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명하고 신중한 이적은 당태종이 가장 신뢰한 총신이었다. 평민 출신으로 수나라 농민반란군에 있다가 당나라에 투항했다. 이적의 원래 이름은 서세적이었으나 당나라에서 이씨 성을 하사받아 이적으로 개명했다. 당태종은 이적에게 병주대도독으로 나가 있는 태자를 보필토록 했다. 이적이 병주에서 16년간 재직하면서 불필요한 법령을 철폐,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수양제는 어진 신하를 가려 뽑지 못했음은 물론 훌륭한 장수를 변방에 배치하지도 못하고 장성만 축조, 돌궐의 침입을 막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나는 이적으로 하여금 병주를 방어케 하니 돌궐이 그 위세에 눌려 멀리 피하고 소란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훌륭한 장수가 변방을 지키는 것은 장성을 쌓는 것보다 낫지 않는가." 당태종이 신하들 앞에서 이적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이적이 병이 들자 의원을 보냈다. 의원이 수염을 태워 약에 섞어 써야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했다. 태종은 직접 자기수염을 잘라 이적의 약에 배합하도록 했다. 이적이 성은에 감복, 울음을 터뜨리자 태종은 이적을 달래며 말했다. "경은 국가의 앞날만 생각할 일이지 수염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자신의 수염을 잘라 신하의 약에 쓰게 할 만큼 태종은 이적을 진심으로 아꼈다.

병석에 눕게 된 태종은 훗날 고종이 될 태자를 불러 당부했다. "너는 일찍이 이적에게 은혜를 베푼 적이 없었다. 그는 믿을만한 사람이다. 네가 은혜를 베풀 수 있도록 내가 이적을 좌천시켜 지방으로 보낼 터이니 내가 죽으면 네가 그를 다시 조정으로 불러 승진시켜 중용토록 해라. 그렇게 되면 이적이 너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충성을 다할 것이다."

태종이 승하한 후 황제에 오른 고종은 지방에 나가 있던 이적을 조정으로 불러 국정대사를 맡겼다. 2007년 대선 후보경선 때 홍사덕 전의원의 추천으로 친박계에 합류한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의 인간적 신뢰는 '당태종과 이적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