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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대담 (5) -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동반성장 통한 상생, 한국경제 위기 극복 유일한 길"

김정모 서울취재본부장 kjm@kyongbuk.com 등록일 2015년01월26일 21시28분  

정운찬. 경제학의 대가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석학으로서 서울대 총장과 국무총리 등 굵직한 중책을 수행하면서 한국사회의 변화를 시도했었다.

서울대 명예교수 겸 (사)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으로 정중동(靜中動)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를 21일 오후 서울 관악로 연구소를 찾아 경제위기설이 나오는 한국 경제의 나아갈 길에 대해 들어봤다.

-요즘 근황은.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사진 김기훈 프리랜서

“동반성장문화의 조성과 확산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매달 포럼을 열어 여러 분야에서의 동반성장 즉 세대간, 남북한간, 지역간, 빈부간 동반성장 등에 관해 토론을 한다. 벌써 20번 정도 했다. 연구소차원에서 올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동반성장에 대한 포럼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 1년에 40여번 전국을 돌아다니며 동반성장 특강을 한다. 그리고 책, 자료집도 발간한다. 교수 때나 총장, 총리 때 못지 않게 바쁘게 지낸다.”

-한국 경제 위기설이 나오는데 우리경제 정말 위기인가.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복합위기에 처했다. 1980년대 연 8.6%, 1990년대 6.7%였던 GDP 성장률이 2000년대 들어서는 4.4%로 하락하더니 2010년대에는 급기야 2~3%대까지 하락했다. 또한 소득분배가 점점 악화돼 지니계수가 1997년 외환위기 직전 0.27에서 현재 0.35를 넘어섰다. 삼성, 현대, LG, SK 등 4대 그룹이 1년에 올리는 매출액이 이제는 GDP 대비 60%에 육박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아졌다. 경제적 힘이 한 쪽으로 쏠리면서 경제 전체의 활력이 떨어졌다. 한때 한국을 상징하던 ‘다이내믹 코리아’는 이제 아득한 옛날의 노래처럼 느껴진다. 복합위기를 극복 못하면 사회 불안이 올까 두렵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이 열풍이다. 양극화라는 건 세계적인 현상 같은데 한국과 비슷한 중진국들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인가.

“피케티 자신이 한국의 양극화는 미국처럼 심하지는 않지만 유럽이나 일본 그리고 다른 많은 아시아 국가보다 심각하다고 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나름 노력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한편으로는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투자를 촉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득주도 성장정책으로 개인소비가 늘어나기를 기대하였다. 그러나 성과가 없다. 왜냐하면 규제는 투자의 주요 걸림돌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배당소득, 임대소득, 특히 근로소득 등 개인소득은 증가를 유도하기 힘들 뿐 아니라 소득이 늘더라도 미래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소비가 늘어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은 단순히 저성장의 늪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양극화 완화에는 아예 관심도 없어 보인다.”

-기치를 내 건 ‘동반성장’이란 무엇인가.

“동반성장이 만병통치약은 아닐지 몰라도 한국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동반성장은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누어 다 같이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있는 사람들로부터 빼앗아 없는 이들한테 나누어주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경제 전체의 파이를 키우면서 분배구조도 고치자는 것이다.”

-동반성장의 원리를 설명한다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기계적인 완전 평등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모두를 똑같게 만들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한 분야의 성장 효과가 그 분야에만 고이지 않고 다른 분야로 확산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경제는 순환이다. 한 경제를 구성하는 각 부문이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서 선순환 하도록 하는 것이 동반성장의 요체이다.

-동반성장이 자본주의에 위배된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반론도 있다.

‘그건 자본주의를 잘못 배운 결과이다. 이익추구를 위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상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익추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도 좋다는 것은 탐욕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참 모습이 아니다.”

-대통령중심제에서 한계가 있다지만 국무총리시절 노력한 동반성장 정책의 결실이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대통령)정치지도자들과 대기업 총수들의 철학이 빈곤하고 의지가 약하고 현실감각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총리시절 추진한 것 중에 지금 봐도 잘했다고 자평하는 것은.

“세종시 문제를 공론화하여, 비록 국회 통과에는 실패했으나, 개선안을 내놓았다. 대입과 관련된 3불 정책(본고사 금지, 고교등급제 금지, 기여입학 금지)을 3화정책(대학자율화, 고교다양화, 학력요건완화)으로 바꾸는 기초를 마련했다. 그래서 고등학교만 졸업하고도 취업이 가능한 경우가 많아졌다. 또한 국가의 품격을 많이 높였다고 생각한다.”

-전 정부에서 국무총리로서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했는데 수정안이 지금도 옳다고 생각하나?

“아직도 옳다고 생각한다. 지금 세종시 공무원들은, 1급은 1주일에 하루만 세종시에 머문다. 나머지 날들은 서울 간다. 2급은 이틀, 3급은 사흘, 4급은 나흘, 5급만 닷새일 정도다. 따라서 주요 의사결정권자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차분히 모여서 의사결정을 못한다. 원점으로 돌리든지 아니면 국회와 청와대가 세종시로 가야 한다.”

- 현재 ‘트리클다운효과(낙수효과)’, 즉 성장 분배의 선순환가설 신봉자가 주류다. 미국도 부시대통령(1989~92년)시절까지 실시했다가 클린턴대통령 때인 93년 폐지한 것이 트리클다운효과 정책이 아닌가.

