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목 시인·영남대 교수
나이 들어 홀로 된 남자를 '홀아비'나 과부(寡夫)라고 한다. 홀아비 하면 '홀어미'가 떠오른다. 나이 들어 남편이 죽고 홀로 된 여자이다. 있어야 할 짝이 없어서 일까. '적다' '모자라다'는 뜻의 '과' 한 글자만으로도 과부를 뜻한다. 남편을 잃은 것도 억울한데, 무언가 모자란다니 가혹하다. 과부는 '과녀(寡女)', 과모(寡母), 과수(寡守), 상부(孀婦), 원부(怨婦), 이부(怨婦) 등으로도 불린다. 이 뿐인가. 딴딴하거나 단독으로 있는 모양을 나타내는 '과(怨)' 자도 과부의 뜻이다. 호칭이 많다는 것은 말도, 탈도, 수난도 많았음을 뜻하리라.

전통시대에는 남편이 죽으면 부인이 따라 죽어야 하는 데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라 '미망인(未亡人)'이라 불렀다. 홀로 남더라도, 남편을 애도하며 평생 수절하거나 자살로 끝내기를 강요했던 유교적 습속을 담은 언어적 족쇄 아닌가. 자신을 낮출 때 쓰는 '과인(寡人)'이라는 말은 참을만하나, 미망인은 시효 만료된 표현이리라. 1894년 여름. 조선을 방문했던 오스트리아인 헤세-바르텍은 당시 상황을 꼬집는다. 아내가 죽었을 때 눈물을 흘리는 남자들이 사회에서 '조롱거리'가 될 정도로 조선 여인들은 푸대접을 받는다고. 그러나 과부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보다 더 나은 결혼 관계를 알지 못했기에 '놀라울 정도의 인내심과 체념'을 가지고 견뎌 낸단다.

생활의 내용면에서는 홀아비 보다는 홀어미 쪽이 긍정적으로 평가되어 왔다. 대체로 홀아비는 새 장가를 들어야만 안정된 살림을 꾸려 청결한 삶을 누릴 수 있다. 남자 혼자 사는 삶이란 안 봐도 뻔하다. 담배냄새, 술냄새, 발냄새에 찌들고, 게다가 밀린 설거지, 빨래 등등. 안살림에 익숙하지 않은, 홀몸 노년 남자들의 삶은 날이 갈수록 서글퍼진다. 반면, 홀어미는 혼자 살아도 안살림을 알뜰살뜰 잘 해내서 집안이 반짝댈 확률이 높다. 옛 속담에 '홀아비 삼년에 이가 서말, 과부 삼년에 은(銀)이 서말'이라는 말이 이해가 간다.

중국 명대의 여곤(呂坤)이 지은'신음어(呻吟語)'라는 책이 있다. '신음'이란 병났을 때 내는 소리이고, '신음어'는 병들었을 때 내는 말인데, 병중의 아픔은 병자만이 안다고, 그는 말한다. 홀어미든 홀아비든 아픔과 고독, 삶의 현실을 운명으로 태연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평소 우리는 그런 힘을 길러 놔야 한다. 어릴 적부터 많이 아팠던 여곤이 깨친 한 대목이다. 가난하다고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貧而不羞).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가난함에도 무언가 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可羞是貧而無志). 지위가 낮음을 싫어할 수는 없다(賤不足惡). 싫어해야 할 것은 지위가 낮음에도 무능하다는 것이다(可惡是賤而無能). 늙는다고 한탄할 필요는 없다(老不足嘆). 한탄할 것은 늙어서 아무 할일 없이 사는 것이다(可嘆是老而虛生). 죽는 것을 슬퍼할 필요는 없다(死不足悲). 슬퍼해야 할 것은 죽고 나서 그 이름 한 마디 불러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可悲是死而無聞).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고 어느 시인은 말했다. 이것을 노래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누가 내게 공짜 술 한 잔을 사주랴. 인생은 애당초 밥 한 그릇은커녕 물 한 모금 내게 사주지 않는다. 내가 내 인생을 잘 대접해 줘야한다. 내가 나를 존중하고 애써 간호하지 않는 한, 아무도 나를 돌봐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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