅은 꿈에서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송 맺히고 학학 거친 숨을 내뱉었다. 그럴 때 그의 모습은 전기 고문을 당하는 죄수 같았다.

잊고 있었던 허기가 되살아났다. 이불 밖으로 얼굴만 삐죽 내밀어 쪽창 쪽을 보았다. 그 너머는 햇살이 폭포수처럼 부서져 내리는 대낮이었다. 방바닥을 짚고 일어서는데 손바닥에 허연 먼지와 모래 알갱이가 묻어났다. 새카만 러닝셔츠에서 오래 묵은 장 내음이 풀풀 피어났다. 극빈층이 모여 사는 무허가 마을에는 상하수도 시설이 없다. 아침저녁으로 수돗물이 나오는 공공 쉼터에서 물을 길러 먹었다. 그러니 빨래는 한 달에 한두 번이다.

곽 선생은 문을 빼꼼히 열고 밥통이 있는지 살폈다. 요즘은 어쨌든 굶어 죽지는 않는다. 무의탁 노인으로 신고하면 동사무소나 봉사 단체에서 점심 때쯤 도시락을 배달했다. 어떤 날은 쌀과 생필품을 두고 가고 명절에는 기업들이 희사한 제법 큰 선물도 들어왔다. 다행이 대낮이어서 도시락이 온전히 남아 있었다. 저녁까지 그대로 두면 옆방 노인들이 어느새 먹어 치웠다. 곽 선생은 도시락을 끌어당겨 밥을 조금씩 깨물었다. 메마른 입 속에서 쌀이 돌처럼 서걱거렸다.

식사를 마치면 남들같이 폐품 수거에 나서야 했다. 그는 매일 쓰레기장을 뒤져 폐휴지, 빈 병, 깡통을 주워모았다. 운이 좋은 날에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통조림과 간식들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나뒹굴었다. 그것을 인근 음식점에 싸게 팔아 꽤 수입을 올릴 때도 있었다. 그 일도 경쟁이 심해서 비 오는 날에는 비옷까지 걸치고 쓰레기장을 찾아다녔다.

유학을 떠났다가 미국에 눌러앉아 의사, 음대 강사로 일하는 자식들이 보면 기가 막힐 것이다. 아무리 정년퇴직을 했다기로서니 30년 넘게 중학교 교사로 재직한 아버지가 이런 꼴인 줄 꿈이나 꾸겠는가. 다행이 두 아이는 현지에서 영주권을 신청 중이어서 사오 년간 귀국을 못하고 있었다. 애들에게는 일시불로 받은 퇴직금이 남아서 생활비는 충분하다고 거짓말해 안심시켰다. 쥐꼬리만큼 아껴 두었던 그 돈도 지난해에 동생의 사업에 투자했다가 이자는커녕 원금도 못 찾았다. 그러다 보니 이제 수중에 한 푼도 없는 빈털터리 신세였다. 하루라도 폐품 수집을 거르면 그나마 몇 천 원 있던 주머니가 비였다. 사흘 전 비가 내리는 날 억지로 일을 나갔다가 오후 내내 쏟아진 장대비에 몸이 흠뻑 젖었다. 밤이 되자 온몸이 화끈거렸는데 얼음장 같은 방바닥에 누워 이불로 몸을 감싸고 버텼다.

"꿔꿔꿕……."

마당에서 기웃거리던 벼슬이가 훌쩍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 미물이 주인을 알아볼 리 없지만 곽 선생은 내심 반가워 정든 수꿩의 깃을 매만졌다. 새하얀 목 위로 오뚝 솟은 선홍색 볏이 양귀비꽃을 보는 듯했다.

자연사박물관에서 수의사로 일하는 제자가 관상용으로 기르던 꿩을 안락사시킨다고 하여 집에 데려왔다. 나이가 벌써 서른이니 한때 화려했을 법한 등황색 털이 눈에 띄게 가스러졌다. 따지고 보면 35년을 교사로 일하고도 늘그막에 산동네에 사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다. 묘한 동질감이 느껴져 수명이 다한 장끼를 애틋하게 아꼈다.

