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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청시대, 낙동강을 가다- (2) 낙동강의 발원, 태백산 황지와 너덜샘

쉼없이 솟는 생명의 물 경상도 땅 어루만지며 흐르다

김정모 논설위원 kjm@kyongbuk.co.kr 등록일 2015년02월05일 21시16분  
태백시에서 공원으로 조성한 황지, 눈 덮인 황지 연못은 한 폭의 산수화처럼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입춘(立春)이다.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다. 농가에서는 농사 준비를 시작한다. 옛 사람들은 입춘을 해가 넘어가는 '해넘이'라고도 부르며 묵은 것을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이하는 날로 여긴다.

한 해 동안의 평안을 비는 의미에서 '입춘굿' 같은 풍습이 있었다. 입춘을 맞아 낙동강의 깊고 높은 심원을 찾아보는 것도 현대판 '입춘굿'이 아니겠는가….

낙동강 칠 백리는 옛말이고 요즈음은 낙동강 천 삼 백리다. 그 기나긴 물길의 시원, 처음을 찾아가 봤다. 누구나 시원에 가보고 싶을 것이다. 마치 고향 할머니를 만나러가듯이 가슴 설레는 일이다.

김연식 태백시장이 낙동강 발원제를 올리고 있다.

낙동강의 발원은 태백산 품안에 자리 잡은 황지와 그 마루턱에 있는 너덜 샘이다.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두 산줄기의 품에 안겨 있는 하늘 아래 첫 고을 강원도 태백시에 있다.

멀리는 일제강점기, 가까이는 1960년대 개발시대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 각처에서 탄광 일꾼으로 몰려들었다가 눌러 앉아 사는 사람들의 도시다. 신시(神市)가 아니고 인시(人市)다. 장성읍과 황지읍이 인구의 증가로 1981년 시로 승격되면서 통합하여 태백산의 이름을 따라 태백시로 했다.

태백산은 백두대간의 허리다. 백두산에서 뻗어내려 온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중부인 금강산 태백산 지대에 기대어 있는 형국이다. 태백산은 백두대간의 허리를 지탱하는 요추다. 깊고 조용한 심원, 한국인들이 아득한 옛날부터 그리워 해온 곳이다. 지금도 새해 첫날 태백산을 찾아 기를 받고 한해를 살아갈 에너지를 찾는 인파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공원 입구에 세워진 커다란 입석에는 '낙동강 삼천백리(洛東江 千三百里) 예서 시작되다'라고 음각되어 있다.

경북 봉화군과 강원도 영월군·태백시의 경계에 높이 솟은 백두대간의 주봉 태백산. 함백산(1573m)과 함께 경상도 땅의 든든한 뒷심이다. 인근에 헬 수 없을 만큼 수의 고봉을 거느리고 있다. '크고 밝은 뫼' 태백산(太白山·1,566m)은 신라시대 이래 북악으로 신성시해왔다. 토함산(동악), 계룡산(서악), 지리산(남악), 팔공산(중악)과 함께 신라 오악(五嶽)으로.

고려의 중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에 "환인(桓因,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 신당수에 내려와 신시를 열었다"라는 요지가 적혀있다. 환웅이 홍익인간의 이념을 폈다는 그 전설의 신당수와 신시가 혹 이곳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태백은 신령스러운 고봉, 웅대한 준령으로 둘러싸여 있다.

단군조선의 태백산은 백두산이나 묘향산으로 역사학자들은 추정하지만, 고조선을 잃고 남쪽으로 이동한 우리민족은 삼한시대 원래의 태백산과 비슷한 형태의 이곳을 태백산이라 이름 한 것이 아닌가 상상해본다. 아득한 예부터 지금까지 그 산 정상에 천제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 지낸다.

