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 전반에 목숨의 무게와 생명의 존엄에 대한 인식이 엷어지고 있는 듯하다. 자신의 생명이 둘도 없이 귀중한 것으로 여긴다면 불행한 사건이나 불우한 환경에 처해 있다고 해도 이를 쉽게 내던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사회가 전 세계에서도 가장 자살률이 높은 수준이라는 것은 생명을 가볍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최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연이은 묻지마 살인 사건에 대한 원인이나 배경에 대해 국가적으로 심각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무감각이 더욱 심각한 사회문제인 듯하다. 지난 24일에는 대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30대 남성이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을 둔기로 때리고, 대합실 안 식당에서 흉기를 들고 나와 또 다른 사람의 어깨를 찌르는 '묻지마 칼부림'이 있었다. 지난 17일, 진주에서도 50대 남자가 흉기를 휘둘러 2명이 죽이고, 1명이 중상을 입히는 끔찍한 '묻지마 살인'이 있었다. 이 같은 일이 최근 들어 더 자주 발생하고 있다.

사상가 멈퍼드는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인간은 타인을 사랑할 수 없다"고 했다. 자기 자신을 증오하는 인간은 타인을 증오한다. 자기를 경멸하는 인간은 타인의 생명도 경멸한다. 자신의 목숨을 가볍고 의미 없게 생각하는 사람의 입장이라면 주변 타인의 목숨도 똑같이 생각하게 된다. 이 같은 생각 때문에 자신을 해치는 자손행위와 마찬가지로 남을 해치는 타손행위에 대해서도 거리낌 없이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자손행위와 타손행위는 사실 같은 심리기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처럼 자살과 살인은 표리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자살이 많은 시대는 살인이 많은 시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최근 수년간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자살자 수를 보이는 나라였는데, 최근 들어서는 그 뿌리가 같은 원인인 타인의 생명을 해치는 행위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묻지마 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생명 존중, 생명 존엄의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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