다 쓰러져 가는 슬래브 집에 쪽방이 여섯 개였다. 각 방은 두어 명이 간신히 발을 뻗고 잘 정도로 비좁았다. 그런 형편에 버려진 애완 동물을 시도 때도 없이 데려오는 곽 선생을 누군들 이해할까. 먹이는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것으로 해결한다손 치더라도 밤낮없이 우짖고 여기저기에 똥을 갈기는 개나 고양이를 대여섯 마리나 보살피는 곽 선생이 정신병자 같았다. 더군다나 데려오는 것마다 병들거나 곧 죽을상이니 단짝인 공 회장마저 이상한 사람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곽 선생은 그것들을 내세워 주사제를 모으고 있었다. 노인들이 편히 자살하려면 진통, 근육 이완, 심장마비의 세 가지 약품이 필요했다. 그중 하나라도 빠지면 마지막 죽음마저 고통으로 끝난다. 진통제 없이 심장마비 약물만 주사하면 극심한 통증이나 경련이 수반된다. 용량도 중요하다. 진통과 근육 이완 약물은 각각 20cc쯤 있어야 깊이 잠든 상태에서 죽음에 이른다. 한데 개나 고양이를 안락사시킬 때는 5cc 미만이 투여된다. 곽 선생은 노인의 자살을 도울 때마다 길거리에서 나뒹구는 네댓 마리의 동물을 끌고 왔다. 그런 다음 수의사로 일하는 제자나 지인을 찾아다니며 기르던 애완동물을 집에서 편히 안락사시키고 싶다고 둘러대고 약물을 타오곤 했었다. 제자들은 그 정도 용량은 사람의 치사량으로 모자란다는 생각에 약물을 건네주곤 했다. 주사제의 외부 유출이 금지된 인근의 동물 병원에서는 의사들이 치료하는 틈을 타 한두 세트를 슬쩍 챙긴 때도 있었다.

벼슬이도 그런 사연으로 한 식구가 된 애완조였다. 진즉 안락사했을 것인데 약물을 다른 노인이 사용한 덕분에 여태 살아 있는, 운 좋은 놈이었다. 벼슬이는 긴 꼬리를 날렵하게 움직이며 쉴 새 없이 쪽방을 헤집고 다녔다. 누구나 구구, 하면 달려가 얻어 먹는 것이 습관이 돼 고되게 먹이를 찾으러 나서지 않았다. 인간의 품이 들녘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본능적으로 느끼는 모양이었다.

꿩은 왜 멀리 날지 못할까? 곽 선생은 예전의 과학 시간에 아이들에게 묻고 답했다. 조류는 1억 5천 년 전까지는 파충류였다. 천적에 쫓긴 도마뱀들은 수천 년간 앞다리를 퍼덕여 나뭇가지에 날아올랐고 또다시 수천 년간 허공으로 솟구쳐 날개를 얻었다. 한데 꿩의 선조는 다른 조류들이 고되게 비상할 때 땅에서 편히 어정대는 길을 택했을 것이다. 그처럼 안주한 탓에 하늘로 날 수도 땅에서 도망칠 수도 없는 무력한 신세가 됐다. 곽 선생은 가끔 벼슬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라는 서양 속담이 있지. 가끔은 이놈이 내 피붙이같이 느껴진단 말이야."

그러고서 자조적인 미소를 흘리며 젊은 시절의 자신을 떠올렸다.

"세상은 노력한 만큼 보답한단다."

그 또한 교사였던 선친은 늘 그처럼 타일렀다. 그 소신이 몸에 밴 곽 선생은 현실을 믿고 따랐다. 우등생으로 고등학교를 나와서 고만고만한 대학과 직장을 택했다. 고만고만한 여자와 결혼해서 고만고만한 평수의 아파트에 살았다. 평생을 교직에 바쳐서 이름도 재산도 고만고만하게 얻었다. 심지어 노후도 고만고만하게 지내다 죽고 싶었다. 그에게 고만고만은 익숙하고, 다스하고, 편안한 말이었다. 이 땅은 그와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세상 같았고 덕분에 아내가 맞벌이하기 전까지는 고민거리가 별로 없었다.

"피아노 학원이라도 차려야 할 듯해요."

