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이야기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 만으로도 정서적 억압 증상 완화

박원표 오천 이정표 한의원 원장

 

나에게 어린 시절 설날의 기억은 설렘과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지금보다는 덜 풍요로웠던 시절, 맛있는 음식을 맘껏 먹고 어른들에게 새뱃돈을 받아 또래 사촌들과 재밌게 놀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미소가 지어진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맞는 명절은 꼭 즐거움만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명절을 준비하면서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누군가는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의 비교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며, 젊은이들은 취업·결혼에 대한 잔소리에 지레 겁을 먹고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를 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명절 즈음되면 명절증후군이나 화병에 대한 기사가 꼭 하나씩은 나오는 것을 보면,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명절은 편하지만은 않은 날인가 보다.

 

화병은 우리나라에서만 주로 사용하는 용어로서 정서적 원인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가슴 답답함, 우울함, 식욕부진 등 각종 신체증상을 동반한 일종의 증후군이라고 볼 수 있다.

 

한의원에 오는 환자들 중 많은 경우가 본인이 화병이 있거나 예전에 있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특히 나이가 많은 여성의 경우가 더 흔한 편이다.

 

먹고 사는 문제조차 해결하기 급급했던 힘든 시절, 가족을 부양하고 자식에게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주려 본인의 인생을 많은 부분 희생하며 살아온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 화병이란 어쩌면 조금씩은 있을 수밖에 없는 당연한 병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또 시대가 바뀌어가면서 원인은 조금 바뀌었을지 모르나 젊은 세대들 또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많은 부분 화병이라 부를 수 있는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한의학에서는 이처럼 정서적 문제로 야기되는 여러 질병들을 기(氣)또는 기병(氣病)이라는 용어를 써서 표현하고 있다. 정서적인 문제와 신체적인 증상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관점아래, 신체적인 증상을 완화하고 개선시킴과 동시에 정서적인 억압을 풀어주는 것이 한방의 기병(氣病)치료라 볼 수 있다.

 

사람에 따라 증상도 치료법도 무척 다양하지만 여러 환자를 진료하면서 느낀 공통점은, 다만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상당부분 증상이 완화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화병이 정서적으로 억압되어 생기는 경우가 많고, 신체적 증상의 치료와 함께 정서적 억압이 풀려야 근본적인 치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일들을 비단 이해하기 힘든 것만은 아니다.

 

한때 유행했던 웰빙 바람이 지나고 요새는 힐링이 대세인 듯 하다. 다양한 불안과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는 요즘 사람들에게 힐링이란 너무나 간절한 바람일 것이다. 좋은 곳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도 좋지만 결국은 참된 힐링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지 않을까 싶다.

 

좋은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고민을 풀어놓으며, 자신 또한 섣부른 충고나 판단보다는 그저 다른 사람의 말을 조용히 경청해 주며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힐링이 될 수 있는 한해가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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