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정치는 정명·명료하고 극단적·자극적 표현 삼가야 부드러운 말·추진력 필요

김정모 서울취재본부장

12일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구상과 기자회견에 통쾌한 메시지가 없다고 한다. '피로사회', 기력이 소진하고 화병이 분노로 표출되곤 하는 이 나라 국민이기에 시원한 내용을 기대했다. 지방분권·지방자치 등 일부 사안은 구체적 해법이 희미했다. 기업인 가석방에 대한 견해를 묻자 법무부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들리는 답변 요지는 특별사면 불가라는 대선공약을 훼손했다. 지금 수만 명의 재소자 중에 유독 돈깨나 있는 사람들만 가석방으로 풀려나는 현실에 분노의 아우성이 오래인데. 그래서 '경제부흥', '평화통일'의 소망을 말하는 대목에서 묻어나온 애국심은 주목하지 않는다.

기자회견의 수사학적 형식론이나 문장론도 그렇다. 답변은 절반 정도로 짧았으면 낫겠다는 생각이다. 답변이 길면 듣는 이가 엉뚱한 단어를 초점으로 잡는다. 글자 수가 8천568자로 원고지 약 66장의 25분짜리 연설인 신년구상 발언도 좀 길다.

최근 제1야당 당권주자에 나선 이의 출마의 변 중 한 문장만 보자. "지금 당은 계파의 보를 쌓고 연령의 댐을 막고 편견의 벽에 가로막혀, 관성적 연패의 사슬을 끊지 못한 무기력한 리더십의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한다" 어느 국민이 이런 말에 솔깃해할까. 민심과 동떨어지게 쓰는 허장성쇠(虛張聲勢)다. 국민들은 단순하다. 박 대통령의 2014년 정치는 연초 '통일대박'으로 시작해서 연말 '찌라시'로 끝난 것으로 기억된다. 박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에서도 가장 아쉬운 문제는 단어선택 용어의 문제다.

박 대통령의 답변이다 "…비서실장께서는 정말 드물게 보는 사심이 없는 분이고, …옆에서 도와주셨습니다. …최선을 다하겠다 하고 오셨기 때문에 …이미 여러 차례 사의 표명도 하셨습니다…." 문장의 주체가 높여야 할 대상이지만 듣는 상대방이 더 높을 때는 높이지 않는 게 우리말의 압존법(壓尊法)이다. 민주주의 시대 지존(至尊)은 국민이다. 영의정이 왕에게 "이조판서께서는 이렇게 하셨습니다"한다면. 아버지가 할아버지께 "손자께서 진지 드셨습니다"하는 모양이다.

박 대통령의 "…정치권과는 여야 지도자 이런 분들을 청와대에 모셔서…." 라는 문장은 흔히 쓰고 있지만 '정치권'이란 정체불명의 단어가 옥의 티다. 여권 야권 정당권은 있어도 정치권 경제권 문화권은 없다. 정치권이 아니라 '국회' '정당' '정계' '정가'라고 해야 옳다. 국회의원들이 상대를 비판할 때 하는 '정치적' '정치공세' '정치논리'도 '정략적' '당파공세' '당파(정파)논리'란 뜻의 오용이다. 또 "…규제 단두대에 올려서 과감하게 풀자, 그래서 이 규제 단두대 과제로 올라온 건입니다…."라는 것은 규제혁파 의지를 피력한 것이지만 섬뜩한 단두대로 결과가 안나오면 다음은 뭐라고 강조 할 건가.

빨간색 재킷을 입고 연단에 선 박 대통령은 외신기자에게 유니크하다는 평을 들었다. 엷은 미소, 섬섬옥수는 청렴, 금욕, 공공성의 진심이 담겨있다. 거친 표현을 과감하게 쓰는 연단언어는 그의 본질과 불일치하다. 품위에 거슬리는 표현이나 모양은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언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에 따라 사람을 판단한다. 오리온은 초코파이를 중국에 팔 때 브랜드명을 '동양'으로 하다가 '好麗友(하오리여우)'로 바꾼 뒤 케이크류 시장에 대박을 터뜨렸다. 실체는 같지만 표현이 다를 뿐.

괴벨스류의 프로파간다(Propaganda)는 아니더라도 현대정치는 커뮤니케이션이 정명(正名)하고 명료해야 한다.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은 더더욱 삼가야 한다. 말은 부드럽고 추진력이 세야한다. 언어는 무형적인 가치까지 담아낸다. 아니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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