아내가 뜬금없는 말을 꺼낸 것은 큰딸이 미국 의대 졸업반이고 음악을 전공한 둘째가 뉴욕에서 대학원에 진학할 무렵이었다. 학비만 해도 매월 사오백 만 원이니 제법 되는 급여가 애들의 유학 경비에도 못 미쳤다. 말릴 사이도 없이 아내는 인근 빌딩에 학원을 차렸고 그렇게 해서 몇 년을 근근이 버텼다.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던가. 씀씀이도 한꺼번에 닥치는 것을 그때 알았다. 의사인 딸아이는 결혼식 비용만 1억 원이 넘었다. 아트센터라 불리는 예식장은 예식비가 4천만 원이고 꽃 장식만 2천만 원을 요구했다. 놀란 곽 선생이 비용을 좀 줄이자고 살살 달래자 딸이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아빠, 이 정도는 우리 세계에서는 최소 비용이에요. 결혼식에만 이삼억 쓰는 애들도 많다구요."

기죽지 마라고 애들이 바라는 대로 해 주었던 아내는 자다가 일어나 남몰래 한숨지었다. 따지고 보면 딸의 욕심도 아니다. 모든 것을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살려고 했던 우리 부부 탓이 아닐까? 곽 선생은 자책하며 만사를 담담히 받아들였다. 아내는 무던히도 세상에 매달려 살았다. 비상을 포기한 꿩처럼 땅에서 편안히 먹이를 얻는 길을 택했다. 그때도 세상의 질서에 굴복해 유산으로 받은 시골 땅까지 팔아 딸이 차리는 병원의 보증금으로 썼다. 지출해야 할 목돈은 자식들의 성공과 비례했다. 장학금으로 박사 과정을 마치겠다던 둘째는 첫 해가 지나자 지원이 끊겨 해마다 8천만 원씩 송금했고 그렇게 육칠 년이 지나자 남은 것은 살고 있던 아파트뿐이었다. 그 마지막 재산은 아내를 위해 처분해야 했다.

"악성 림프종인데 흔히 혈액암으로 불립니다. 말기인데다 이 병은 비용이 만만찮은데……."

언젠가부터 아내가 코피를 수시로 흘리고 픽픽 쓰러져 병원을 세 곳이나 다니며 확인했더니 결과는 똑같았다. 그 병은 중환자도 피만 계속 바꾸어 주면 몇 년을 버틴다고 했다. 그런데 골수이식, 식단, 간병비, 항암제 주사 등등 치료비가 연간 1억 원을 넘어서 어지간한 집은 빈털터리가 되는 중병이다. 전문의는 훌쩍이는 아내를 측은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길이 갈 곳이 없어 지하도에서 먹고 자는 노숙자를 보는 듯했다.

그 후 2년은 말로 다할 수 없는 혼란기였다. 거의 매일 수업이 끝나면 장기 입원실에 들러 아내를 돌보고, 간병인을 구하고, 아내 대신 집안일을 돌보며 보냈다. 일주일이 하루 마냥 훌쩍 지나갔다. 정년을 3년이나 앞서 학교를 떠난 것은 목돈이 필요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 병에 걸린 환자 중 상당수는 돈이 없어 치료를 중단해 사망한다는 말이 가슴을 후볐다. 아내가 몇 년을 버티려면 이삼억 원이 필요했다. 장고 끝에 보상금이 꽤 되는 명예 퇴직을 택했다.

항암 치료를 시작한 지 2년쯤 지나자 아내는 걸핏하면 스르르 옆으로 고꾸라졌고 이마가 땀에 젖어 번질거렸다. 격리된 공간에서 지내고, 마스크를 써야 하고, 머리가 빠졌으니 지쳤을 법했다. 날이 갈수록 넋두리가 늘었고 자포자기한 듯한 말을 서슴지 않았다.

"우린 참 순진했죠. 세상에 맞추어 살면 끝까지 행복할 거라고 믿었잖아요. 웃으며 생을 마감할 줄 알았는데……. 누군가 그랬지, 사람은 죽을 때 모습이 가장 맑고 행복하다고. 나도 그럴까?"

"물론이지. 병만 나으면."

"이 병을 이긴 사람이 거의 없대요. 일시적으로 나아져도 곧 재발해서 지옥 같은 연명 치료 기간만 늘어날 뿐이래. 결론이 빤한데 당신을 고생시킬 필요가 있을까? 나 자신도 매일 병과 싸우기가 너무 힘들고. 당신이 내 자리에 누워 있다면 무슨 생각이 들겠어. 어차피 죽을 몸을 치료하려고 애쓰는 꼴이 우스꽝스럽지 않을까? 호호호."

