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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낙동강의 제2발원, 조령천

신도청시대, 낙동강을 가다- 1급수 황쏘가리가 사는 영강, 생명의 땅이자 생태하천

김정모 서울취재본부장 kjm@kyongbuk.co.kr 등록일 2015년03월13일 08시40분  
▲ 진남교반 초곡천과 조령천이 만나는 영강 시발지. 문경시청 제공
두 팔을 하늘 높이 뻗었다. 하늘이 닿을 것 같다. 천상의 공간은 분명 아닐터인데 지상의 공간과는 달리 오감(五感)이 열린다. 구름 속에서 금방 나온 햇살이 내려 쏟아지는 풍경이 숨을 죽이게 할 정도로 상서롭다. 문경새재 정상이다.

새재 마루에는 제3관문인 조령관이 괴산과 문경을 바라보며 걸터앉아 있다. 1708년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신축했다. 도립공원 입구 주차장에서 약 6.5㎞ 거리, 걸어서 2시간 남짓 걸린다. 보일 듯 말듯한 옛길은 사라져 폐로(閉路)이고 지금 도로는 일제강점기 때 만든 신작로다. 가파른 조령관 길에는 관광객이 가물에 콩 나듯이 드나든다.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는 사람이 드물다"는 마태복음이 생각난다.

해발 650m인 새재는 경상도와 충청도, 한양을 잇는 남로(南路,영남대로)의 영로(嶺路)중 하나다. 한양으로 오가기 위해 동남(東南)의 선비와 관리, 보부상들이 저마다의 꿈을 안고 등짐을 동무삼아 넘나들던 백두대간의 고갯길 영로. 새재는 조선 초부터 경부철도가 놓이기 전 까지 가장 붐비던 관도(官道)다. 저 넘어 중원(中原)을 내어주고 험준한 백두대간을 넘고 낙동강을 건너 신라를 건국했던 진한(辰韓) 족속. 수백 년 전 그들의 조상들이 요동 벌에서 압록강과 멸악산맥 아흔 아홉 굽이 고개를 넘어온 것만큼이나 숨 가빴으리라.

새재 고개 아래 깊은 산속 옹달샘 옆에 '낙동강발원지'표석이 있다. 낙동강 근원은 1천300만 동남 주민에게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관찬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편'(1454년간)에 "一出奉化縣北太伯山黃地, 一出聞慶縣北草岾, 一出順興小白山, 合流至尙州爲洛東江"가 있다. 하나는 봉화현 북쪽 태백산 황지에서 나오고, 하나는 문경현 북쪽 초점에서 나오고, 하나는 순흥 소백산에서 나와서, 물이 합하여 상주에 이르러 낙동강이 된다는 것이다. 새재의 고려시대 이름이 초점(草岾)이다. 풀 초(草) 고개 점(岾)으로 억새풀이 많아서 새재라고 했다는 유래다. 새도 날아 넘기 힘든 고개, 하늘재(계립령)와 이우리재(이화령)의 사이(間) 또는 새로(新) 난 고갯길이라는 설과 함께.

▲ 문경분지를 유유히 흐르는 영강. 영순면 김용리와 문경시 영신동, 흥덕동(예골)이 보인다.
내려가면 서편에 약수탕이 있다. 높고 험한 고개를 힘들게 다니는 길손들에게 제공하는 생명수다. 내려간 물줄기는 주흘산과 조령산 골골에서 흘러내린 물을 모아 구불구불한 계곡사이를 비집고 흐른다. 고요한 산중 정적을 깨고 물 흐르는 소리에 귀가 솔깃하다. 제2관문 귀틀집과 이진터 사이 숲속에 있는 폭포는 당국이 수 년 전 명칭 공모로 '색시폭포'라 했다. 수줍은 듯한 은둔의 미덕이 새 색시의 본성이니 작명이 절묘하다.

제법 큰물을 이루며 임진왜란 직후(1594년) 축성한 제2관문 조곡관 옆을 지난다. 제1관문으로 내려오다 보면 길가에 '산불됴심'(조심의 고어) 글자가 음각되어 있는 표석이 서있다. 18세기 중후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경북도가 자연수호운동의 발상지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시원한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둔덕에 복원한 교귀정. 신구 관찰사 임무교대 장소인 교인처다. 점필재 김종직이 새재를 지나면서 읊은 한시. "一水宮商風自激, 千巖圖畵日將昏. 南路已銷雙斥斥 , 月明今夜宿何村(한가닥 흐르는 물은 바람과 더불어 노래 부르고, 일천 바위는 그림 같건만 날은 점점 저물어만 가누나. 남쪽길 두 이정표는 이미 어두워 그 모양 사라져만 가는데. 아, 달도 밝은 오늘밤은 어디에서 머무를 것인고)" 새재물길 주변에는 양반들이 숙박했던 두 개의 원터가 있다. 원(院)은 조선의 국립 여관. 조령원 터와 동화원 터다.