황지는 태백산이 백겹 천겹의 구불구불한 용틀임을 하고서야 얼굴을 내민다. 주변은 그 산세가 높고 험하다. 하늘이 닿을 듯 이 땅의 자연 바벨탑이다. 물길 주변 산기슭에는 겨울 눈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다. 태백산엔 삼한 때 천제를 지내던 장소로 신성불가침 지역이었던 소도(蘇塗)가 있었다. 그 소도의 중심지는 황지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곳 황지에서 낙동강 물길이 시작한다. 얼어 있는 황지천 아래로 물줄기는 들릴 듯 말듯한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겨울에 찾아온 여행객을 반기는 듯한 속삭임의 소리다. 졸졸 흐르는 소리는 신기하다 못해 외경스럽다. 눈 덮인 황지는 설국(雪國)을 만들며 한 폭의 산수화처럼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황지는 태백시를 둘러싼 태백산 함백산 백병산 등의 줄기를 타고 땅속으로 스며들었던 물이 용출되는 곳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하늘 못이라는 뜻의 '천황(天潢)'으로 불리며 영험한 기운이 서린 곳으로 알려져 왔다. 해발 700m에 자리한 황지 아래 작은 황지가 두 개 더 있다. 사계절 하루 수천t의 물이 솟아나며 언제나 15도를 유지하는 청정수다. 맑고 검푸른 빛을 띠고 있는 황지 앞에 서면 속계를 떠나 선계에 온 이방인 같은 느낌이 든다.

원래 황지 부근은 버드나무와 물푸레나무 등이 우거진 천혜의 늪지대였다. 지금은 도시의 한 가운데 사람의 손때가 묻은 것으로 보이지만. 15 세기에 발간된 동국여지승람에 '황지는 서쪽 110 리에 있다. 그 물이 남쪽으로 30여 리를 흘러 작은 산을 뚫고 남쪽으로 나가는데 천천(穿川)이라 한다. 곧 경상도 낙동강의 원류다'라는 기록이 있다.

황지가 이름 그대로 못이니 못 위에는 샘이 있기 마련이다. 상류에 있는 너덜 샘이다. 그래서 지리학자들이 너덜샘은 낙동강의 발원천(泉), 황지는 낙동강의 발원지(池)로 구분해서 부르고 있다. 너덜샘이 최장거리 발원수(1차수)라는 게 국립지리원의 공식적인 발표다. 태백시 화전동에서 정선으로 넘어가는 싸리재(두문동재)를 사이에 두고 금대봉과 함백산 사이에 있다.

이곳 너덜 샘에서 발원한 물길은 황지에서 기를 모은 뒤 첫번 째 내(황지천)를 따라 10여km쯤 하류에 있는 동점동에서 천천(穿川)을 이룬다. 천천은 문자 그대로 구멍 뚫린 하천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석회암을 관통하는 내(川)를 볼 수 있는 장소로 구문(구멍, 구무)소라고 불린다. 산을 뚫고 석문과 깊은 소를 만들었다. 강물을 뚫고 흐른다하여 '뚜루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생 인류가 살기전인 1억 5천만년에서 5억년 사이 형성됐으니 자연은 참으로 영구하다. 석문은 일제강점기 때 장성에 석탄광산이 개발되자 일본인들이 석탄 운반을 위해 1937년에 뚫은 것이라고 한다.

이곳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낙동강을 거슬러온 은어 떼가 물위를 비행하는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만약에 일제강점기 때 석탄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곳은 아직도 두메산골의 작은 마을로 남은 21세기의 무릉도원이 아니겠는가.

이 황지와 너덜샘은 최소 1만년 이상 경상도 땅에 살아온 사람들의 젖줄이자 뿌리다. 집집마다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는 물을 찾아 나서 거슬러 오르고 또 오르면 바로 황지에 연결돼있다. 나의 입으로 들어갔다 나오며 나를 살리는 물의 근원이 여기다.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상선약수上善若水)'고 했다. 인문학이 대세다. 생명체 본연으로서 첫 마음을 되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준다. 신라 고승 원효는 황해도 바닷가 해골바가지 속의 썩은 물을 마시고 도를 텄다고 한다.

경상도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1천여만 명의 생명공동체인 낙동강의 발원 황지.

옛날 할매들이 장독대 위에 올려 놓고 북두칠성을 향해 기원하던 정화수(井華水)의 원형질이다.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경전 구절이 가슴 벅차게 다가왔다. 여기에서 동래 부산까지, 지류를 더 하면 물줄기를 아마도 1만 번은 족히 건너야하므로 낙동강은 '일만천(一萬川)'이라 별명을 붙여도 될 정도로 창대하다. 낙동강을 수호해야 하고, 물에서 위로를 얻고 지혜를 구해야 한다.

황지는 우리가 처음으로 돌아가고 원형을 회복하라고 명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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