아내의 웃음은 우는 것보다 애처롭게 들렸다. 말투에서 절망적인 무상감이 느껴졌다. 아내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종일 몽롱한 눈길로 창밖을 쳐다보거나 곤한 잠에 빠져드는 날이 늘었다. 가슴팍에서 새하얀 늑골이 드러났고 살이 메말라 거죽과 붙어 버린 미라처럼 보였다. 그래도 곽 선생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오로지 의사의 처방에 따라 병원을 오가고 임종의 날을 기다리는 수밖에. 곽 선생은 각혈하듯 헛구역질을 해대는 아내가 안쓰러워 남몰래 굵은 눈물방울을 훔치곤 했다. 아내가 바라는 안락사 같은 처방이 있다면 기꺼이 그것을 택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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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화가 남학호
그로부터 사오 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도심의 반전세 지하 방에 이어서 변두리의 월세 단칸방을 전전하다가 2년 전쯤 산동네로 흘러들었다. 길에서 사귄 공 회장이 독거노인들이 밀집된 그 마을이 폐품을 수거해 파는데 유리하다고 꼬드겼다.

덕분에 하루에 칠팔천 원이라도 짭짭한 수입을 얻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믿기지 않지만 일흔 살이 다 되어 가는 공 회장도 한때는 3백 명 남짓 직원이 일하는 두세 개 중소기업을 거느렸단다. 어느 대기업에 자동차 부품을 납품했는데 모회사가 망하면서 수백억 원의 빛을 떠안아 십여 년이나 도망을 다녔다고 했다.

이제 공 회장의 유일한 희망은 스위스로 자살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그의 방에는 수천 명의 외국인들을 안락사시켜 준 스위스 병원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마지막에는 그곳에 가서 편안히 죽고 싶어서 폐휴지를 모은다고 너스레를 떨고 다녔다. 어쩌다 술에 취하면 자포자기한 말투로 구시렁댔다.

"사람은 누구나 늙어서 죽게 되잖아. 한데 왜 행복하게 죽는 방법에는 관심이 없을까?"

폐품 수거를 나가려고 주섬주섬 옷을 챙기던 곽 선생은 방 입구에서 기웃거리는 벼슬이에게 모이를 던져 주었다. 그러면서 과장된 몸짓으로 새라도 되는 양 두 팔을 파닥거렸다.

"자, 이렇게 날아 봐. 이렇게."

그 억지스러운 광경에 옆방에서 누군가 킥킥 웃었다. 박물관에서 버려진 꿩이나 도심에서 쫓겨난 자기나 무기력하고 절망적이기는 매일반이었다. 자신이 벼슬이를 닮은 거대한 꿩같이 느껴질 때마다 안타까운 동질감을 느꼈다. 녀석도 그것을 아는지 주인을 못 알아보는 미물인데도 배가 고프면 으레 곽 선생의 방으로 뛰어들었다. 변함 없이 방을 찾아오는 벼슬이가 부모가 판자촌에서 지내는 줄도 모르는 자식들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는 때도 있었다.

곽 선생은 바닥에 긴 판자를 덧대 길이를 두 배로 늘린 손수레를 끌고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갔다. 내리막길은 온통 웅덩이투성이여서 자꾸 뒤뚱거렸다. 길갓집에서 버리거나 흘러나온 허드렛물과 오물이 고인 곳도 많았다. 노르스름한 기름이 둥둥 뜬 곳도 있고 타르 같은 새까만 액체가 번쩍이는 곳도 있었다.

요령껏 피해 가지만 넓적한 웅덩이는 어쩔 수 없이 발을 디뎌야 했다. 신발이 썩은 물에 젖어 악취를 풍길 때도 많았다. 얼마 전부터 길 한가운데에 큰 구덩이가 생겼고 누군가 그 위에 구멍이 뚫린 철판을 놓아 주민들이 지나다녔다. 어떤 노인은 수도관이 터졌다고 하고 어떤 노인은 인근의 축대가 무너지면서 땅이 함몰된 것이라고 했다. 그 구덩이가 나타난 뒤부터 동네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다. 그것은 징조에 불과하고 머지않아 마을 한쪽이 통째로 가라앉을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곽 선생은 그 길을 오르내릴 때마다 발이 푹푹 꺼지는 착각에 몸이 비틀거렸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 악악대는 날은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꿈을 꿀 때였다.

