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전환대출 선착순 판매 근시안적 급조된 경제정책 정책의 공정성에도 어긋나

▲ 윤정대 변호사
젊은 날 군대에서 처음 부딪히며 당황했던 것 가운데 하나가 선착순이었다. 순서 안에 들지 못하면 불이익이 돌아온다. 동료들과 대놓고 달리기를 해서 순서 안에 들어야만 한다. 군기를 위한 것이라고도 하나 "선착순을 왜 해야 하나"라고 생각하면 순위 안에 절대 들 수 없다. 아무 생각없이 무조건 뛰어야 한다.

시장(市場)에서도 선착순이 비일비재하다. 사실 선착순은 자원배분의 방식 가운데 하나로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으면 흔히 공급자는 선착순의 방식을 택한다. 괜찮은 식당의 예약이나 자리 좋은 아파트의 청약 등 무언가 가지려는 사람의 수에 비해 물건이 턱없이 부족할 때 선착순은 치열하기까지 하다.

한가로운 마음으로 눈치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아예 줄도 서보지 못하기 십상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남보다 먼저 줄을 서는 것이 본심을 드러내는 것처럼 부끄럽고 어색하다. 나는 남보다 먼저 줄을 서야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곳에는 서 있고 싶지 않다. 물론 모든 사람이 줄을 서야 하는 경우나 차례를 기다리는 경우까지 선착순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 경우는 마음 편하게 조금 더 기다리거나 출발을 늦추면 될 뿐이다.

정부가 가계 채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은행을 통해 판매한 안심전환대출이라는 금융 정책 상품이 나온 지 나흘 만에 모두 팔렸다. 변동 금리 대출상품을 고정금리의 원리금 상환 상품으로 바꾸는 대신 이자율을 2% 중반대로 낮춰주는 전환대출상품이다. 정부가 제1금융권 주택담보대출자들을 대상으로 은행을 통해 이런 상품을 내놓은 이유는 향후 국제 금리인상 등 외부적인 경제요인의 변화가 있더라도 우리 가계채무구조가 이를 견딜 수 있도록 안정화시키겠다는 데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안심전환대출상품이 선착순이었던 게 영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안심전환대출상품을 선착순으로 정한 이유가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을 것을 미리 예상했기 때문이라면 이는 정책의 공정성에 맞지 않는다. 선착순 방식의 상품배분은 시장에서는 통용될지언정 정부의 경제정책으로서는 형평성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선착순 방식의 정책을 모든 국민이 적어도 먼저 은행으로 뛰어갈 기회를 공평하게 가졌으므로 이를 균등한 기회를 가진 정책으로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기회를 공평하게 가진다는 것과 오로지 남보다 먼저 행동하는 이유만으로 이익을 차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수요와 공급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면 정부의 경제 정책이 급조된 것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 뿐이다.

정부는 가계부채 구조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경제정책으로 가계대출 채무를 지는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 장기간에 걸쳐 선택의 자유와 공평한 기회를 가지는 다양하고도 세밀한 금융정책상품을 내놓았어야 했다. 가계채무 구조를 안정화시키는 정책상품이라면서 내놓은 것이 지금처럼 변동금리 대출자 가운데서도 재빠른 사람들만 혜택을 보는 선착순 금융정책상품이어서는 곤란하다.

2차 안심전환대출상품은 저가주택대출자에게부터 우선순으로 판매하기로 했다고 한다. 선착순이 아닌 게 그나마 다행이지만 정부의 경제정책의 수준이 아직도 무슨 선거판의 단기적이고 즉흥적이며 근시안적인 시각에 머무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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