▲ 낙동강발원지 새재 샘물.
새재에서 발원한 물길 초곡천은 1708년 축성한 제1관문(주흘관, 草谷城) 아래로 한참(10km) 내려와 문경교 인근에서 하늘재에서 흘러나온 조령천과 만난다. '인걸은 지령'이라 했던가. 조령천은 봉명그룹 창업자 이동녕(李東寧)을 낳았다. 1947년 봉명광업소를 창업한 우리나라 석탄산업의 창업세대다. 영남대 이사장, 성균관대 경영자로 교육입국의 비전을 가지기도 한 그를 기리는 흉상이 문경 소공원에 건립됐다. 지금도 '무'자 항렬 형제들이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아세아시멘트 등 10여개 계열사 총매출 1조 여 원 규모의 아세아그룹을 경영한다.

조령천으로 합류해 남으로 내려오다 약25㎞를 숨가쁘게 달려온 호흡을 멈추고 문경I.C 부근 마성면 신현리에서 영강의 원줄기와 합수, 영강을 이룬다. 영강 원줄기는 속리산 자락인 화북 농암을 거쳐 견훤(진훤) 유적지로 흐르는 가은천이 선유동 계곡 물길을 받으며 40㎞를 달려온 것이다. 고상안이 쓴 '태촌집'에 영강의 지명은 중국의 영수(穎水)에서 따왔다고 했다. 허유가 요임금이 선양하려고 찾아오자 기산 영수가로 도망갔다는 고사다.

강변에 오봉한 투구처럼 생긴 작은 산에 우복 정경세 선생 등이 지었다는 봉생정(鳳笙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빼어난 이수합수 절경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저 멀리 1만 5천명의 왜군이 새재를 넘기 위해 영강의 비탈 기슭을 따라 행군하는 모습이 상상된다. 아! 수일간 머물던 왜군이 문경 고을의 백성들을 얼마나 약탈했겠는가…. 고모산성의 남문 진남관을 끼고 있는 경북제일경 진남교반(鎭南橋畔)은 물과 산, 길이 태극 형상이다. 강변 따라 솟아오른 층암 절벽이 물길과 얼싸 부등켜 안고 애정을 만끽하는 형국이다. 오케스트라 연주 교향악이 인위(人爲)의 소리라면 이곳은 자연이 부른 한편의 절창(絶唱)이다.

영강변에는 실개천과 합수하는 버드나무 군락이 형성돼 있다. 피라미, 버들치, 퉁사리 등 민물고기의 몸둥아리를 숨겨주고 오염물질을 정화해준다. 하류로 가면 메기, 붕어, 잉어, 참붕어, 꺽지가 많이 산다. 1급수에만 사는 황쏘가리도 보인다. 생명의 땅이자 생태하천이다.

영강은 굽이 굽이 내려가 호계면 우로리에 다다르면 뱃나들이라는 강변이다. 조선시대 중 후반 유곡(幽谷)역은 조선의 9대 간선중의 하나인 동래와 통영을 가는 남로 삼거리다. 임진왜란 이후 파발참(擺潑站)이 설치돼 여덟 고을 2백여리 19역을 다스렸다(동국여지승람). 종6품관 찰방이 다스린 관아가 있던 아골마을, 말을 먹이던 마방터, 늘어선 주막거리, 시장(2.7일장)이 조선조 후기까지 번성했다는 것이 엄원식 문경시청 문화재담당의 얘기다

문경은 산업화시대 번성했던 석탄산업이 쇠락하면서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지만 근년에 다시 활기를 띄고 있다. 석탄을 나르던 철로위를 달리는 레일바이크(철로자전거), 전국에서 이름난 문경사과 동로오미자 문경도자기는 새로운 성장동력이다. 새재공원관광에만 2013년 한해 327만 명이나 몰려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선견지명으로 새재길이 보존된 덕택이라고 전재영 호계초등학교 교사(정치학박사)는 전한다.

문경은 고려말 이름이 '문희(聞喜)였다. '聞喜慶瑞(문희경서)'. 들을 '聞(문)' 기쁠 '喜(희)'이다. 홍건적의 난으로 몽진을 온 공민왕이 문경땅을 지날 때 홍건적이 물러갔다는 소식을 듣고는 '문희경서'라고 외쳤다고 한데서 유래한다고 엄 당담은 말했다. 대동강물도 녹는다는 경칩에 이 땅의 민중들에게 정말 기쁜 소식이 들려오길 고대한다.

물길의 성품이 우리에게 말없이 가르친다. 물길은 남에게 관대하다. 나무뿌리에서 나왔던지 바위틈에서 나왔던지 차별하지 않고 받는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추상같다. 바위를 만나면 정면 돌파를 시도하다 안되면 돌아서라도 간다. 급전직하도 평탄한 길도 꾸준하게 나아간다. 곧은 길도 굽은 길도 매양 한결같다. 조변석개 갈팡질팡하는 정책, 배신이 난무하는 우리사회가 부끄러워진다.

초곡천 조령천을 흡수한 영강은 32㎞를 더 달려 영순면 말응리와 상주 사벌면 퇴강리의 낙동강 본류로 흐른다. 천하절경의 자태를 뽐내며 때로는 안고 끼고, 때로는 급하게 더디게 자유롭게 문경 함창 들판을 적신다. 1960년대 하춘화의 음반 취입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진도아리랑 노랫말 "문경새재는 몇 구비인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구나~"처럼 기쁨의 눈물, 슬픔의 눈물이 범벅이 된 우리네 삶 같은 새재 물길은 해가 저무는 영강을 타고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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