길가에는 방 한두 칸짜리 판잣집들이 촘촘히 늘어서 있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대문은 음란 광고로 덮였고 도둑고양이가 파헤친 쓰레기 봉지에 똥파리가 새카맣게 앉았다. 슬레이트 지붕에는 퍼런 이끼가 끼였고 쩍쩍 금이 간 담벼락 사이로 집 안이 들여다보였다. 어떤 집은 부러 현란한 꽃무늬로 창문을 가렸고 어떤 집은 무덤처럼 음습하고 괴괴했다. 살림살이가 버젓한데 빈 집도 있고 폐가 같은데 노숙자들이 숨어 사는 집도 있었다.

곽 선생은 비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구불구불한 단칸집 사이를 헤맸다. 그중 대문에 '상중'이라고 한글로 조잡하게 휘갈겨 쓴 집 앞에 멈추었다. 그곳에 살았던 노인이 누군지는 몰랐다. 곽 선생도 어제 구청 봉사 센터에서 연락을 받고 무연고 노인의 유품을 정리하러 왔을 뿐이었다. 산동네에서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고립돼 살아간다. 이유야 어쨌든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두렵거나 부끄러울 것이다. 그 집 주인도 한 달에 두서너 차례 먹거리를 살 때만 바깥에 나오고 이웃과 인사도 안하고 지냈다고 들었다. 어디서 왔고 무엇을 하던 노인인지 아무로 몰랐다. 독거노인의 유족들은 거개가 시신을 옮기고 나자마자 통장이나 보험증권 같은 것만 남기고 가재도구는 얼른 소각장으로 보냈다. 망자의 흔적을 하루라도 빨리 지우고 싶어했다.

온갖 광고지가 판치는 대문을 열자 주인 잃은 신발들이 난잡하게 나뒹굴고 있었다. 누군가 방문을 활짝 열어 두었다. 한여름은 지났지만 시신이 일주일이나 썩었다고 했으니 냄새가 진동했으리라. 방안에는 누군가가 다녀간 듯 이불과 옷가지들이 어지러이 널렸다. 연고자가 없는 노인은 운구차가 떠나자마자 이웃들이 들이닥친다. 남은 것은 한복판에 우두커니 놓여 있는 일인용 소파와 브라운관이 길쭉한 구식 텔레비전뿐이었다. 검측한 화면에 자신의 그림자가 어룽대자 곽 선생은 좀 오싹했다. 노인의 영혼이 그 속에 아직 남아서 말년이 억울하다고 악쓰는 것 같았다. 매일 떨면서 죽는 순간을 기다리는 노인들에게 시간과 일상은 무의미하다. 달력은 지난달을 가리키고 있고 마지막 식사가 고대로 남은 밥상에는 쉬파리와 바퀴벌레들이 말라붙었다. 노인은 철저히 외부와 격리된 삶을 보낸 듯했다.

곽 선생은 창문을 가린 두 겹의 두꺼운 커튼을 걷었다. 외쪽 유리창에 햇살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덕분에 누런 벽에 도배를 하다시피 걸어 둔 상장들이 희부옇게 빛났다. 신인 배우상, 방송국 연예대상, 한국 연기자협회 회장상, 해외 영화제 우수상 등등. 과거에 배우였던 듯 연기에 관련된 상이 수십 개였다. 이름은 낯선데 한때 꽤나 알려진 연예인인 듯싶었다.

곽 선생은 방 귀퉁이에서 나뒹구는 몇 권의 사진첩을 집어 들었다. 그것을 펼친 순간, 어, 이 분이! 하고 놀라 소리쳤다. 허 모씨 하면 그가 대학 시절에 이름깨나 날렸던 유명 배우였다. 예명을 써서 상장에 적힌 실명을 몰라 보았다. 노래도 수준급이어서 당시 여학생들은 그 배우만 나타나면 발광을 하다시피 했다. 어느 공연장에서는 흥분한 여성들이 속옷을 벗어 던져서 세간의 화제에 오를 만큼 인기 스타였다.

한데 그의 노년이 이토록 초라하다니…….