“과거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는 불법 편법도 어느정도 눈감아주며 선성장·후분배 성장 전략을 추구하며 낙수효과를 노렸다. 그리고 어느정도 성공했다. 그러나 이 전략을 무리하게 추진하다 그 고리가 끊겼다. 이제는 불법 · 편법을 근절하고 공정한 경쟁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시장경제 원리의 파괴로 보는 우파의 부정적 시각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불법과 편법, 그리고 경제력의 남용이야말로 시장경제를 파괴하는 요소이다. 만인이 법 앞에서 평등한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모든 국민에게 균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공정한 경쟁질서를 창출하는 것이 시장을 바로 세우고 동반성장을 이끌어내는 길이다.”

-동반성장을 위한 정책적 과제는 무엇인가.

“우선, 초과이익공유를 실행해야 한다. 대기업이 목표한 것보다 높은 이익을 올리면 그것의 일부를 협력중소기업에 돌려 중소기업이 기술개발, 해외진출, 그리고 고용안정을 꾀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둘째,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보호하고 자생력을 키워주기 위해 대기업들의 신규 참여 또는 확대를 금지하는 업종을 선정할 필요가 있다. 셋째, 정부가 조달청을 통해 물자를 조달할 때 일정부분 이상을 중소기업에 직접 발주하도록 하는 등의 노력이 당장 필요하다. 이러한 방안들은 대기업으로 흘러갈 돈이 중소기업에 합리적으로 흘러들어가도록 유도하는 조치들이다. 이러한 정책과 함께 모든 경제거래를 공정하게 하도록 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거래에서 구두주문 대신 서면주문을, 어음결제 대신 현금결제를 하게해야 한다. 결국 공정거래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흐름과 관련, 바꾸어야할 산업정책을 구체적으로 든다면.

“중소기업정책이다. 중소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람이다. 좋은 학생들을 중소기업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학자금 융자에 혜택을 준다거나 군복무에 혜택을 줄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중소기업 종사자가 대기업 종사자의 월급에 비해 일정 퍼센트 이상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중소기업의 해외진출을 위해 국가기관, 예를 들면 KOTRA가 대학, 중소기업 등과 협력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R&D 자금 배분을 대기업 위주에서 중소기업 위주로 바꾸어야 한다.”

-역대정부가 가시적 효과를 볼 수 있는 경기활성화에 치중하고 정작해야할 경제구조개혁은 변죽만 올리다가 흐지부지됐는데 왜 이런가.

“대통령의 철학, 의지, 그리고 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이를테면 고 노무현 대통령은 재벌개혁을 제대로 한 최초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으나 중소기업고유업종제도를 없앴다. 신자유주의자들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아이로니칼한 일이다. 그래서 내가 동반성장위원회 시절 고유업종을 부활시킬 생각으로 적합업종을 지정했다.”

- 서울대 총장 시절 지역 균형 선발이라든지 삼불 정책 철폐 등 파격적인 제도를 입안추진 했다. 저서(‘가슴으로 승부하라’)에서 강조한 창의성이란.

“한국경제가 잘 되자면 장기적으로는 교육혁신을 통해 국민 전체의 창의성을 제고해야 한다. 그러자면 국민들이 독서, 사람 만남, 여행을 통해 호기심을 기르고 그것을 바탕으로 질문을 많이 해서 사물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을 배양케 해야 한다.”

- 2015년, 우리나라 한국호의 방향성을 제시한다면….

“동반성장은 21세기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Zeitgeist)이다.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서민경제가 파탄 나고, 경제 전체가 붕괴되어 사회를 유지하기 힘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에 성공하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한국경제가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다. 나아가 동반성장은 기업과 경제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철학이자 새로운 사회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근본 가치이다.”

-저서 ‘야구예찬’에서 “야구를 통해 인생을 배운다”고 했다. 인생을 야구에 비교를 한다면.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지만 야구는 9회말 투 아웃 투 스트라이크 스리볼까지도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은가?”

-다음 대선도 아무래도 경제이슈가 가장 클 것 같다. 여야정당에서 콜을 하지 않을까 궁금하다. 앞으로 하고 싶은 거나 계획은.

“무엇이 되는 것보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동반성장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정운찬 이사장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맹자가 말한 ‘항산항심론(恒産恒心論)’을 강조했다. “백성들이 의ㆍ식ㆍ주가 넉넉할 때 비로소 ‘변하지 않는 도덕심’이 저절로 함양된다. 우리 사회가 양극화를 완화하고 성장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을 때 국민 모두가 남을 배려하고, 서로 관용하는 훌륭한 시민으로 성숙할 수 있을 것이다.”

정 이사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명성이 높던 시절, 역대정부의 입각 요청을 여러 번 거절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서울대 직선총장 임기를 마치고 경제학과 교수시절 이명박 정부에 국무총리로 발탁되면서 정치 행정의 중심에서 신고(辛苦)를 격기도 했다.

한때 차기 대권후보로 부상하기도한 정 전 총리는 요즈음 한국경제의 해답을 구하고자하는 대중의 물음이 쇄도해 강연으로 무척 바쁘다. 그만큼 한국사회가 희망을 갈구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약력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박사 △미국 콜럼비아대 조교수(1976-78)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1978-2009) △영국 런던정경대(1986-87)객원부교수 △독일 보쿰대 초빙교수(1999) △서울대 총장(2002-06) △한국경제학회 회장(2006-07) △국무총리(2009-10) △동반성장위원회 초대위원장(2010-12) △서울대 명예교수(현)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현) △동경대학 총장자문위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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