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2월 첫 운행…101년 역사 포항역도 업무종료

▲ 봄비가 내린 1일 오후 5시20분경 포항에서는 마지막 운행이 될 서울발 새마을1044열차의 기관사가 포항역을 출발하며 역무원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이날 열차를 운행한 김평원 기관사는 "노후된 작은역이지만 그동안 운행하면서 포항역과 탐승한 승객들의 추억이 많았다"며 이곳 역사와의 이별을 아쉬워 했다. 이종현기자 salut@kyongbuk.co.kr
1일 오전 7시50분. 포항시 북구 대흥동 포항역 플랫폼으로 객실 8칸을 단 새마을호 열차가 삐걱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열차가 들어오자 30여분 전부터 역 승차 대기실에 있던 80대 노부부, 20대 청년, 50대 부부 등 승객 10명은 승차권에 적힌 차량과 좌석위치를 확인하며 의자에서 일어나 플랫폼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 열차에 칸칸이 나눠타는 승객들을 멀리서 지켜보던 역무원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포항역으로 들어온 새마을호는 KTX동해선 개통으로 지난 1992년 첫 운행한 지 22년여만에 마지막 운행을 하게 됐다.

매표소 최종선 역무원은 "새마을호는 오늘이면 마지막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며 "역무원으로서 마지막 열차를 떠나보내는 기분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이들 승객 중 50대 부부는 포항역 입구부터 대기실, 플랫폼 등 새마을호에 오르기 전 그 모습들을 사진으로 담고 있었다.

15년 전 명절에 열차를 타봤다고 밝힌 이 부부는 결혼 25주년 기념으로 진해벚꽃여행을 가기 위해 이날 새마을호를 타게 됐다고 한다.

부인 정형숙씨(50·여)는 "진해에 벚꽃구경을 하기위해 여행계획을 잡다가 문득 예전 명절때 포항역이 엄청나게 북적였던 생각이 나 진해까지 열차만 타고 가보기로 마음먹었다"고 옛추억을 꺼냈다.

20년간 새마을호 등 열차의 안전운행을 지켜온 역무원 손제도 여객전무도 승객들이 기념될 만한 사진을 찍는 것을 도와줬다.

비록 자신과 함께 나이를 먹어온 열차이지만 마지막 모습을 더 많은 승객들이 기억해 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전 8시. 새마을호 첫차가 포항역과 작별할 시간이 다가왔다. 하늘도 이 이별의 의미를 아는지 구름으로 해를 가리고 비를 흩뿌렸다.

새마을호는 1992년 12월 포항-서울 336㎞거리 하루 1회 왕복으로 신설돼 처음 포항에 들어왔다.

당시 서울로 바로 갈 수 있는 고속도로도 없었던 데다 완행열차나 무궁화호를 타고 동대구까지 가야만 탈 수 있었던 새마을호는 획기적이면서도 최고급 교통수단으로 주목받았고, 시민들로부터 대환영을 받았었다.

포항에서 서울까지 시속 150㎞로 5시간 30분 가량이 걸렸으며 그 이상이 없을 것 같았던 첨단열차였다.

기자가 초등학생시절 개통한 새마을호를 한번 타봤다는 것 만으로도 친구사이의 자랑거리였고, '좀 잘산다'는 의미로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다니는 녀석도 있었다.

이 와중에 새마을호는 2002년 10월 하루 2왕복으로 증설돼 열차 이용객들에게 더욱 많은 편의를 가져다줬다.

무궁화호든 새마을호든 긴 여행에서 큰 기쁨을 줬던 열차의 꽃 '카트'에 대한 추억은 늘 새롭다.

역무원이 과자·삶은 달걀·오징어·맥주 등을 잔뜩 실은 카트를 밀고 들어오면, 여행을 떠나는 친구끼리는 시원한 맥주 1캔과 오징어 안주를,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어린이들은 삶은 달걀과 사이다·콜라를 사먹으며 긴 여행의 무료함을 달랬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새마을호에는 8년 전부터 동전노래방, 안마의자를 갖춘 카페(식당)칸이 새롭게 자리잡아 추억의 카트는 사라져 버렸다.

어느덧 새마을호는 안강-서경주-영천-하양역을 지나 작별인사를 해야 할 동대구까지 82.5㎞를 1시간40분만에 내달렸다.

동대구역에서 하차하자 포항에서 새마을호보다 1시간 뒤인 오전 9시 출발한 KTX-산천 상행열차가 38분만에 동대구역에 도착, 손님들을 내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기자를 태우고 왔던 새마을호는 10분 뒤 동대구역 플랫폼을 떠났고, 열차 승객 대부분은 바쁘게 역사 밖으로 사라졌다.

그래도 함께 내린 50대 부부는 그동안 지구둘레 13바퀴도 돌고 남을 약 520만㎞를 쉬지 않고 달려준 새마을호를 향해 작별인사를 잊지 않았다.

"잘가, 새마을호야. 우리 부부에게 좋은 추억을 안겨줘서 고맙다."

포항-서울 새마을호 2대는 1일 밤 서울과 포항 각자의 종착역에 도착하는 것을 끝으로 운행이 중단되며, 앞으로 내구연한을 검토해 폐차 또는 제3국가로 수출될 예정이다.

또 한때 포스코 통근 열차 탑승지로 이용되기도 했던 포항역 역시 이날 밤 마지막 새마을호가 들어온 뒤 오후 9시 47분 무궁화를 마지막으로 101년동안 이어왔던 모든 역무를 마치고 역사 속에 이름으로 남게 되며, 효자역은 화물수송기능은 남지만 인력은 배치되지 않는 무인역으로 운영된다.

포항역은 지난 1914년 간이역으로 출발한 뒤 1918년 협궤열차가 다니는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으며, 해방직전인 1945년 7월 이날 업무를 종료한 역사를 지었다.

특히 포항역은 1960년대 중반 월남으로 파병하던 해병대원들의 파월군용열차기지로, 1975년부터 포항제철소 전용 통근열차를 운행하며 한국산업의 중심에 서기도 했었다.

그러나 1일 밤 9시47분 업무를 종료한 포항역은 모든 역무를 새로 개통한 KTX포항역으로 넘기고, 101년의 역사를 담은 채 자리에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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