곽 선생은 가무잡잡한 가죽 소파를 멍청히 바라보았다. 그 노인은 거기에 앉아서 벽에 걸린 상장을 쳐다보며 임종했으리라.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오래전에 그가 여러 지인의 꼬임에 빠져 투자했다가 전 재산을 날렸고, 그로 인해 사기죄로 몇 년간 복역하고, 그 동안에 부인이 떠나고 등등이다. 그 후에 스크린에서 영영 사라졌는데 어찌어찌하다가 산동네까지 흘러들었던 모양이었다.

곽 선생은 누렇게 색이 바랜 노트를 펼쳤다. 곳곳에 누군가를 원망하는 말로 가득했다. 거개가 자신을 배신한 일가친척, 친구, 세상에 대한 넋두리였다. 곽 선생은 어느 페이지에 멈추어서 한참 들여다 보았다. 거기에 노인은 이렇게 썼다.

행복하게 삶을 마칠 수 있다면 지난 50년의 행복과 맞바꾸고 싶다.

노인은 스스로 죽으려고 무던히 애쓴 듯싶었다. 누렇게 녹아내린 장판에는 타다 만 번개탄이 개떡처럼 엉겨 붙어 있었다. 방바닥에는 녹슨 면도날과 커터칼이 나뒹굴었고 목매려고 했는지 천장에서 두어 개 긴 줄이 대롱거렸다. 모질게 강물에 뛰어들거나 독극물을 마시는 사람도 있지만 자살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목을 매면 혈관이 수축돼 똥오줌을 지리고 급기야 정액을 내쏠 정도로 몸부림친다.

독약을 마신 사람이 울부짖는 소리는 누구나 귀를 막을 만큼 참혹하다. 그래서 숱한 사람들이 멋모르고 시도하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포기하거나 실패한다. 심신이 허약해진 노약자는 더욱 그렇다. 그들은 고통스런 방법보다는 감미로운 잠결에 생을 끝내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노인들이 안락사를 꿈꾼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안락사를 반대하는 성직자나 이론가들이 떠드는, 인권이니 존엄이니 하는 말들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런 방송을 볼 때마다 공 회장은 출연자를 손가락질하며 "메멘토 모리(죽을 날을 기억하라)!" 하고 고함질렀다.

곽 선생은 노인이 애용했던 안락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날아갈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거대한 꿩이 웅크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노인이 그처럼 앉아서 죽음을 기다렸을 시간들을 한참 생각했다. 얼굴이 꿩 탈로 바뀌고 몸에 깃털이 돋아나는 것 같아 바르르 떨었다.

곽 선생은 손수레를 끌고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데 어떤 생각에 몰입한 탓에 힘든 줄 몰랐다. 좀 전부터 무언가 울대를 타고 오르는 것이 있었다. 상갓집에서 너무 지체했는지 산동네는 저녁 어스름에 잠겼다.

곽 선생은 넋 나간 사람같이 무지갯빛으로 어룽대는 저녁노을을 응시했다. 그 순간 세상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어둠에 묻힌 산꼭대기에는 애오라지 석양과, 아내와, 자신이 있을 뿐이었다.

"여보, 빨리……."

아내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곽 선생은 누군가를 찾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초상집으로 떠나기 전에 아내에게 주사제를 놓아주었다. 7년을 불치병에 시달리고 마지막 2년을 식물인간인 양 비몽사몽간에 보낸 아내에게 더 이상의 삶은 무의미해 보였다. 아내는 지난주부터 안락사 주사를 맞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서운해하지도 않는 듯한, 담박한 음성이었다. 얼굴은 어느 때보다 평온해 보였고 말투에서는 누구도 가로막지 못할 열망이 엿보였다. 아이들에게 보낼 편지를 불러 줄 때도 슬픈 기색은 없었다. 자식을 원망하기는커녕 되레 남편을 달랬다.

"애들도 언젠가 우리와 같은 시간에 맞닥뜨리게 되요. 그 애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종말을 맞도록 빌어 줍시다."

