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수문 안중근의사 홍보대사
안중근(1879~1910)의사(義士)는 30년 6개월의 불꽃같은 삶을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항하여 조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 살신성인한 우리 민족의 위대한 영웅이다.

1905년 일본이 러시아와 전쟁에서 승리해 대한제국의 국권이 빼앗기는 비운을 맞게 되자 우리 선열들은 목숨을 바쳐 조국의 광복에 나섰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경 중국 동북의 하얼빈역에서 한국 침략의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유린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안중근은 일본의 초대 수상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영웅에 그치고 있다. 이는 안 의사 순국(1910년 3월 26일) 105주기를 맞이하여 동양평화를 유언으로 남기고 간 대한민국의 영웅 안중근의사에게 반성해야 할 과제이다. 조국을 위해 몸을 바친 큰 사람 안중근은 항일 독립운동가로 의사(義士), 협객, 장군이라는 호칭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상가, 서예가, 사업가, 교육자, 신앙인, 평화주의자였다.

하얼빈 의거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는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은 것이 아니었다. 안중근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 후에 국제재판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침략 사실을 세계에 널리 알려 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지키는 것이었다. 안중근은 의거 직후 체포되어 여순 감옥의 열악한 감방에서 대한민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한 하얼빈 의거의 뜻을 밝히는 옥중투쟁을 결행하면서 자서전(안응칠역사)과 동양평화론을 집필 했다. 또한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중근체)를 개발하여 옥중 유묵이 현재까지 확인 된것은 62점이다. 이중 국가보물로 지정된 것이 25점이고 나머지 36점이 미지정이다.

동양평화론은 본문을 '서문', '전감', '현상', '복선', '문답'으로 구성으로 쓸 구상을 세운 뒤 각 부분에 대해 써야 할 사항을 뽑아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일제가 사형 집행일을 늦춘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 사형이 집행되는 바람에 서문(序文)과 전감(前鑑)만 기술되고 나머지 본론 부분이 될 '현상', '복선'은 제목만 간직한 채 순국했다.

미완성된 동양평화론에서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평화를 역설했다. 이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비판하고 동양평화의 사상적·제도적 장치 마련을 주장한 것으로 현재까지 동아시아 삼국(三國)평화와 우호적 분위기 진작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안중근은 민족자주와 동양평화를 갈구 했던 대한민국의 위대한 역사적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일본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서는 과오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겸허한 마음으로 역사의 진실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안중근의사는 현재의 사회지도층이 국난의 시기에 어떻게 처신하는지에 대한 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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