버려진 동물을 이용해 안락사 주사제를 모은 것도 기실 아내의 생각이었다. 친구의 동물 병원에서 종종 일을 돌보아 주었던 아내는 수의사들이 치매나 불치병에 걸린 애완 동물을 안락사시키는 것을 자주 보았다. 그때 곁눈질로 배운 지식을 곽 선생에게 알려 주어서 지난 1년간 세 명의 노인들이 스스로 죽음을 맞도록 도와줄 수 있었다. 아내에게도 아침에 똑같은 방법을 썼다.

사흘 전에 평소 치료를 받던 노인 병원에 전화해서 아내의 통증이 누그러지도록 진통제와 영양제 주사를 부탁했다. 간호사가 다녀간 뒤 주사기를 빼고 링거를 이틀간 그대로 두었다. 주사액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될 경우 시신을 부검하게 되고 그러면 안락사가 드러날 것을 우려한 꾀였다. 산동네에서는 죽은 지 몇 달이 지나서 발견되는 독거노인들도 흔하다. 임종하고 며칠 지나서 병원에 실려 가면 의사들도 당연히 죽을 나이가 됐다는 듯 형식적인 검안을 거쳐 즉각 사망 판정이 내려진다. 그런 절차를 염두에 두고 오늘 오전에야 링거액의 조리개를 열고 다시 주사를 놓았다. 항암 치료로 온통 피멍투성이인 아내 팔에 바늘을 꽂으며 곽 선생은 절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남편을 위로하려고 애써 웃는 아내 얼굴도 눈물과 땀방울로 뒤범벅이었다.

진통과 근육 이완 약물을 각각 20cc씩 링거 주입구에 투여하자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 눈을 감았다. 지긋지긋한 병고를 벗어난다는 해방감 때문인지 입가에 희미한 미소까지 감돌았다. 신혼 초에 품에 안겨 편히 잠들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20분쯤 지나서 심장마비 약물을 넣어야 했을 때는 일순간 망설였다. 울음을 참지 못하고 양어깨가 요동쳤다. 그대로 두면 아내는 내일 깨어날 것이다. 이것이 진정 아내가 바랐던, 인생의 마지막 장면일까. 주사를 놓을까 말까, 놓을까 말까 하고 머뭇거렸다. 그때 잠든 줄 알았던 아내는 가느다랗게 눈을 떴다. 그리고 말했다.

"여보, 빨리……."

그것은 아주 간절한 말투였다. 자신의 선택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듯한. 그 순간 곽 선생은 하나의 생각만 머리에 떠올리려 애썼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죽음을 맞고 싶다던, 아내의 말. 곽 선생은 단숨에 약물을 링거 주입구에 투여했다.

툭…….툭…….

조리개에서 느릿느릿 떨어지는 약물이 식어 가는 아내의 심장 박동처럼 들렸다. 곽 선생은 그 소리를 똑똑히 기억해 두려고 가슴에 귀를 바싹 가져다 댔다. 어느 순간 양손을 허리 아래로 넣어 안듯이 슬쩍 들었다. 거죽만 남은 몸은 허공을 나는 깃털처럼 가뿐했다. 그 자세 그대로, 시공이 멈추어 버린 세계에 묻힌 미라같이 움쩍도 하지 않았다.

곽 선생은 산꼭대기 바위에 오도카니 앉아 메마른 숲처럼 앙상한 판자촌을 응시했다. 산자락에 층층이 늘어선 슬레이트 집들은 언제라도 와르르 무너질 것같이 위태위태했다. 그중 어딘가에 아내는 잠들어 있을 것이다.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가 아내 팔에서 링거를 떼어 내 버려야 한다. 내일 오후쯤 뒤늦게 아내의 사망을 알아챈 것으로 하고 119에 신고해 구급차를 부를 것이다.

허공에서 산새들이 갈마들며 우짖었다. 날개를 퍼덕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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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진영 경북 구미
여기저기 날아다녔다. 아내는 지금 어떤 표정일까. 상갓집 노인같이 섬뜩하게 일그러졌을까. 아니야, 아니야. 곽 선생은 거세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갓난애처럼 포근히 잠든 아내 얼굴을 그리려 애썼다.

곽 선생은 손수레를 끌고 언덕길을 되돌아 내려갔다. 골목 모퉁이에서 어슬렁대는 유기동물을 찾으러 아랫동네로 향했다. 구멍가게에서 노닥거리던 노인들이 일제히 반갑게 손을 내저었다. 그 손짓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임종을 가져다주는 장의사를 부르는 소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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